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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07/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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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에게 길을 묻다<1>-천주교 수원교구청 교구장 최덕기 주교

원로에게 길을 묻다<1>-천주교 수원교구청 교구장 최덕기 주교
입력시간 : 2007-01-10 [오후 2:55:05]
 
 

-주교님 안녕하십니까?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건강은 좋으신지요?
▲걱정해 주시는 것보다 건강합니다.

-사실 모든 신자가 미사때 마다 기도하는데 건강 안 하실 수 있나요?(전체 웃음). 오늘날 과학의 힘이 증대되면서 종교의 역할은 날로 커져가고 있습니다. IMF 등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중산층이 무너지고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또 ‘인간소외’의 문제가 현실로 대두하고 있습니다. 과연 종교는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
▲자살 만연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자살이란 극단적 선택을 하는 데는 경제적 어려움에 따른 측면이 강한 것 같습니다. 우리사회 전체적인 국민들의 사고 패러다임이 경제적인 것으로만 고착된 것에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종교가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인가는 엄청난 질문인데요. 저는 종교의 역할이 ‘사회의 혼’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아무리 욕심이 있어도 혼이 없으면 죽은 사람인 것처럼 혼은 올바라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종교는 역사적으로 그런 일을 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리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조선시대에 천주교는 계급의식이 뚜렷한 양반 등 사대부에게는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사악한 종교였습니다. 반면 대다수 피지배계급 즉 평민, 상인, 천민 등으로부터는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교리가 크게 환영받아 신자가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반상의 개념이 빈부격차에 의한 양극화로 전이된 느낌입니다. 양극화 현상을 바라보는 입장과 이의 해결을 위한 방안을 천주교 교리나 개인적인 입장에서 풀이해 보신다면 무엇일까요?
▲양극화 현상도 경제논리에 따른 것이에요. 양극화를 애써 안 보려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삶에 있어 (경제 외에) 다른 면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경제논리가 전부인 양 하는 것이 문제에요.
천주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에게 똑같은 것을 얘기합니다. 모든 이에게 부자도 하느님의 자녀요, 가난한 사람도 하느님의 자녀라고 합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가족이지요. 그런데 한 가족안에 인간의 품위가 떨어질 만큼 가난하게 사는 이가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가난이나 질병때문에 사람이 품위를 잃어버리는 것은 어떻게든 막아야 합니다. 그런 것을 고쳐나가는 것이 우리의 가르침입니다.

-양극화의 구체적 해결방안으로 천주교에서 펼치는 한마음운동이 있지요. 거기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얼마 전 성탄절을 지냈지요. 성탄절은 하느님 아들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신 날입니다. 격상시켜 주신거죠. 그런 특혜를 받았기에 우리도 나름대로 그런 나눔을 실천하자, 우리보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내려가자, 그런 사람들을 끌어 올려 주자는 겁니다.
그런 것을 천주교에서는 ‘강생의 신비’라고 합니다. 성체성사는 미사 때 예수님의 몸과 피를 나눠서 우리가 영적인 생명력을 얻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신비를 우리가 살면서 구체적으로 실천하자는 것이 한마음운동입니다.
천주교 수원교구가 주축이 돼 추진하고 있지만 일반인도 동참해 사회운동으로 키워나가려고 합니다. 지난 해 12월8일 창립대회를 하고 성탄절을 거치며 전화성금 5000여 건 정도가 들어왔어요. 이런 일을 통해서 여러가지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독거노인등 우리사회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줄 계획입니다.  

-좋은 취지의 운동이 잘 착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천주교가 들어온 지 20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부침도 많았을텐데요,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십시오.
▲다른나라는 모두 선교사들이 믿음이 없는 나라에서 포교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한국 천주교의 가장 독특한 점은 우리 선조들이 먼저 서적을 통해서 천주교라는 것을 알게 되고 신앙을 갖게된 것입니다. 그 후에 선교사를 모셔오게 됐지요. 가장 특징적인 것이자 자랑스러운 일이에요.
천주교가 들어온 후 100년이 넘게 박해를 받았습니다. 순교자도 일만 명이 넘게 나왔어요. 그런 심한 박해에도 천주교가 계속 커 갔었다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면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해방 후 유신시대에 들어오면서 국민들이 입은 있으되 말을 못한 시기에 천주교가 국민의 아픔을 대변해 말했습니다.
신부님들은 강론할 때마다 (경찰에) 불려가고 감옥에 갇혀 고문을 당하며 국민과 함께 유신시대에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했지요. 박종철 고문치사를 발표하고 민주화운동이 오기 전 1986년 수원교구청을 비롯해 신부님들이 모여 며칠씩 단식기도를 행했던 일 등으로 천주교가 국민들에 인식되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 103위 한국순교복자시성식과 1989년 세계성체대회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내한 하셨습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 복음화가 많이 됐죠.

-군부독재하에서 공권력의 총칼을 피할 수 있었던 마지막 보호처인 명동성당은 우리 나라 민주화운동의 성역으로 일반인들에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는 천주교가 한국의 정치현실들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증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종교가 정치에 깊숙히 개입하는 것도 문제지만 현실을 외면하는 것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주교님 개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지금의 정치상황은 어떻다고 보십니까?
▲솔직히 정치에 관심없어요. 그냥 재미없어요. 우리사회가 전체적으로 갈등이 심화되는 사회라고 생각하고 그런 면이 많이 답답합니다. 이 작은 한반도에서 갈등을 얘기하고 서로가 반목하고 이럴 때가 아닌데… 우리 주변 중국과 인도, 동남아가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뭐하는 건지. 답답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자기 눈에 든 들보는 못 보고 다른 사람에 든 티끌을 떼어내려 한다는 것처럼 우리사회가 반목하는 것이죠. 갈등사회가 된 것을 어떻게든 풀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입니다.
이 참에 꼭 부탁할 게 있어요. 저는 모두가 자기 일을 먼저 열심히 하자. ‘네탓이요’ 좀 덜하자. 널리 보고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뛰어가는 지 보고. 주변을 두루두루 보면서 균형있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네탓이요’하시니까 연계되는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군부출신 대통령들에서 민주화 운동 출신 대통령으로 정권이 인계되는 김영삼 정부 초기, 전임 대통령 구속 등 사회적 혼란상이 많았습니다. 당시 천주교사제단 등에서는‘내 탓이오 내 탓이오 모든게 내 탓이오’라는 이른바 사회정화 차원의 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내 탓이오 운동은 남의 탓이 더욱 일상화 돼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오늘날 더욱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탓이오와 비견 될 혜안을 풀어주십시오.
▲꼭 얘기하고픈 것은 우리 사회에서 모든 사람들의 흐름과 마음에 각인된 것이 경제 패러다임이라는 것이에요. 발전도요. 저는 그것을 사람을 키우는 것, 자기 자신을 키우는 것, 인성을 키우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결국은 사람이에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모든 것이 판가름 납니다. 어떤 문명기술이든 2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사회는 사람키우는 것이 많이 약합니다. 가정교육에서부터 문제입니다. 제가 자랄 때는 아이들이 뛰어다니면 매번 야단맞았어요. 똑바로 앉아있으라고요. 지금은 그런 교육을 안하죠. 사람을 인성교육으로 가꿔 키워나가야 되는데요. 우리사회가 너무 경제논리, 성장 기술개발 지향적입니다. 물론 그것도 해야겠죠.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간과된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 자신부터 생각해보면 부족한 면이 많다고 생각해요. 주교직 수행하면서 부족함을 느끼기에 참 어려워요.
나 자신부터 키우는 노력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수원교구 신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에게 간곡히 부탁하고픈 말은 자신을 키우는 일을 하자. 꼭 종교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든 인간으로서 자신을 키우자는 겁니다. 결국은 사람이니까. 

-앞서 질문들이 너무 무거운 주제를 다뤘습니다. 당황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이제 가벼운 주제로 풀어보겠습니다. 통계청이 지난해 5월 발표한 인구조사결과 천주교 신자는 1995년 295만여 명에서 2005년 514만여 명으로 무려 74.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신자들이 증가하는 것은 천주교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보는 데 무엇인가요?
▲한마디로 표현하면 증거의 삶입니다.
첫째는 박해 때 순교자 만여 명이 신앙을 위해 목숨을 잃었잖아요. 생명은 하나뿐인데. 그 자체도 큰 밑거름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한가지는 유신시대 천주교가 보여준 것도 국민이 주목했고요. 또한 재작년 말 황우석 교수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황 교수는 영웅이었어요. 거기다 누가 돌 던지면 죽일 놈이었어요. 그 때 종교계에서 정 추기경님이 제일 먼저 윤리문제를 말씀하셨어요. 이런 모든 것을 통해서 말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준 것이 가장 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천주교 신자들이 사회 곳곳에서 성실하다는 거에요. 신부나 수녀님이 독신으로 사는 것, 돈쓰는 것에 청렴하다 는 것 등이 천주교가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2007년 교구청 사목교서는 무엇인가요?
▲사목교서는 사회식으로 얘기하자면 교구장의 내년도 정책방향입니다. ‘소(小)공동체를 열심히 잘하자’,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 위해 가정을 중심으로 잘하자’, ‘대리구에서 열심히 하자’ 등 세 가지 입니다.
이 가운데 청소년들이 스스로 교회나 국가의 미래이기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노력은 하지만 좋은 성과가 나지는 않네요.
경험을 통해서 볼 때 청소년을 위한 것을 하지말고, 청소년들이 스스로 하는 것을 지도하면서 도와주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교정사목신부가 말하길 소년원생의 99%가 가정이 파괴된 경우라고 합니다. 할머니·할아버지와 지내는 아이들, 부모가 없는 아이들 등 가정이 온전하지 못하면 사회가 괴로운 거에요. 그래서 가정을 보금자리로 만들어야 해요. 가정을 우선 성화시켜나가자는 겁니다.

-끝으로 빈부격차, 양극화, 정치력 부재 등으로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는 소시민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나 위로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일 안 좋은 것은 사람이 실망하는 것이잖아요. 그러면 길이 없는거에요. 고생을 극복해 잘 사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절대 실망하거나 과격한 일 하지말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거듭 강조하는데  모든 것을 경제적 논리로만 본다면 앞이 깜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세 끼는 다 먹잖아요. 경제논리 뿐만 아니라 다른 것으로도 살맛나게 사는 길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최덕기 주교는
천주교수원교구청 교구장 최덕기(바오로)주교는 1948년 평택군 서탄면 수월암리에서 태어났다. 73년 서울 가톨릭대학 철학신학부 졸업후 독일로 건너가 75년 Eichstatt대학 신학석사, 83년 Munster대학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75년 10월 사제서품을 받고 83년 부곡성당 본당신부 직무대리로 시작해 수원 가톨릭대학교 교무처장, 남양 및 군포성당 주임신부 등을 지냈다. 90년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과 수원교구 사목국장을 거쳐 96년 2월 김남수(안젤로) 당시 교구장으로부터 주교서품을 받았다. 97년 2월 수원교구 제3대 교구장에 임명됐다.
현재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상임이사와 총무, 매스컴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는 최 주교는 교회 안팎으로부터 검소하고 인자한 성품을 지녔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윤숙 조각가는
이윤숙 조각가는 지역에서 예술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1960년 수원 태생으로 성신여대 조소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성신여대와 장안대, 협성대, 경기대, 중앙대 등에 출강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성신조각회, 수원가톨릭미술가회, 조각그룹 ‘광장’회원이다. 슈룹조형연구소 대표, 수원조각회 회장을 맡고 있다. 2005년 남편 김정집 관장과 수원 북수동 자신의 집을 개조해 대안공간 눈 및 갤러리 아트넷을 열었다.
기존의 정형적인 전시공간 문화을 개척해 참신한 수원지역 작가들에게 전시공간을 제공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대담:이윤숙 조각가
정리:김재기 기자    사진:최윤영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