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철 피서지가 한창 성수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최대 단 점 중 하나는 바로 ‘북새통’이다. 더위를 피하려 갔다가, 혹은 심신을 달래려 갔다가 오히려 바가지 요금이나 조금만 움직여도 부딫히는 인파 등에 짜증만 더하기도 한다. 이 때, 조금만 눈을 돌려본다면 말 그대로 ‘피서’하기 딱 알맞은 장소가 있다. 바로 ‘성지’(聖地)다. 성지란 본래 특정 종교에서 신성시 하는 곳, 즉 종교의 발상지였거나 순교가 있었던 지역을 가르킨다. 기독교의 예루살렘이나 로마, 이슬람교의 메카 등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기원지인 서구보다 천주교의 역사는 뒤지지만 한국 또한 이러한 성지가 있다. 천주교가 서양인의 종교란 이유로 수많은 박해를 받아오기도 한 땅이지만 이제는 그 난관을 극복하고 터를 잡았다. 종교의 역사는 인류의 그것과 일맥상통한다. 때문에 천주교를 종교적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타 종교인에게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조금만 이 배타성을 버린다면 고즈넉한 여름휴가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밤이면 집집마다 불빛이 은하수처럼
◇ 안성 미리내 성지(안성시 양성면)
‘미리내’는 은하수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천주교 신자들이 신유박해(1801)와 기해박해(1839)를 피해 숨어 들어와 교우촌을 형성했는데, 밤이면 집집마다 흘러나오는 불빛이 달빛 아래 비치는 냇물과 어우러져 마치 은하수처럼 보였다 해서 미리내라 불려졌다 한다.
한국인 최초로 가톨릭 신부가 된 김대건 신부의 묘와 그의 어머니 우르술라, 김신부에게 사제품을 준 조선 교구장 페레올 주교 등의 묘가 안치돼 있어 천주교인들에게는 특별한 성지이다.
1821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난 김대건 신부는 그의 나이 24세 때 한국인 최초로 신부 사제서품을 받았다. 하지만 국내 상황은 천주교인의 박해가 점점 더 심해져 갔고 비밀리에 천주교를 전파했지만 결국 신부가 된지 1년 만에 새남터에서 ‘사학죄수’란 죄목으로 참수형을 당하게 된다.
미리내 성지에는 김대건 신부 추모성당,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기념성당, 16위 무명 순교자 묘지, 피정의 집 등이 있으며 김대건 신부의 턱뼈, 발가락 뼈 등이 안치돼 있다. 성당 앞마당에서 조금 올라가면, 게쎄마니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를 바쳤던 예수와 그 옆에서 자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이 실물 크기로 만들어져 성서 속의 모습을 재현했다. 674-1256.
◇ 단내 성가정 성지(이천시 호법면)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정은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또한 김대건 신부가 사목활동을 하던 곳이기도 하다. 이천 출신 성인 5위를 기념하는 순교비가 있는데, 이 순교자들은 대부분 가족 순교자들로 지극한 부부 사랑과 자녀 사랑, 효심을 보여주는 모범 가정이었다. 그래서 단내 성지는 특별히 가정에 일치와 평화, 사랑과 행복을 재건하는 성가정 성지로 불리고 있다. 크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다. 등산로와 산책로도 있어 걷기에 좋다. 633-9531.
◇남양 성모 성지(화성시 남양동)
우리 나라에 유일하게 있는 성모 성지이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무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한 곳으로 1991년 10월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됨으로써 한국 교회 사상 처음으로 성모 마리아 순례지로 선포됐다. 파티마나 루르드 같은 외국의 유명한 성모 성지는 성모님이 직접 발현한 장소이지만 남양 성모 성지는 발현 장소는 아니다. 하지만 유독 모성애가 강한 한국 천주교신자들의 성모 신심으로 인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 곳에는 우리에게 보다 친숙한 ‘한국형’ 성모님이 있는데, 두 팔을 벌려 자신을 향해 있는 모든 이를 위해 마음으로 열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산책하면서 십자가의 길이나 묵주 기도를 바칠 수도 있다. 곳곳에 예쁜 꽃들과 푸른 잔디밭, 아름다운 산책길이 있어 종교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정원 같은 곳이다. 356-5880.
/박노훈기자 nhpark@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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