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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 2010/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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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으로 썩는 것 막고 사랑·나눔으로 맛내는 세상 돼야” (충청투데이)

“정직으로 썩는 것 막고 사랑·나눔으로 맛내는 세상 돼야”
[신년대담]천주교 대전교구장 유흥식 라자로 주교
 
2010년 01월 01일 (금) 지면보기 |  3면 이기준 기자 poison93@cctoday.co.kr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09년 한 해가 저물고 2010년이라는 또 다른 시작과 만났다. 지난해에도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는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됐고 그러면서 원했든 원치 않았든 우리 사회는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을 잉태했다. 물론 갈등과 대립은 한편에선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도가 지나치면 ‘파괴’의 원인이 된다.

갈등하고 대립하면서도 서로가 공통분모를 찾아낼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한 발 나아갈 수 있지만 선(善)과 악(惡)의 대결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정체되거나 퇴보할 수 밖에 없다.‘발전’과 ‘정체 혹은 퇴보’를 규정하는 잣대가 바로 공통분모를 찾아내느냐 못 하느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충청투데이는 2010년 새해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시대적 양심’이라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장 유흥식 라자로 주교를 찾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각박한 삶의 모순을 진단하고 우리 사회 구성원이 되돌아 봐야 하는 시대적 가치가 무엇인지 조언을 들어봤다.

대담 = 김도훈 편집국장

지난 23일 천주교 대전교구장 집무실에 들어서자 유흥식(57) 주교는 온화한 미소로 취재진을 맞았다.

손을 꼭 잡아 인사를 나누면서 함께 정(情)을 통하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널찍한 집무실을 가득채운 책과 서류들을 통해 주교라는 지위가 얼마나 바쁜 일과를 소화해야 하는 지도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

대략 집무실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큰 탁자가 집무실 중앙에 놓여져 있는 데 원형에 가까운 모양이다. 상석과 하석을 구분하고 싶지 않아 일부러 바꿔 놓았다고 한다.

물론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집무실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어디에선가 보내져왔을 50여 장의 형형색색 크리스마스 카드와 소박한 전등으로 꾸며진 트리가 집무실 한 켠을 장식하고 있었다.

▲자연에서의 사색

누구보다 바쁜 한 해를 살아온 유흥식 주교의 근황을 가장 먼저 물었다.

2005년 대전교구장을 승계하면서부터 왕성한 활동을 펼쳐온 만큼 그 원동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은 테니스입니다. 25년 정도 됐어요. 지금도 기쁜 마음으로 즐기고 있습니다. 또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시간이 나면 계족산에도 오릅니다. 그 속에서 조용히 사색하면서 걷는 것이 매우 유익하고 은혜로운 시간입니다. 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잖아요. 자연에 있으면 제가 더 순수해지고 선해짐을 느낍니다. 좀더 자주 산에 오르고 싶은데 뜻대로 잘 되지 않네요.”

규칙적인 생활과 사색, 이것은 말로는 쉽게 할 수 있지만 누구나가 실천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바로 확고한 신념과 진정성이 바탕이 돼야 하고 ‘나’ 스스로를 자연의 일부로 느끼는 오랜 수련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인도주의를 실천하다

유흥식 주교는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일종의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언제나 유 주교의 웃음은 상대방에게 편안함을 주는 데 이런 노력 때문인지 유흥식 주교의 웃음엔 항상 너그러움이 배어 있다.

“2008년까지 한국카리타스 위원장을 맡으면서 북한을 4차례 방문했습니다. 북한의 많은 이들이 배고픔과 추위, 질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남는 음식으로 북한 사람들이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복음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처럼 배고프고 어려운 이들은 조건없이 즉시 도아줘야 합니다. 부모 잘 못 만난 탓으로 돌리고 그들이 굶어 죽도록 놔둬서야 되겠습니까. 북한은 누구보다 먼저 우리가 도와야 할 형제이고 이웃 아닙니까. 우리 정부도 넓은 마음으로 인도적으로 북한을 돕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교황님도 기도합니다”

유흥식 주교는 최근 로마에서 교황의 사랑을 다시 한 번 느끼고 돌아왔다.

한국 방문 요청에 대해선 “하늘에 맡기고 길을 찾아보자”고 답변했다고 한다.

“지난 11월 3주 가량 로마에 다녀왔습니다. 개인적으로 8년동안 공부했던 곳이기에 고향처럼 포근한 곳이기도 하죠. 그곳에서 교황님을 개인적으로 뵙고 말씀을 나눌 수 있는 영광도 있었습니다. 교황님께선 ‘북한의 굶주린 형제와 남북통일을 위해 매일 기도한다’고 하셨습니다. 누가 제게 교황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랑하시는 분, 그래서 가장 큰 십자가를 지신 분’이라고 답변하겠습니다.”

▲가정의 위기를 되돌아 보다

사랑이 충만한 세상을 위해 많은 이들이 기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의 기초인 가정은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언제부턴가 다문화가정이 팽창하면서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과제도 늘었다.

“가정은 인간성을 배우는 최초의 학교 입니다. 가정은 사랑과 행복의 원천이고 모든 힘과 용기의 근원입니다. 가정에서 받은 사랑과 신뢰는 어느 환경, 어떤 장소에서든지 성숙한 모습으로 행동하도록 만듭니다.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인내심을 갖고 성실하게 이겨낼 수 있는 성숙함을 줍니다. 가족 구성원끼리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지내면서 마음을 열고 대화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가장 큰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결혼을 위해서도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외적인 준비도 그렇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는 내적인 준비도 중요합니다. 내적인 준비없이 결혼을 하게 되면 조그만 문제가 발생해도 극복하지 못하게 됩니다. 성숙함의 부족이죠. 대충대충 결혼하니까 요즘 시골에 가면 조손가정 아이들이 많아 걱정이라는 말도 나오는 것입니다. 어른이 모범을 보이길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다문화가정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의 흔적을 엿보였다.

“전세계 이주민이 2억 명을 넘었습니다. 그중 3300만 명 정도가 피난민이거나 난민입니다. 이들을 ‘현대판 노예’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외국인 노동자 수가 불법체류자를 포함해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한국 남자와 결혼한 동남아 여성이 15만 명 정도이고 여기서 태어난 아이가 10만 명 정도 됩니다. 이들은 골칫거리가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백인 앞에선 열등의식을 느끼면서 유색인들 앞에선 우월감을 갖고 함부로 대하는 것은 ‘나쁜 모습, 고쳐야 할 모습’입니다. 이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따뜻하게 맞아주는 사랑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세종시 갈등도 불신의 결과

지난 한 해 우리 나라를 가장 뜨겁게 달궜던 이슈 중에 하나가 바로 행정도시 갈등이다.유흥식 주교는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세종시는 수 많은 공청회와 여야의 긴 대화와 타협을 통해 탄생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비효율을 말하면서 대안을 내놓겠다고 말하는 데 정부가 내놓은 대안들은 실행 가능성이 적을 뿐만 아니라 진정성이 떨어지고 그래서 믿음을 잃게 만듭니다. 말이 다 다릅니다. 대통령과 정부는 진정성을 가졌으니 믿어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제발 믿어달라’고 말하는 것은 뒤집어 보면 얼마나 불신이 큰 지를 반증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나 진정성은 부탁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듣는 사람이 그 행위를 보고 주는 것이죠. 어려울 때일수록 근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대통령과 정부가 신뢰를 잃은 것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깨진 신뢰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선 몇 배의 노력이 요구됩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최고의 효율이 나옵니다”

▲변화하는 사람에게서 희망을 본다

새로운 2010년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유흥식 주교는 ‘선과 악으로 대비되는 경쟁에서의 탈피’를 화두로 던졌다.

“사람이 새로워지면 새로운 것이 나옵니다. 법과 제도를 고쳐도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이 새롭지 않으면 그 결과는 미세합니다. 우리 사회가 법이 부족해 혼란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교육이 바뀌어야 합니다. 교육은 도덕과 윤리에 바탕을 둬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경쟁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한다’는 것만 가르칩니다. 아주 무서운 교육입니다. 내편은 무조건 선(善)이고 반대편은 함께 살아가는 ‘상대’가 아니라 ‘적’이 됩니다. 나에게 이익이 되면 괜찮고 손해가 되면 악(惡)이 되는 가치관은 우리 사회를 무서운 사회로 만듭니다. 우리는 이미 경험하고 있습니다. 나라의 법이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적용돼야 하는 데 그렇지도 못 합니다. 요즘 경제사범에게 사면권을 행사한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용서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공평해야 합니다. 정부가 법 적용을 ‘자신의 잣대’로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것은 큰 불행입니다.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인간관계가 필요합니다. 정직함으로 썩는 것을 막고 또 사랑과 나눔을 통해 맛도 내는 소금같은 사람이 됩시다.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더 행복합니다. 새해에는 좋은 일이 많은, 보람 있는 한 해가 되시길 빕니다. 특별히 이웃에게 무엇인가 줄 수 있는, 주는 삶을 통해 더 행복한 사람이 되시길 빕니다.”

정리=이기준 기자 poison93@cctoday.co.kr

사진=김상용 기자 ksy21@cctoday.co.kr

유흥식 라자로 주교는 …

1951년 11월 17일 충남 논산 출생(대건고 졸업), 1975년 2월~1983년 2월 교황청립 라테란대학교·대학원 유학(로마) 1979년 12월 8일 사제 서품, 1983년 2월 교의신학 박사학위 취득(라테란대학교), 1998년 12월 대전가톨릭대학교 총장, 2003년 8월 19일 주교 서품, 2005년 4월 1일 대전교구 제4대 교구장 계승, 2007년 4월 24일 교황청 사회복지평의회 위원 임명, 2008년 10월 17일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