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19398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0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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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동 칼럼] 교회를 등지게하는 사람들
[한석동 칼럼] 교회를 등지게하는 사람들
[2008.10.28 21:35]
지하철역이나 전동차에서 "주 예수를 믿으라"고 뜨겁게 전도하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그 열정이 존경스럽기보다는 부끄럽고 짜증스럽다. 그렇게 해서 전도가 될까 싶고, 그들이 다 올바른 크리스천인지도 의문이다. 경멸하듯이 그들을 보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모멸감을 느낀다. 많은 사람에게 그 전도자들이 기독교의 창(窓)처럼 비칠 것을 생각하면 두렵기조차 하다.
내가 섬기는 교회의 신문에 중년 형제 한 분이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25년 전 이화여대 강사였던 그는 출강 길에 그 학교 뒷문에서 처참한 교통사고가 났음을 알게 됐다. 어느 여강사가 승용차를 몰다가 백미러에 여대생 한 명의 가방 끈이 걸리자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려다 운전미숙으로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아 여대생이 횡사했다는 비보였다. 캠퍼스는 발칵 뒤집혔고 탄식 분노가 쏟아졌다.
그로부터 1주일 뒤 출강한 그는 더 놀라운 뉴스를 접했다. 숨진 여대생의 크리스천 부모는 가해자를 용서했고 배상 요구 같은 것도 일절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이 체험적으로 크리스천을 위대하게 느낀 첫 사건이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감리교단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단들은 대개 선거 때마다 관례처럼 홍역을 치른다”
그 교회 신문에 "하나님을 보고 교회를 다녀야 하는데도 현실적으로는 많은 사람의 신앙이 사람에 좌우된다"는 담임목사의 글이 실렸다. 담임목사는 사람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한 약간의 '거룩한 위선'이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이를테면 식사 때 가벼운 반주(飯酒)가 본인들의 양심과 신앙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도 술잔만 건드려도 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합석했다면 술 마시는 모습을 보고 시험에 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솔직한 것이 바른 신앙이며, 그러지 않고 거룩한 척하는 것은 진짜 위선이라고 정의했다. 결론은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면 그보다 보람이 없으므로 그걸 위해 약간의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일부터 이틀간 감리교단 총회가 열린다. 지난달 한국 감리교 차기 감독회장 선거가 사분오열 속에 치러져 당선자가 두 명 나온 상황에서 순조롭게 열릴 가능성은 제로다. 전과가 꽤 있다는 회장 후보 목사에 대해 현 회장은 법원의 가처분신청 수용을 토대로 출마자격 상실 판정을 내렸다. 교단 지도부는 이어 해당 후보 지지표는 무효라고 주지시켰지만 말하나마나였고, '무자격 후보' 측은 다수표를 확보해 당선을 선언해버렸다. 잡음이 난무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말을 하자면 감리교단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단들은 대개 선거 때마다 관례처럼 홍역을 치른다. 돈 살포, 매수, 실력행사 등의 스캔들은 이제 뉴스 축에도 끼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면서 영혼 구제에 나선 자들의 자세라고 할 수 없다. 감동을 주기는커녕 무신론자들보다도 더 무신론적인 그들의 행태는 교회에 작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마저 등을 돌리게 만들 수밖에 없다.
10년 만에 전수(全數)조사로 실시됐던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의 종교분야 통계를 다시 생각한다. 자료는 기독교 신자가 약 877만명으로 10년 전에 비해 유일하게 줄어든 것으로(1.6%, 14만4000명) 나왔다. 천주교의 경우 무려 74.4% 늘어난 514만1000명, 13.9% 늘어난 불교 신자 1072만6000명과 비교해 기독교만 거꾸로 간 데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 해답 또한 먼 곳에 있지 않음은 기독교인이 더 잘 알 것이다.
예수님도 그러지 않았거늘 내가 남을 정죄할 자격은 당연히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이 땅의 수많은 교회와 교인들에게 도대체 길거리에서 조롱받는 전도자들보다 나은 게 뭐 있느냐고 묻고 싶다. 적지만 지금 절박하게 애통해하며 회개하는 교회와 교인들을 봐서라도 함께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겠는가.
국민일보 쿠키뉴스 편집인 jerome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