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4804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06/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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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울 때 가득차는 행복의 그릇 - 중도일보

비울 때 가득차는 행복의 그릇

<월요아침> - 중도일보


유흥식 천주교 대전교구장 주교

입춘이 두 번 포함된 쌍춘년에 결혼하면 복이 가득하다는 설 때문일까? 올해의 결혼건수가 급증하면서 결혼관련 산업은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고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명리학자들도 고개를 내두르는 황금돼지해인 내년에 아이를 낳으면 좋다는 믿음에 출산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급증한다는 보도도 전해진다.

일부에서는 황금돼지해에 급증한 출산은 당해연도 출생자들간의 입시와 취업경쟁 과열을 불러일으키는 문제점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하지만 아무도 귀담아 듣는 것 같지 않다.

저출산, 노령화의 문제가 민족과 국가경제의 존폐를 좌우하는 시급한 화두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2030년에 노인인구 부양부담이 증가하고 우리나라 산업노동력의 상당부분을 외국인이 담당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국가가 나서서 문제해결책을 모색하는 다급한 이  시점에서 아이를 많이 낳겠다는 움직임은 분명히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판단을 선호하고 알고 싶은 지식을 인터넷 검색으로 찾는 신세대들이 근거가 미약한 쌍춘년과 황금돼지해의 복을 의지한 채 결혼과 출산을 결정하는 듯한 움직임이 무언가 석연치 않다.

2006년 최대 사회문제로 꼽을 수 있는 저출산 현상은 우리나라 신세대의 의식구조와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지만 작은 난관이나 구속과 희생이 요구되는 상황을 만나면 이내 돌아서는 젊은이를 많이 만나게 된다. 이들은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을 기쁘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혼과 출산 및 육아를 현실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아이를 남들처럼 키우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여성이 양육을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을 계산한다. 가난하지만 우애 좋은 12남매 가정의 이야기는 호박씨를 받지 못한 흥부네 집으로 이해되는 듯하다.

아이를 낳고 책임지지 않은 채 보육원에 몰래 놓고 가거나 임신중절 수술로 생명의 씨를 지워버리는 것보다 결혼과 임신을 피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질문을 하는 이들도 있다. 동전의 앞뒷면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사회와 구성원 모두, 눈에 보이는 것에 급급한 나머지 희생의 이면에 붙어있는 기쁨을 보지 못하고 출산과 양육의 고통 뒤에 숨겨진 생명과 성장의 신비를 보지 못한다. 이러한 신비를 찾는 마음이 없다면 결혼여부나 출산여부의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처음의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천주교 대전교구에서는 매년 성가정축일에 자녀를 하느님이 주시는 대로 받아들인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생명장학금을 주고 있다. 이들을 만나면서 사랑과 희망의 진정한 힘을 느끼게 된다. 어찌 경제적, 육체적 어려움이 없겠는가? 그러나 서로를 아끼는 힘으로 험난한 세상을 헤쳐가는 이들의 삶은 가족의 힘을 보여준다.

무언가 부족해도, 사랑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함께 견디어 내려는 마음이 있다면 그때야 비로소 진정한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빈부는 일정 부분 객관적인 지표로 판가름할 수 있겠지만 마음이 부자인 사람은 동일한 환경에서 훨씬 부자로 살아간다는 점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청춘 남녀가 하늘이 정해준 인연으로 부부의 연을 맺어 험난한 세상에 사랑의 결실인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은 보이는 것 뒤에 감추어진 신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혼 배우자를 선택하고 결혼 날짜를 잡거나 출산을 계획할 때 조심하고 때로는 신비스러운 힘에 의지하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신비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준비에 앞서 서로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관리하고 새로운 구성원의 탄생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는 준비, 곧 마음을 비우는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리는 교회가 빈 구유의 신비를 묵상하듯, 그리고 이러한 신비가 어려움 가운데서 생명의 잉태를 순종과 결단으로 받아들인 여성 마리아의 비워진 마음에 내렸듯이, 우리의 마음 밭을 비울 때 행복과 기쁨은 우리를 촉촉이 적시고 넘쳐흐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