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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09/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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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동성당 분향소 ‘애도 발길’ 잇따라

대흥동성당 분향소 ‘애도 발길’ 잇따라
17일 오후 2시부터 연도…내일 오후 7시 추모미사 봉행
2009년 02월 17일 (화) |  0면 - 충청투데이 / 권도연 기자 saumone@cctoday.co.kr

김수환 추기경의 대전분향소가 17일 대전교구 대흥동 성당에 설치돼 조문발길이 이어졌다.

김 추기경의 선종 소식이 전해지자 대흥동성당엔 전날 밤부터 신도들의 조문 문의 전화가 잇따랐으며, 이날 오후 2시 분향소가 설치되자 신도와 일반인들이 연도(煉禱·위령 기도)에 나와 김 추기경의 선종을 애도했다.

   
▲ 고 김수환 추기경의 대전 분향소가 17일 오후 2시 대흥동성당에 마련, 신도들이 분향을 하고 있다. 권도연 기자


이날 연도에 나온 천영희(여·대동성당) 씨는 “사회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 우리나라의 빛과 같은 분이 하느님 곁으로 가셨다”며 “생전에 직접 뵌 적도 없는데 착잡한 마음에 자꾸 눈물이 난다”고 흐느꼈다.

여든 다섯살 고령의 나이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분향소로 걸어들어가던 최 데레사(여·대흥동성당) 씨는 "선종하신 게 믿기지 않는다"며 "이 나라에 남긴 발자취가 너무 크고 깊어 아쉽기만 하다"고 말했다.

김종연(남·옥계동성당) 씨는 “대전에도 분향소가 마련됐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왔다"며 “부모를 잃은 마음같다”고 슬퍼했다. 정순자(여·관저동성당) 씨는 "이 시대의 스승이자 아버지같은 분이 떠나셨으니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했다.

   
▲ 고 김수환 추기경의 대전분향소가 17일 대전교구 대흥동 성당에 설치돼 조문발길이 이어졌다.

유흥식 주교는 "추기경님 아버지가 충청도분이라 충청도와 대전교구에 관심이 많으셨고 순교자가 배출돼 참 특별한 교구라 하셨다"며 "마지막까지 교회와 인류를 위해 소진하고 가셨으니 정말 크신 분"이라고 했다.

대흥동성당 분향소엔 이날 밤 9시까지 연도가 봉행될 예정이며, 성당 측은 18일 오후 7시 유흥식 라자로 대전교구 주교의 집전으로 미사를 연다.

대흥동성당은 고(故)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장례절차가 마무리될 때까지 고인을 추모하는 기간으로 정하고 연도를 진행키로 했다.

  권도연 기자 saumone@cctoday.co.kr 동영상=허만진 영상기자 hmj1985@cctoday.co.kr

유흥식 주교 “신앙·삶에서 사람을 사랑하셨던 분”

   
▲ 유흥식 라자로 대전교구 주교가 17일 분향소가 마련된 대흥동성당에서 고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생전 추억을 얘기하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이제 좋은 곳에 가셨으니까 그 신앙과 삶에 감사드리는 마음이죠.

정말 크신 분이었기 때문에 우리 교회를 위해서도 나라를 위해서도 옆에 계시기만해도 좋은데 더 이상 뵐 수 없죠.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 모두가 가야될 길이고. 부럽기도하고.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 금요일날도 가서 추기경님을 뵈었거든요. 3일 전이죠. 새로운 보좌주교님 인사시켜 드리기 위해서. 새로 시작할 때 제일 어른께 보고를 드려야 하잖아요.

갔더니 그때 아주 않좋으셨어요. 아주 않좋다는 소식을 알고 있어서 '만약에 않좋으면 문 앞에라도 다녀오겠다'고 했었는데 저희들이 왔다고하니 병실 침대에 기대서 눈을 뜨시더니 벌써 고개를 끄덕끄덕하셨어요. '이렇게 와줘서 고맙다'고 목소리 알아듣기가 힘들었는데, 옆에 수녀님이 '지금 고맙다고 그러셨다'고 하더라고요.

뵙고서 '추기경님, 저희들 앞으로 서로 협력해서 좋은 대전교구 만들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추기경님이 쳐다보시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모습이셨죠.

그리고 나중에 저희가 추기경님께 강복드리고 추기경님이 힘이 없으시니까 추기경님 손에다가 축복해주는 마음으로 이마에 손을대고 그러셨죠.

그러고 나서 조금 있다가 나왔는데 추기경님 입원해 계실적에 가끔가서 찾아뵜거든요. 60주년 전에도 가서 '추기경님, 잘하겠습니다' 말씀드렸더니 추기경님께서 '소식도 보고 잘 알고있다고, 정말 큰 일 했다'고 좋아하셨고. 

추기경님 아버님이 충청도 분이세요. 그렇기 때문에 충청도와 대전교구에 관심이 많으셨고, 순교자가 많이 배출됐으니까 참 특별한 교구라고 그러면서 항상 저한테는 그러셨어요.

그리고 2년 전인데 그 때는 추기경님과 30분동안 이야기를 했어요. 저를 보더니 '우리 유 주교님만 보면 항상 웃는 모습이라서 참 좋다'고 그러셨어요.

'추기경님, 속이 없어서 웃습니다' 그랬더니 추기경님이 절 보고 '항상 웃음을 가질려면 속에서 십자가를 끌어안고 부활한 못을 가지지 않으면 웃음을 가질수 없으니까, 항상 웃음 부활한 못을 쥐기 위해서 속에서 어려움이 있는 것은 다안다'고.

추기경님이 어떤 때는 '유 주교님 연세가 어떻게 되셨더라' 그래서 추기경님 나이요, 나이요 그랬더니 웃으시고 저를 보더니 유 주교님이 나보다 머리가 더 희다 그래서 제가 건방져서 그렇습니다….

만날 때면 편안한 분, 좋으신 분, 저로서는 정말 개인적으로 추기경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거든요.

그래서 오늘 아침에 신자들에게 조그마한 메세지 전했는데 저로서는 정말 작은 추기경님처럼 되라, 신앙심에서 삶에서 정말 그 분은 사람들을 사랑하셨던 분이거든요.

그런 삶으로 다시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고. 저도 이럴 줄 몰랐는데 한 편으로는 굉장히 부럽고. 사람은 결국 가잖아요. 그렇다면 하늘에서 도와주실 것이고 마지막에 있을 적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들었거든요.

추기경님께서 당신 어려우시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이 어려움을 주지 않기 위해서 빨리 하느님께 같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하셨다고 그래요.

그럼 옆에서 '추기경님, 하느님이 부를 때 가셔야지 그게 말이 됩니까' 그러면 그럼 아무 소리도 못하시고 그러면서 마지막까지도 어떤 인공적인 기구도 쓰지 않으셨잖아요.

인공호흡기 이런 것 없이 정말 마지막까지 촛불이 꺼지듯이 마지막까지 교회 인류를 위해서 다 소진하시고 가셨으니까 정말 크신 분이에요.

오늘 아침에 로마에 계신분 하고 통화를 했는데, 두 분하고 통화를 했는데 추기경님이 한국만의 추기경님이신 줄 아냐, 세계의 추기경님이시지 지금 세계 다른나라에서도 추기경님이 가신것 에 대해서는 굉장히 관심이 많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