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17901
- 글쓴이 : 한광석
- 작성일 : 2008/09/18
- 조회수 : 3,242
“이 시대의 교과서에서 말하지 않는 또 하나의 패러다임에 관해 말하다”
문화선교연구원 주최 ‘창조론과 진화론 소통’ 포럼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장슬기 / 안산동산고등학교 교사, 과학과협동학습연구회 대표
1. 종교와 과학을 이원론적으로 가르치라는 세상 속에서
약 10년 전 즈음에 네 분의 학교선생님과 더불어 연변의 조선족학교와 선교사역지들 그리고 백두산일대를 도는 선교여행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백두산의 높은 봉우리에서 드렸던 민족기독교사로서의 헌신을 위해 무릎 꿇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당시 연길시에서 사역을 하시는 분들의 현지 목소리를 통해, 중국 공산주의의 교육을 통한 종교장악과정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개인의 종교자유를 허용하지만 단, 18세 이하의 학생들에게 선교를 하면 구속된다’는 것이 주요내용이었습니다. ‘왜 하필 18세 이하일까?’ 저는 의문을 던졌습니다. 교육자로서의 나름의 답은 이것이었습니다. ‘어릴 때 교육받으면서 형성된 가치관과 세계관은 성인이 되더라도 결코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공산정권의 권력자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공산주의적인 인간관과 진화론적 우주관 그리고 무신론적인 세계관을 어릴 때 이식하기 위해서이다.’
동일한 상황이 한국의 과학교육에도 수 십 년간 뿌리내려왔습니다. 과학교과서 곳곳에 진화론적 우주관이 마치 우주에 대한 절대적이며 유일한 관점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생물과 지구과학 혹은 사회탐구나 언어영역에서 교회를 다니는 학생들은 암기한 대로 그것이 하나의 가설이 아닌 당연한 절대 전제로 받아들이며 문제를 풉니다. ‘창조’라는 우주관은 교과서나 수학능력시험, 그리고 미션스쿨의 중간기말고사 문제 속에 실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교육의 현장에서 진화론에 대한 기독학생들의 반응은 크게,
△성경적 가치관을 포기하고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부류,
△성경의 가르침과 세상 이론은 다른 것으로 이원화하는 부류,
△주입식 교육으로 단순 암기하는 부류 등 세 가지로 나뉩니다.
창조과학교사연합회 한 분의 말씀을 인용하자면, “개인적인 믿음이나 생각을 말하도록 허락하지 않는 교육이 갖고 있는 권위적인 체계 속에서, 진화론은 하나의 사실로 전해진다. 교과서에 제시된 진화론은 너무나 그럴듯해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영향을 받는 것으로 봐야 하며, 이로 인해 기독학생들이 교회와 세상을 분리해 생각하는 ‘이원적 신앙을 갖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로 인해 아이들이 무신론적 세계관을 받아들여 반종교적 성향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판단능력이 부족한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일방적인 진화론 교육은 결과적으로 무신론적 세계관과 반종교적 신앙을 옹호하고 조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에 가서는 우리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찬양하고 주일학교에서 가르칩니다. 절대 ‘빅뱅과정을 통해 우주가 시작된 후 진화과정을 통해서 아담이 만들어졌다’고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저는 창조과학회와 창조과학교사연합회 선생님들을 대표하여 발제를 맡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좋은교사운동에 속한 기독과학선생님을 대표한 것 역시 아니며, 앞서 발제에 나서신 두 분처럼, 생명과 우주진화 또는 창조에 관한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연구한 기독지성인을 대표해서 나온 것도 아닙니다.
단지 미션스쿨에서 기독과학교사로서 ‘기원과학’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고, ‘이원론적인 가르침’을 넘어서 이것을 어떻게 교육적 상황 속에서 풀어보려고 했는지, 저희 학교 학생들과 함께 토론하고 동아리를 결성해서 여려 활동을 했던 과정을 나누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주신 아주 작은 통찰과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교수방법론을 바탕으로, 일반학교에서의 ‘창조론-진화론 교육’, 기독교학교나 교회교육에서의 ‘창조론-진화론 교육’에 관해 제언을 준비했습니다.
2. 창조과학을 접하게 된 계기
가톨릭에서 어릴 때부터 순수하게 신의 존재를 믿었던 저는 90년대 초에 사범대 지구과학교육과 입학 후 영적인 사춘기를 맞이했습니다. ‘신은 존재하는가?’, ‘나는 실존하는가?’ 존재론적 허무주의에 빠져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놀랍게도 떨어진다는 두려움에 앞서 자유낙하운동, 나중속도와 충격량 그리고 비탄성출동 등의 물리학적 개념들만이 떠올랐습니다. 빌딩 위에서 ‘나의 자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그 사실이 두려웠습니다. 물리학적 지식이 나에게 생명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충격으로 인해 저는 그때부터 ‘진리를 찾기’위해 3년을 몸부림쳤습니다. 그러던 중 한 선교단체 친구를 통해 <현대사상과 기독교세계관>(제임스 사이어), <진화론은 과학적 사실인가?>, <기원과학>을 보게 되었고, 정신적으로 방황하던 저는 ‘하나님의 실재’에 관해 책을 통해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되심을 진심으로 고백하고, 순종하기로 결심한 날부터’ 역사하시는 하나님, 나와 관계를 맺고 교제하시며 하나님의 실체를 체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반생물학개론’ 시간에 생물학 교수님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창조론과 진화론의 갈등은 ‘신념과 신앙’의 싸움이란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무신론적 진화론자이셨는데, 결론적으로 제게 이런 말을 던지셨습니다. ‘난 진화론을 믿는다.’ 그 이후 저는, ‘과학 교사가 되면 가르침 속에 이 영역을 꼭 다루겠다’고 하나님께 약속을 드렸습니다.
3. 나는 미션스쿨에서 기독과학교사로서 어떻게 반응해야하는가?
제가 만난 상당수의 ‘미션스쿨의 과학 선생님’들은, ‘종교와 과학이 서로 다른 영역을 다루기 때문에 둘은 부딪힐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듯합니다. 또한 과학은 증명될 수 있지만 종교는 증명될 수 없는 것에 기초하므로 굳이 갈등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고 잠정적인 결론을 가지고 있으신 듯합니다. 심리의 저면에는 ‘관심 없다’ 혹은 ‘무관심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듯했습니다. 아마도 나와 생명체들 그리고 우주의 실존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보신 적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언 바버(Ian Barbour)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한 4가지 분류 중 독립이론’이 그분들의 심리에 잠재되어 있는 듯합니다. 인식론에 있어 이원론적인 상태이지요.
1995년도에 안산에 있는 미션스쿨에 교직을 시작한 저 역시 수년간 이원론적인 의식 속에 있는지 몰랐습니다. 학교에서 학급경건회를 인도하고 여러 신앙동아리를 운영하고, 찬양인도도 하며, 수업시간에는 나름 과학을 잘 가르친다고 자부하며 열심을 내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98년도에 참가했던 기독교사대회는 제 인생의 목적을 재설정해주는 큰 전환점이 되어 주었습니다. 처음으로 열린 기독교사대회에서 박상진 교수(현 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 소장, 장신대 교수)의 주제강의를 통해 ‘기독교사’로의 부르심에 대한 통합적인 관점을 이식받을 수 있었습니다.
‘기독 교사’ / ‘기독’ ‘교사’ / ‘기독 교사’ / ‘기독 교사’ 가 있습니다.(각각의 정의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단, 진정한 기독교사의 정의는 ‘기독교사’였습니다.) 그렇다면 ‘기독 과학 교사’ 특히, 생물과 지구과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98년도 기독교사대회 이후 늘 고민해야 했던 중요한 ‘Topic’이었습니다.
교과서에서 가르쳐야할 것(예컨대, 빅뱅-성운설-지질연대-화학적 진화-화석적 진화-인류의 진화)과 내가 속했던 단체인 ‘창조과학회’에서 발간한 책들 사이의 큰 간격과 괴리감 그리고,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나오거나 중간기말고사 시험문제로 내어야 하는 우주진화-지구진화-생물진화 내용들을 ‘가르치지 말아야 하는가?’, ‘가르친다면 진화론적 관점만 가르쳐야하는가?’, ‘창조과학회에서 알려주는 내용만 가르쳐야하는가?’, ‘함께 가르쳐야 하는가?’, ‘그렇다면 어디에 비중을 두고 가르쳐야하는가?’, ‘고3들에게는 알려줄 시간적 여유조차 없는데...’ 이런 갈등 속에서, 지구과학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어떻게 ‘창조론과 진화론에 관한 수업을 변화시켜왔는지, 10년 전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을 소개할까 합니다.
나름, 3단계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1) 초창기: 97년-98년, 창조론과 진화론에 관해 교과서 만들어보기
그 당시 1학년 공통과학교과서 내용 중 ‘생명과 진화’, ‘지질연대’에 관해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수업시간 중에 창조과학적 관점도 있다고 말해주며, 책을 소개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제기된 ‘교과서논쟁’과 ‘90년대 초반에 카이스트에서 실린 창조와 진화에 대한 글’을 소개해 준 후, 수행평가 숙제를 주었습니다. 주제는, ‘나의 신념대로 생명과 진화 또는 지질연대’의 영역의 교과서를 만들어보라. 1주일간, 학생들이 만들어낸 다양한 관점의 작은 교과서들을 보고 채점했습니다. 그 내용들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분명 이름이 기억나는 두 제자가 만든 교과서를 보면 참 기특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 아이들은 양쪽의 자료를 진짜 교과서의 Form에 맞추어 그림과 글을 실었는데, 양쪽 모두의 관점으로 소개했고 결국 ‘개인의 선택이다’라고 강조하면서 끝을 맺었습니다. 상당히 깔끔하게 잘 편집된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2) 토론기: 99년, 창조-진화 토론(1차, 2차 토론)
2년 후,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의 지구과학수업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지구의 탄생과 지질연대와 화석 등 전문적인 내용을 가르친 상태였기 때문에, 토론이 가능하다는 판단 하에서 창조-진화 토론을 시도했습니다. 처음 시도할 때는 그냥 있는 자리에서 손을 들어서 발표시키는 정도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토론의 과정을 정교화 시켰습니다. 그 다음해에는, 1차 토론과 2차 토론을 나누어 시행하여 토론을 가속화시키고 토론에서 근거로 드는 내용의 전문성을 높이는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1차 토론은, 모두가 참여할 수 있도록 6개 모둠으로 나누어 각 모둠에 창조론자와 진화론자를 각각 적당한 비율로 구성시켜 함께 토론하므로, 모두가 참여하는 동시다발적인 토론을 구성하였습니다. 단, 중립적인 역할을 맡기를 원하는 학생들은 배심원으로 각 모둠에 배치했습니다. 학생들은 미리 과제물(자신의 신념과 신앙에 비추어 옳다고 생각하는 이론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조사해오는 것)을 조사한 후 그 시간에 배심원의 사회에 따라 토론(논쟁)을 실시했습니다. 배심원들은 최종적으로 누가 더 우세했는지를 판결 내리고 그 이유를 설명하게 했습니다.
2차 토론은, 우세승을 한 각 모둠의 대표들이 함께 토론하는 과정입니다. 대표학생들은 며칠을 더 고생하여 매우 전문적인 내용까지 준비하여 그 시간을 대비하기도 했고, 비공식적으로 그 반에서 같은 이론을 주장하는 대표들끼리 함께 전략을 모색하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2차 토론시간의 전체 사회를 보면서 각 사람의 발표에 따라 ‘수행평가 루브릭’을 활용하여 점수를 부여했습니다(발표성, 객관성, 신빙성, 리포터). 정말 뜨겁고 열정적이고 발전적인 시간들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이토록 자신의 과학적 지식을 총동원하여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는 것을 본 것이 처음이었기에 저도 매우 흥분했었고 스스로 여러번 놀라기도 했습니다. 대표들은 수행평가에 점수를 더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신념과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 것이었습니다. 2차 토론이 끝나면 모든 학생이 소감을 써서 제출할 리포터에 삽입해 내거나, 싸이 미니홈피에 올리게 했습니다. 잊지 못할 여러 장면이 있었는데요.
한 학생은 창조과학을 매우 지지하는 여학생(목사님 따님)이었습니다. 그 학생은 놀랍게도 진화론을 주장하여 2차 토론대표가 되었습니다. 매우 의아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의 소감문을 보면서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저는 진화론이 과학적으로 사실임이 확고히 밝혀지더라도 창조론을 지지할 것이며, 하나님이 창조주임을 믿습니다. 하지만, 나의 이 확고함이 맞는 지 다른 관점에서 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상대방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사실인지를 확인하지 않는다면 올바른 선택을 못한 게 아닐까요? 그래서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철저히 창조론을 공격했고 결국 대표로 발표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실험의 결과 저는 오히려 창조론이 옳음을 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또 잊을 수 없는 학생이 있습니다. 2차 토론 때 창조:진화=5:1 인 상황에서 이 친구는 진화진영에 속한 유일한 대표학생이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친구의 달변과 탄탄한 배경지식으로 5명의 창조진영 학생들이 오히려 약간 밀리는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2차 토론이 끝나고 5분여 남은 시간이 있었는데, 그 학생이 느낀 소감을 발표해도 되겠냐고 묻더군요. 그 학생은, △결국 ‘창과 창’의 싸움이었다. 방패로 막기가 힘든 상황이 많이 연출되었다. △진화론으로 다른 사람을 설득했으나, 결국 나는 나를 설득하지 못했다. 진화론이 과학적 사실인지 다시 고민해 보아야 겠다. △논쟁을 넘어서 친구들이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려는 모습이 참 멋지고 아름다웠다. △교과서보다, 성경책보다 네이버지식인을 너무 믿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무의식 속에서 깨닫게 되었다.
비록 나보다 어린 학생들이었지만, 그들은 열려있는 지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정직해짐에 관해 우리에게 교훈하는 듯했습니다. 2차 토론의 사회자인 교사인 나는, 비록 그 신념이 ‘젊은지구창조와 오랜지구창조’ 사이에 어느 지점에 놓여 있었지만, 끝까지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몇 해가 지나면서 끝까지 중립성을 지키는 것이 과연 교육적으로 옳은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수업장면인가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3차시를 추가했습니다. 투론 후에 내가 느낀 점, 깨달은 점을 말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실천했습니다.
학생들에게 던진 개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소진화와 대진화에 대한 오개념에 관해 ②과학주의(과학만이 진리의 잣대인가?) ③인간 이성의 한계와 불완전함에 관해 ④새로이 등장하는 ‘지적설계론’에 관해. 그리고 저는 마지막으로 조선일보 2004년 11월 실린 ‘제6회 석학연속강좌’에 초청된 미국 플로리다대 석좌교수인 진화철학자인 마이클 루스의 인터뷰를 제시했습니다. (루스 교수는 이 자리에서 △과학적 진리를 탐구할 때 은유(Metaphor)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통념과는 달리 다윈은 은유를 매우 중시했다 △윤리학은 사람들 사이에서 협동심을 갖게끔 하기 위해 ‘자연선택’에 의해 주어진 일종의 환상이며 도덕감은 진화의 소산물이다 △진화는 우발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방향성과 목적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지적설계론의 과학적 가능성과 오용가능성)
저는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진화과정의 방향성은 누가 부여한 것인가?’ 그 방향성은 은유로 숨어 있으며 그 주체는 알 수 없다. 우주의 일반적 열역학적 현상과 완전히 반대로, 생명체들이 그토록 긴 30억년 이상의 시간동안 스스로 복잡하게 진화했다는 주장은, 신에 의해 우주가 6일간 창조되었다는 초과학적 주장만큼이나 초과학적이다. 그리고 천동설과 지동설의 두 패러다임 전환기의 갈등과 대립과 현재, 진화론과 지적설계론(또는 창조과학)의 대립구도의 유사성을 말해주고, ‘어쩌면 우리는 교과서에서 말하지 않는 또 하나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적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린 그 과학사의 한 장을 토론수업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얘들아 결국 문제지는 여러분에게 넘겨졌다. 답은 개인의 선택이다.’
3) ‘창진연구회’ 동아리결성: 2002년 창조-진화연구회 학술지, SCR방문, 초청 지적설계세미나, 진화론창조론 산책 저자와의 만남
2002년 어느 날, 남학생 5명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극진창조론자 2인, 중립 1인, 극진진화론자 2인으로 구성된 그들은 2001년도 수행평가였던 ‘창조론-진화론 대토론’ 이후에 지속적으로 모여서 논쟁을 벌이다가, 결국 ‘연구회’를 조직하여 저에게 지도교사가 되어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찾아온 것입니다. ‘창진연구회’는 그렇게 결성되었고, 다음해는 12명의 후배들이 가입을 했고, 그 다음해는 2학년만 60명이 참여했습니다. 그중에는 2학년 인문계학생들도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조직을 구조화했습니다. 각자의 신념과 흥미영역에 따라 6개의 팀으로 나누었습니다(우주창조팀-우주진화팀, 지구창조팀-지구진화팀, 생명창조팀-생명진화팀). 또한 토론을 활성화하기 위해 네 가지 프로그램을 마련했는데요.
△ 토론의 정기화: 격주 토요일 오후 2시간, 100인 토론처럼 상반되는 팀들끼리 만짱대결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객석에서 관람하며 객석발표를 하도록 구조화했습니다.
△ 저널 발간: 토론결과 활동상황을 각 학급에 알리고 보급하는 차원에서 고등학생 차원의 저널을 발간하여 학급마다 게시했습니다.
△ 세미나주최: 창조과학회 교수님 초청 특강, 서울대학교 대학원 지적설계연구회인 SCR 초청 세미나 개최, SCR 방문, ‘진화론 창조론 산책’을 쓴 진화과학자 방문 토론회 등
△ 창조-진화에 관한 수업을 위해 자료제공: 관련 사이트를 개설하여 자료를 게시하고, 수행평가를 임하는 후배들에게 자료를 제공하며, 수업 후 설문조사에 필요한 설문지를 만들어 활용하도록 했습니다.
4) 교수-학습법의 변화: 2006년 갈등구조 해결을 위한 배심원 설득제를 도입
창조진화토론 수업이 논쟁으로 격화되어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미성숙한 토론 자세를 가진 학생들로 인해 서로의 관계가 극한 감정싸움으로 가는 경우가 더러 발견되었고, 심지어 학급 경건회 시간에 무신론자인 학생들은 모여서 토론을 이기기 위해 전략모임을 하는 웃지 못 할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이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업인가? 그래서, 교수법에 변화를 주기로 했습니다.
1차 토론을 서로 논쟁에서 이기도록 했던 과정을, 오히려 협동학습연구회에서 개발한 ‘배심원 설득하기’라는 방식으로 바꾸었습니다. 서로 바라보면서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배심원을 과학적,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방식으로 구성했습니다. 올 해에는 토론을 생략하고 창조론과 진화론에 관한 전문가를 각각 3명씩 뽑아서 배심원인 나머지 학급생들을 설득하여 판결하는 방식으로 구성해서 시도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토론의 주제의 심화를 위해,
△ ‘무엇이 사실인가?’와 함께
△ ‘두 이론이 인류에게 끼친 영향’을 조사하여
△ ‘무엇이 교과서에 실려야한다고 생각하는지에 관해’ 토론하게 했습니다.
4. 허용되지 않는 소통에 관한 제안
: 학교 교육과 교회 교육에서 그리고, 기독 과학자분들에게 드리는 대안 혹은 제안
1) 일반공(사)립학교에서는 기독 과학교사가 교육과정적인 접근을 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학계에서는 진화론에 대한 반증과 지적설계론 등의 주장이 힘을 얻어감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 7차 교과과정은 인류의 시작과 우주의 기원에 관해 진화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방적인 진화론 교육을 염려하는 창조과학자들을 중심으로 진화론과 창조론 양자의 입장이 정리된 교과서가 집필되기도 했지만 교육부는 이를 불허하고 있고, 더구나 7차 교과과정에서는 ‘창조론을 논하지 말라’는 교과서 집필지침이 세워져 교과서 개정운동은 요원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기독 과학교사에게 물린 멍에를 풀기 위해 지혜가 필요합니다.
- 미션스쿨이나 기독교학교
△ 다양한 토론수업이나 수행평가를 통한 창조론적 관점 제시: Check list를 활용한 토론수업이나 교과서 재구성(구성주의적 접근), 법정토론 등
△ 소감문 또는 설문지를 통해 창조론에 마음이 열린 학생들과 성경이나 창조론 교재로 Study 하는 모임
△ 창조-진화토론회와 같은 학술동아리 활동을 통해 학내에 기원과학운동 확산: 학술지나 ‘Expelled: No Intelligence Allowed’와 같은 영화상영 및 세미나 개최 등
△ 과학교사의 이원론 탈피가 선행: 반성적 실천가
△ 학교내 과학교사공동체 내에 교육과정(기독교세계관) 연구모임을 결성하여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수업현장에서 실천하기
△ 창조과학회(또는 SCR이나 Noah)나 창조과학교사회와의 네트워킹 필요
- 교회 교육
△ 주일학교 안에 ‘기원과학’에 관한 전문교사 확보 및 교육이 시급
△ 창조론과 여러 가지 스펙트럼을 가진 강사들을 초빙 및 특강
△ 교회 내에 과학자의 소명을 가진 대학생과 고등학생들로 기독과학연구회를 구성하여 토론하고 학술지 발간
2) 기독 과학자의 공동체 형성에 관한 제안
오늘의 이 문화포럼은 하나님을 믿는 지성인 특히 ‘창조과학(혹은 지적설계론)과 유신론적 진화론’ 사이에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는 기독과학자들 간의 ‘대화와 소통’의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취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창조론(혹은 지적설계론)과 유신론적 진화론’ 사이에 대화와 소통을 하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이 문제는 가부(可否)를 따져야할 사항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당위(當爲)의 문제입니다. 반드시 ‘대화하고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다양성이 분열되고 갈등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지성이 미성숙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다양한 관점을 가진 기독과학자들이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우리 가운데 ‘내부 검증 시스템’이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이 만드신 우주와 생명에 대해, 믿지 않는 과학자를 통해서 검증받아야 합니까?왜 무신론자들에게 과학이란 칼을 넘겨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을 함부로 재단하게 만듭니까?
우리 안에 다양한 색깔이 있고, 또한 전문성이 있고 능력있는 석학이 많음에 감사하고 이제부터, 우리들 내부에서 우주와 생명에 관해 검증하고 밝혀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이것이 기독 과학자들에게 주신 주님의 부르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내 연구와 그 동안의 배경지식 중 무리한 추론에 관한 것을 내려놓음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내 주장으로 설득하려 하지 말고, 정직하게 포기할 영역은 과감히 인정하고 포기해야 합니다.
나의 관점을 잠시 접고 열린 마음으로 사실에 관해 사실답게 해석하여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신 단 하나의 과정 그 우주탄생, 생명탄생의 진리에 접근해야 합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고 추론이며, 관점이 도입되어야 할 영역에서는 어떤 해석들이 가능한지 함께 더불어 한 가지씩 짚어가며 토론해야 할 것입니다.
나가면서
이렇게 ‘창조론자와 유신론적 진화론자’가 기독과학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무신론적 진화론의 공세에 대한 변증의 수단으로서의 과학이 아닌, 우주와 지구 그리고 생명의 존재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를 발견하는 도구로서의 과학으로 재설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학교와 교회 그리고 학계에서 추구해야 하고 교육해야할 방향성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