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4199
  • 글쓴이 : 정재형
  • 작성일 : 2006/11/06
  • 조회수 : 3,419

화재로 폐허된 화훼마을

화재로 폐허된 화훼마을
<화재로 폐허가 된 화훼마을. 한가위에 찾아온 불청객 화마는 주민들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이제 어디서 살아야 하나…”

모두가 풍요로움에 젖어 잠들어있던 한가위 다음날인 10월 7일 새벽3시. 언론에서는 서울 송파구 장지동 ‘화훼마을’에 화재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며칠간의 보도와 함께 사건은 보통 화재소식처럼 그렇게 끝이 나는 듯 했다. 하지만 10월 25일, 어느 정도 복구를 예상하고 찾은 화훼마을은 화마가 모든 것을 앗아갔던 한가위의 모습 그대로였다.

잿더미에서 고통의 나날

이곳이 과연 사람이 살았던 곳일까. 복정역 3번 출구에서 100m도 되지 않는 거리에 높은 강철 울타리로 둘러싸인 화훼마을.

주변 미관이라는 이유로 송파구청에서 세워놓은 울타리 안에는 176세대의 주택이 전소돼 집터로 추정되는 빈터와 잿더미만이 새까만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문제는 8호선과 분당선이 가로지르는 복정역의 수많은 유동인구와 송파구 주민들이 마을 주변 높은 울타리로 인해 화훼마을의 화재소식을, 나아가 화훼마을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화훼마을은 영농용 비닐하우스를 개조한 곳이다. 70년대 말, 비닐하우스에서 화훼농사를 짓던 이들이 토양과 물이 나빠 농사가 되지 않자 때마침 강남지역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인해 오갈 곳이 없던 철거민들에게 비닐하우스를 전매했다. 처음 비닐하우스 한동을 구입한 주민들은 이를 반으로 쪼개서 팔기를 거듭하며 마을을 집단주거지로 변화시켰다.

주민들은 안전이나 쾌적함보다는 주택의 단가와 거주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비닐과 목재로 집을 지었다. 또 주택 사이의 간격도 얼마 두지 않아 마을은 화재나 붕괴의 위험에 항상 노출돼있었다.

화훼마을의 화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화재만 네 번. 98년에는 ‘비닐하우스 17개동 전소’라는 큰 화재사례가 있었지만 이번 화재진압 역시 신속히 진행되지 못했다. 소방차가 출동해도 울타리로 인해 마을까지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80년 가락시장에서 배추장사를 하며 마을에 거주하게 된 주수산나(72) 할머니는 “여름에는 태양이 뜨거워 하우스 안에 합판을 붙여놓고 자고 겨울에는 시장에서 주워온 보온덮개를 올려놓고 잤다”며 “그런 보금자리라도 내 집이 있어 좋았는데 이제 어디로 가서 살아야할지 막막하다”고 눈물을 흘렸다.

인근 관공서에서 수차례에 걸쳐 피해액을 조사해갔지만 대책이 없다. 임대아파트나 비닐하우스 재건축은 먼나라 이야기이고 화재 끝 수톤에 달하는 쓰레기조차 치우지 못한 실정이다.

종교단체 후원으로 연명

현재 주민들은 종교단체가 후원한 이불과 옷가지 등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그나마 생필품을 받아 마을회관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행인 편. 회관에서 머무를 사정도 여의치 않은 주민들은 복정역 바닥에서 먹고 자는 노숙자가 됐다.

화훼마을. ‘꽃’이란 이름과 달리 잿더미 속에서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이들에게 올 겨울이 멀지 않았다.

※도움주실 분 02-3401-5453 송파 평화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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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혜민 기자 gotcha@catholictime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