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마당]월드컵 낙수(1) | ||||||
| 성병렬 옥계동성당 주임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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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월 한달 우리는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며 울고 웃고 밤잠을 설쳐 가며 우리 대한의 건아들에게 용기와 힘을 불어 넣은 어쩌면 행복한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국민 모두가 거리에서 독일 현지에서 선수들과 하나되어 지난 2002년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국민적 열망을 담아냈다. 선수들의 발짓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국민의 응원 열기는 외신들의 지대한 관심은 물론 거리응원이라는 새로운 응원 문화를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월드컵은 지구촌을 하나로 묶는 커다란 축제가 되었고 '팀가이스트'(Team Geist)라는 공인구가 의미하듯 이는 '팀정신'으로 국가의 명예를 걸고 최선을 다하는 지구촌 축제였다. 필자에게도 본당 신자들과 함께 대형 스크린 앞에서 목 터지게 응원한 기억이 아스라한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다. 월드컵에 출전한 각국의 선수들의 현란한 발재간과 신기에 가까운 묘기는 우리에게 감탄과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왜 그들은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토록 자기 기량을 뽐낼까? 월드컵이 갖고 있는 시장성이라면 지나친 판단일까? 우수한 선수들은 유수한 구단의 스카우트의 대상이 되고 그들은 결과에 따라 엄청난 명예와 부를 거머쥐게 된다. 현대를 자기 PR의 시대라 하지 않는가. 자기 몸값은 자기 관리와 능력에 달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성취를 위해 최선을 다하여 좋은 결과를 가져오면 이에 따르는 결과는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대우를 받게 된다. 이와는 달리 정반대의 꼭짓점에 있는 윤리의 세계가 그리스도교의 그것이다. 드러내지 않고 타인에게 과시하지 않으며 겸양, 겸손, 낮춤의 윤리요 한마디로 역설의 미학이다. 세상이 추구하는 세계가 물질 만능주의와 계량화된 배금주의 세계관이 현대인들에게 진정으로 희망을 선사할 수 있는가. G. 마르셀이 말한 대로 '깨진 세상'을 위하여 인간에게 필요한 가장 필요한 덕목이 무엇일까. 양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절망에 빠진 유럽인들에게 그 무엇이 위로가 되었는가. 그것은 어떤 난관과 역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희망'이다. 쓰레기더미 위에 피어나는 빨간 장미 한 송이요, 죽어가는 환자에게 희망이 되는 '마지막 잎새'이다. 희망을 성취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쏟아내는 자기 '성실(誠實)'이다. 이 '성실'을 바탕으로 진정한 '너와 나'가 성립되고 인격적 만남이 이루어지리라. 현대 물질문명의 한계와 그 멍에로부터 진정한 자유는 무엇일까 자문해 본다. 이스라엘의 구태의연한 질서에 새로운 질서의 깃발을 내세웠던 예수는 선포한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배반당하고 급기야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현대인들에게 충고한다. 우리 성공의 단면을 월드컵이라는 축제의 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면, 그리스도교 윤리에 대한 역설의 의미를 다시 한번 반추해 본다. 월드컵 출전선수들의 땀과 노고의 대가가 부와 명예로 돌아온다면 예수의 진정한 가르침의 의미는 겸손과 낮춤의 윤리이다. 그래서 예수는 "네가 자선을 베풀 때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마태6,3)라고 말씀했다. 월드컵을 관전하면서 느낀 기존의 가치관과 사유에 대한 또 다른 사유의 여백이요, 화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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