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20690
  • 글쓴이 : 한광석
  • 작성일 : 2008/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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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모두를 살리는 희생

상처 주고받는 악순환 반복 이웃돕기 훈훈한 세상 만들어 유흥식 라자로 주교 <천주교 대전교구장> ‘희생’이란 현대인에게 잘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되어간다. 희생이란 말을 꺼내기도 낯설고 어색하기만 하다. 케케묵은 냄새, 종교적인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보통으로도 ‘희생’은 억울하기 짝이 없고, ‘희생양’이 되는 어리석음은 피해야 할 일로 알고 있다. 때문에 한 치의 손해라도 보게 되면 상대편의 상황이 어떠하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극단적인 행동까지 서슴지 않는 오늘의 상황에서 큰 상처를 주고받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현실을 자주 대한다. 몇 년 전에 ‘희생’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교수였던 주인공이 말 못하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바닷가에서 죽은 나무를 심고 있는 첫 장면부터 인상적이었는데 정성스럽게 물을 주면 죽은 나무도 살아난다는 전설을 들려주며 화면의 자막에는, 요한복음의 첫 구절인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라고 쓰여 있었다. 그날은 마침 주인공의 생일이었는데, 저녁에 속보로 전해지는 TV뉴스에서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도저히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주인공은 십자가 앞에 꿇어앉아, 제발 그런 일이 없기를 처음으로 간절히 기도드린다. 그리고 대신에 자신이 남은 일생을 침묵 속에서 단란한 가정마저 포기하는 희생을 감수하겠다고 약속한다. 환상이었을까? 세상은 다시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전과 다름없이 평온했다. 주인공은 약속대로 자신의 집을 포기할 마음으로 불을 지른다. 주위 사람들은 그를 미쳤다고 생각하여 정신병원으로 끌고 간다. 약속처럼 그는 평생을 침묵 속에 살아갈 것이다. 다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엔 죽은 나무를 심었던 바닷가가 다시 나타나고 말을 못하던 어린 아들이 웅얼거린다.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라는 말뜻이 무엇이냐고….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이 영화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라는 작가의 유작이다. 작가는 이 영화를 통해 영화감독으로서 세상 사람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를 담고자 했다. 그 메시지는 제목 그대로 ‘희생’이다. 곧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함이 있지만, 그런대로 되어 가는 것은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희생은 다른 누구에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내가 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세계화 시대의 무한경쟁구조 속에서 뒤처짐과 희생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때문에 우리는 희생되고 낙오되지 않기 위해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간다. 그리고 자녀들에게도 봉사나 희생은 취미활동이나 입시를 위한 점수따기일 뿐 직업이나 일상적인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행복하기’, ‘성공하기’, ‘단기간에 얼마 만들기’, ‘축복받기’ 등에만 우리의 관심을 빼앗기고 있다. ‘이웃을 위해 희생하기’, ‘이웃을 먼저 배려하고 양보하기’란 진실한 구호를 듣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이웃을 위해 손해보고 희생하는 사람이 없는 사회와 세상은 행복한 세상이 아니라, 모두가 불행한 세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희생 없는 좋은 열매는 없기 때문이다. 연말연시가 가까워 온다. IMF 외환위기 때보다 경기가 없다고 하고, 많은 사람들이 살기가 더욱 어려워졌다고 한다. 올해처럼 경기가 침체되면 어려운 이웃들은 더욱 겨울나기가 힘들어진다.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시작하며 언론매체를 통해 어려운 이웃들을 돕자는 이야기들이 나올 것이다. 이런 때에 우리의 작은 희생을 통해 이들이 더욱 따뜻한 겨울을 지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지난 1년, 우리 천주교 대전교구에서는 교구설정 60주년을 맞이하여 ‘한 끼 100원 나눔 운동’을 전개해왔다. 한 끼를 먹으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100원씩을 저축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상시적으로 어려운 이웃들을 생각하자는 마음에서 시작한 운동인데 이제 서서히 자리가 잡혀감을 느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갈 생각이다. 지금은 보다 나은 세상,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누군가의 자발적인 희생과 노력이 필요할 때이다. 십자가를 지고, 그 희생을 자원할 사람이 바로 ‘나’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