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3070
- 글쓴이 : 홍보국
- 작성일 : 2006/08/23
- 조회수 : 3,336
신앙 안에서 전해져 온 진실 - 윤인규 신부
[신앙 안에서 전해져 온 진실]
윤인규 솔뫼성지 지도 신부
성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님이 태어나신 솔뫼는 충청도 내포 지방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내포’內浦는 바닷물이 육지 깊숙이까지 들어와 배가 드나드는 여러 포구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지역은 바닷물이 빠지면 육지가 되고 바닷물이 들어오면 바다가 되어 밤낮으로 지형과 지세가 바뀌는 곳이다. 그 때문에 내포는 드나드는 바닷물로 수계水系가 발달되어 해상 문화를 접하기가 쉬웠다. 일찍이 중국 당나라 어선이나 상선, 군선이 자주 출입을 하여 내포 어귀에 ‘당진’唐進이라는 지명도 생겼다.
성 김대건 신부님의 10대 선조 김희현金希賢이 아산 현감을 지내면서 이 가문은 충청도 내포와 인연을 갖게 된다. 그리고 9대 선조 김의직義直이 충청병마절도가 되어 임진왜란이 참전하고 전공을 인정받아 가문에 내포의 토지와 벼슬이 내려졌다. 김 신부님은 8대 선조 김수완(守完, 1583~1655년) 때부터 솔뫼에 거주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조선은 패전이 기술 과학의 후진성 때문이라고 진단하였으나 그 발전의 발목을 잡는 것은 정치·사회적 질서였다. 특히 신분 질서는 국가 발전에 총체적인 걸림돌이 되었다. 이 같은 문제를 진단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실학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숙종 때 실각한 남인들도 충청도· 전라도·경상도 등 삼남으로 흩어졌다. 특히 경기, 호서(충청 서안), 해서(황해도) 등 기호 지방을 중심으로 사회적 반성과 국가 발전에 실익이 되는 실학 연구가 성행하였다. 호서 지방, 즉 내포 지방에는 기술 과학을 중시 여기는 북학파 실학자와 인간과 하느님에 대한 학문적·종교적 관심을 갖는 서학파 실학자들이 많이 있었다. 이 무렵 내포 실학자들과 두터운 교분을 쌓고 있던 내포의 사도 이존창은 자신의 조카딸이 김대건 신부님의 조부와 혼인하자 이 가문을 서학(천주교)으로 이끌었다.
내포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유난히 순교자가 많고 한국 교회 초기 신앙 공동체가 넓게 퍼져 있던 이유는 이 지역이 역사적으로 억압을 받고 수탈을 당한 역사와 관련이 있다. 백제가 멸망한 뒤 당나라 군대가 우리나라에 주둔하였는데, 특히 내포는 당나라의 출입구 역할을 하여 중국 문물이나 이해가 낯설지 않은 지역이다. 후백제 멸망과 고려 건국 과정에서도 내포는 많은 희생을 치르고 천민 지역으로 전락한다. 조선에 와서도 내포의 특산물인 쌀과 소금을 모아 한양으로 실어 나르느라 포구 인근에 수많은 창촌락倉村落이 남아 있을 만큼 그 수탈은 심했다.
성 김대건 신부님의 가문은 이와 같은 지리적·사회적·역사적 배경 속에서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그분은 외국인 선교사에 보내는 자신의 서한 말미에 아홉 번이나 ‘김해 김’이라고 적을 만큼 가문의 배경에 대단한 긍지를 가지고 계셨다.
솔뫼 성지에는 피정의 집(1982년 신축), 김대건 신부 생가(2004년 복원), 김대건 신부 기념관(2005년 신축) 등과 같은 건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솔뫼 성지가 있는 내포의 들과 내에는 출애굽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던 것처럼 하느님 섭리 속의 역사적 고통이 담겨 있다. 그래서 솔뫼 성지는 그 고통을 통하여 하느님을 체험한 내포인들의 고통과 순교 신앙을 상징한다.
2004년 김대건 신부님의 생가를 복원했을 때의 일이다. 박해를 피해 솔뫼를 떠난 후 허물고 그 터를 훼손하여, 전주 초남이처럼 파가저택破家 宅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허리 높이로 흙을 쌓아버린 180년이 넘도록 묻혀 있다 나온 와편들과 자기 조각들은 부서지고 짓이겨진 순교자들의 모습과 같았다. 그간 생가 터가 내포 신자들의 구전으로만 전해져 역사 실증적 취약성을 갖고 있었다. 구전뿐이었지만 신앙 안에서 전해지는 사실들이 진실임을 성 김대건 신부님 생가 복원 과정에서 다시 한번 밝혀졌다.
오늘도 수많은 순례자들이 내포 여러 성지와 솔뫼 성지를 방문하고 있다. 그 순례자들의 영혼은 순교자들이 태어나고 신앙을 받아들이고, 그 신앙 때문에 고민하고 갈등하던 이 땅으로 모여든다. 오라고 초대하지 않아도 땀을 흘리며 아픈 다리를 이끌고 성지를 찾는 순례자들의 모습과 걸음에서 본성적으로 하느님 나라를 향하는 영혼을 엿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