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22085
- 글쓴이 : 한광석
- 작성일 : 2008/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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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목적은 내적 구원, 정치문제 개입 꺼려"
부산교회사연구소 학술연구발표회
일제 강점기에 국내 거주 서양 선교사들이 한국인의 독립운동에 부정적 태도를 취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뮈텔 주교는 안중근(토마스)이 이토오 히로부미를 암살하자 그가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을 부인했다. 프랑스 선교사들은 용산신학교 학생들이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신자들이 천주교 이름으로 독립운동에 가담하는 것을 강력하게 만류했다. 선교사들의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길래 이런 태도를 취한 것일까.
한국학중앙연구원 윤용복 박사는 13일 부산교회사연구소 주최로 열린 학술연구발표회에서 "선교사들은 한국이나 일본의 정치문제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철저한 정교분리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며 "그들은 친일적 성향이라기보다 교회 목적이 내세 구원이기에 종교 이름으로 정치적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꺼려했다"고 말했다. 선교사들이 안중근 의사에게 성사를 준 빌렘 신부를 비난한 것 역시 정교분리 원칙에 충실하고, 내세 구원을 강조하려는 태도에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윤 박사에 따르면, 한국이 독립운동을 통해 독립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게 선교사들의 일반적 인식이었다. 선교사들은 또 날이 갈수록 강제성을 띠는 독립운동 전개양상을 보면서 회의적 입장을 나타냈다.
선교사들의 천주교 보호의식도 한 이유다. 특히 프랑스 선교사들은 피의 박해를 겪은 경험이 있기에 교회 안전을 보장받으려면 일제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정책에 협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일제 지시에 무조건적으로 따른 것은 아니다. 일제가 성당 안에 일장기를 게양하도록 요구하자 선교사들은 "성당은 오직 미사성제와 기도, 순수한 종교의식만을 위한 장소"라며 반대했다.
윤 박사는 또 "선교사들은 당시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에 식민지를 갖고 있는 프랑스와 독일 출신"이라며 "따라서 제국주의 문화에 익숙해져 있어 문명국이 미개국을 식민지로 만드는 것에 큰 모순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교회는 한불수교 100주년(1986년) 기념 학술대회 등 과거 몇 차례 심포지엄을 통해 프랑스혁명(1789~1794년)과 가톨릭이라는 역사적 측면에서도 이 점을 조명한 바 있다. 프랑스교회는 혁명 때 큰 피해를 당한 이후 정교분리원칙에 따라 '정치 불간섭'을 표방했는데, 일제하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도 그 영향을 받았다는 게 역사학자들의 대체적 견해다.
또한 이날 '성당 건축의 공공성에 관한 연구'를 발표한 홍종원(동명대 건축학) 교수는 오늘날 지역사회에서 성당의 역할은 내부 공동체와 외부 공동체의 관계를 재설정할 수 있는 '공공적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급속한 도시화로 현대사회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반대로 정신적 빈곤과 인간소외로 위기를 맞고 있다"며 "성당건축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따라 현대사회 문화를 포용하고, 지역사회를 위한 준공공시설로의 적극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화신문 이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