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3899
  • 글쓴이 : 홍보국
  • 작성일 : 2006/10/13
  • 조회수 : 3,290

착한 사람들이 일군 아픔없는 세상 30년

착한 사람들이 일군 아픔없는 세상 30년
결핵환자 요양시설 ‘시몬의 집’ 30주년
76년 초가 한채로 시작 가족도 외면한 ‘폐병’환자 돌보다
수녀가 감염되기도 “이제는 노인 아픔 치유할 때”

초가집에서 엘리베이터를 갖춘 현대식 3층 건물로, 결핵요양시설에서 노인요양시설로….

수도권의 천주교계 대표적 결핵요양기관인

경기도 파주 ‘시몬의 집’(원장 김애련 데레사 수녀)이 개원 30주년을 맞아 대대적으로 변신한다.

‘시몬의 집’은 1976년 10월 6일 허름한 초가(草家) 한 채로 시작했다. 서울시립병원에서 퇴원한 후 오갈 데 없던 결핵환자들이 경기도 고양시 용미리 산 밑에 움막을 치고 생활하다가 움막이 철거되면서 현재의 경기도 파주 광탄으로 옮겨온 것. 성모영보수녀회가 ‘시몬의 집’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1978년부터. 당초 결핵투병 경력이 있던 한 여성 신자가 학교 교사 봉급을 털어서 ‘시몬의 집’을 운영하다가 다시 결핵이 재발해 교사직을 퇴직하게 되면서 수녀회에 운영을 부탁한 것. 당시 수녀 2명을 파견해 환자를 돌보기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은 발병률이 많이 줄었지만 당시만해도 결핵환자가 드물지 않았고 가족도 사회도 이들을 반기지 않았다. 이 때문에 환자들을 돌보는 일은 오롯이 수녀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몫이 됐다. 대부분 치료를 마친 요양 대상자를 수용했지만 일부는 실제 환자들도 있었다. 그들을 돌보다 수녀가 결핵에 감염되기도 했고, 양식이 부족해 환자는 먹이고 수녀들은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 김애련 원장 수녀(앞줄 왼쪽)와 자원봉사자 등‘시몬의 집’식구들이 성모상 앞에서 환히 웃고 있다/주완중기자
그런 역경 속에서도 수녀들의 헌신은 중단되지 않았고, 천주교 신자들이 보태주는 후원금에 의지해 무료요양시설로 30년을 이어온 것. ‘시몬의 집’ 초창기 서울대교구장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이 많은 관심을 보여준 것은 ‘시몬의 집’에는 천군만마였다. 김 추기경은 수시로 허름한 초가집인 ‘시몬의 집’에 들러 환자들과 수녀, 자원봉사자를 위로하고 미사도 직접 집전하곤 했다. 김애련 수녀는 “얼마 전 개원 30주년 행사와 관련해 김 추기경을 찾아 뵈었는데 초창기 일을 소상히 기억하시면서 후원금과 묵주, 열쇠고리 등을 기념품으로 주시면서 격려하셨다”고 자랑했다.

논밭과 야산밖에 없던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정도로 세월이 흐른 동안 ‘시몬의 집’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초가로 시작한 시설은 1981년 기숙사, 1984년엔 지상 3층, 지하 1층의 현대식 생활관으로 발전했고 지난해에는 주방 창고와 수녀들과 봉사자를 위한 시설도 증축했다. 이제 서른 살이 된 ‘시몬의 집’은 대대적으로 변신한다. 노인과 치매, 중풍환자를 위한 보호시설로 기능이 바뀌는 것.

▲ 김수환 추기경이 1977년 이른봄 당시 초가(草家)이던‘시몬의 집’을 방문한 모습.
올초부터 원장을 맡고 있는 김애련 수녀는 “결핵은 발병률이 줄어들고 있는데다 파주 지역도 노인 문제가 점점 심각해져서 이제는 노인복지시설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변화에 따라 지금 도움이 필요한 대상을 새로 찾아나서는 것. ‘시몬의 집’은 노인시설에 걸맞게 최근 엘리베이터를 들이고 방마다 화장실·세면실을 설치하는 등 새 손님을 맞을 채비를 끝냈다. 22일 천주교 의정부교구장 이한택 주교의 집전으로 열리는 기념식은 ‘시몬의 집’의 새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김애련 수녀는 “시몬은 베드로 사도의 원래 이름으로, 예수님이 그의 집에 자주 머물며 병자들을 고쳐주신 곳”이라며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앞으로도 심신이 불편한 분들을 잘 모시겠다”고 말했다.

김한수기자 hansu@chosun.com
입력 : 2006.10.11 23:35 05' / 수정 : 2006.10.11 23:3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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