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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07/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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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당]부용과 명월

[아침마당]부용과 명월
곽승룡 천주교 대전교구 사목기획국장
2007년 01월 15일 (월) | PDF 20면 충청투데이
나는 텔레비전에서 뉴스를 주로 시청하는데 가끔은 사극도 본다.

지난해 모 방송사에서 막을 내린 '황진이'라는 사극을 가끔씩 보곤 했다.

한국인은 역사를 다루는 드라마를 좋아한다. 왜 그럴까? 역사를 좋아해서인가? 아니면 드라마를 좋아해서인가? 아마도 두 가지 모두 일거라고 생각한다.

역사 전문가들은 드라마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면, 적지 않은 시청자들은 역사 쪽에 더 힘을 실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드라마를 통해 역사를 보자는 뜻일 게다.

일반 드라마야 시청자들이 그 내용에 따라 주인공을 살렸다 죽였다하는 술수를 부리지만, 역사 드라마는 인물들을 어떻게 할 수는 없고 역사와 드라마의 틈새 곧 상상할 수 있는 부분을 신나게 그려댄다. 역사 드라마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메시지를 준다.

사극은 해석이다. 우리말에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있는데, 같은 사극일지라도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메시지를 찾을 수 있다.

나는 '황진이'의 마지막회가 이 시대에 새로운 해석의 메시지를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사회의 핫이슈 가운데 하나가 '리더'에 관한 것이다.

특히 올해 대선이 치러지는 터라 더욱 그렇지만 리더십은 우리 사회의 끊임없는 화두임에 틀림없다.

그런 와중에 '황진이와 부용의 리더십'이라고 할까? 이 드라마의 마지막 회가 던져 준 분명 리더와 관련된 메시지다.

마지막회는 여악 행수를 선발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부용과 명월 황진이가 추구하는 최고의 춤을 찾아 배워가는 장면이 비교된다.

부용은 전국에 춤 계보를 단계적으로 찾아가 명인에게 겸손하게 그러나 전문적으로 춤을 배울 뿐만 아니라 그들과 인간관계를 맺어간다.

그런데 명월 황진이는 먼저 고민을 한다.

왜, 무엇 때문에 춤을 추는지, 팔과 다리와 어깨와 몸을 왜 움직이는지, 그리고 춤의 본질이 자연과 세상, 사람에게서 발견되고 그것을 소유하려 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에로 찾아가 동화되어 간다. 곧 춤과 삶이 하나라는 것을 터득한다.

그려는 춤은 더욱 세상과 자연과 사람과 하나되는 세상 속의 삶이라는 것을 실행한다.

드디어 여악행수를 선발하는 날 명월과 부용은 춤으로 서로 겨룬다.

그런데 명월은 등장하지 않고 부용이 멋들어지게 음과 선율에 맞춰 한껏 춤 실력과 인맥의 관계를 뽐낸다.

전국 최고의 춤 명인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모두들 나타나지 않는 명월이 말고 부용을 여악행수로 임명하려고 한다.

그 때 '끼익'하며 대문을 열고 나타나는 명월이.

모두들 놀라는 것은 기존 전통과 형식을 뛰어 넘는 그녀의 말과 춤이었다. 드디어 음악도 없이 그녀가 생활의복 차림으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런데 음악이 춤을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춤이 음을 끌어내 반주하게 한다.

한바탕 시원한 춤을 끝내자 가장 먼저 박수를 보낸 자는 부용이.

그녀는 깨끗이 자신이 패하고 명월이 승리했음을 인정한다.

모두들 여악행수는 당연히 명월이라고 생각한다.

다음날 새 여악행수를 지목하는 날, 여악행수로 부용이가 지목된다.

명월은 태연했고, 부용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데 부용이 여악행수가 된 이유는 명월의 춤을 최고로 보았던 식별력이다.

명월은 최고의 춤꾼이다. 부용은 그것을 알아본 자다.

오늘날 리더다운 리더를 사회는 원한다. 리더는 식별하고 인정하는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