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마당]월드컵 낙수(2) | ||||||
| 성병렬 옥계동성당 주임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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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세기에 들어와서 두번째 맞이한 월드컵이 끝난 지도 벌써 달포가 됐다. 언제 그런 지구촌 축제가 있었는지 의아해 할 정도로 우리 기억 속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새로운 사건, 사고들이 우리 주변을 에웠고 어쩌면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익사(?)에 직면하고 있는지 모른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우리에게는 망각이라는 유용한 태생적 결함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 망각을 미덕이라고 늘 말하곤 한다. 삶을 영위하는 가운데 만일 우리가 모든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나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위해한 행위를 나는 용서하고 관용할 수 있겠는가. 이는 개인과 가족, 단체, 민족과 국가에 두루 통용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잊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역설적 축복인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잊어야만 되는 것이 있고 잊어도 되는 것 그리고 잊어서는 안되는 일이 있다. 지난 독일월드컵 때 잊지 못할 사건 중의 하나를 말하라면 주저하지 않고 스위스와 우리나라의 경기를 들 수 있다. 이 경기에서 승리해야만 16강 진출이라는 위업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유난히 심판들의 오심과 편파적 판정이 인구에 회자됐다. 필자는 여기서 심판 판정의 잘잘못을 가리자는 말이 아니다. 그럴 위치에는 더더구나 가까이에 있지도 않다. 외국의 능력 있고, 뛰어난 팀을 보기 좋게 쓰러트려 멋진 승리를 낚아내는 것도 살기 힘든 요즈음 국민들에게 나름대로 힘과 용기를 배가시키는 청량제가 되지 않을까. 그런 측면에서 2002 한일월드컵의 영광 재현이란 절체절명의 역사적 사명이요, 국민적 관심사요, 우리의 간절한 염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될 사건이 하나 있다. 이야기는 스위스와 우리나라의 경기현장으로 되돌아간다. 긴장감이 감돌고 팽팽하던 경기가 우리에게는 오프사이드 논란이 가능한 그 순간에 호루라기를 불지 않았고 이것이 골로 연결돼 우리 팀이 패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한다. 그렇지만 현장의 모든 경기운영과 판단은 심판에게 있지 않은가. 모든 책임과 권한은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아무도 그 판단에 영향을 미쳐서도 안된다. 답답하고 분통 터지기는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그런 상황을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이건 역사의 가정법이다. 가정법은 비현실적이다. 능력을 키워야 한다. 피파(FIFA)에서도 심판의 판단이 옳았다고 전한다. 헌데, 모 방송국 S해설위원은 방송 도중 그 심판의 판정이 옳고 경기 규칙 위반이 아님을 강조했다. 성난 시청자들과 네티즌들의 불만이 그 방송 시청률 저하로 이어져 도중하차한 사건이다. 그 해설위원에 대한 욕설과 비방이 난무한 현장을 우리는 지켜봐야 했다. 언론은 사실의 진위보다는 맹목적 애국심(쇼비니즘)에 호소하는 듯한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필자는 이 사실이 간과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문제의 핵심이다. 우리 사회의 올바른 시민의식과 성숙도를 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 우리는 원칙보다는 감정을 내세워 매사를 판단하려 하지 않는가. 냉철한 이성과 뜨거운 감성의 조화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병리현상 중 하나다. 이웃 아파트 주민의 소음 때문에 폭력이 난무하고 살인으로 막 내린 사건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지 않는가. 당장 받아들이기 힘든 거북한 결정이라도 원칙에 충실한 판단이라면 수용할 줄 아는 아량과 관용이 요구된다. 우리 사회가 원칙에 충실하다면 그만큼 혼란은 반감될 것이다. 문제의 그 해설위원의 판단이 옳았다면 소수라도 그에게 명예회복의 기회를 돌려주는 사회시스템이 우리에게는 있어야 한다. 나의 이익, 견해와 다르다고 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단과 평결이 매도당하고 원칙이 무시된다면 우리는 좋은 사회, 상식적이고 건전한 선진사회와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최소한의 양심과 크든 작든 사소한 원칙이라도 존중하고, 배려하는 성숙한 민주사회가 됐으면 한다. 이번 월드컵에서 느낀 원칙에 대한 한 시민의 생각이다. 좀더 나은 미래, 사회와 국가를 위하여 원칙을 존중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은 나 자신의 의지와 건전한 판단과 성숙한 행위에 달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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