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17661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08/09/05
  • 조회수 : 3,198

‘길위의 성직자’ 목숨건 순례 떠나다

‘길위의 성직자’ 목숨건 순례 떠나다
입력: 2008년 09월 04일 17:31:47
 
ㆍ수경스님·문규현신부 오체투지 나서

불교의 도법 스님과 수경 스님, 천주교의 문규현 신부는 ‘길 위의 성직자’들이다. 이들이 가을의 문턱에서 또 다시 길을 떠난다. ‘삼보일배’의 도반이었던 수경 스님과 문 신부는 지리산 노고단에서 목숨 건 오체투지(五體投地) 순례에 나섰다. 도법 스님은 생명평화탁발순례 대장정의 마지막 구간인 서울에 입성했다.

수경스님(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화계사 주지)과 문규현 신부(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가 4일 오후 지리산 노고단에서 오체투지 순례의 길을 떠났다. ‘기도, 사람과 생명 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오체투지 순례단’이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4일 오후 지리산 노고단에서 열린 오체투지 순례 출발행사에서 수경스님과 문국현 신부가 오체투지로 땅바닥에 엎드려 손을 맞잡고 있다. <구례/김정근 기자>

노고단에서 열린 출발 행사에는 김지하·박남준·이원규 시인, 문정현 신부, 이현주 목사, 이부영 전 의원 등 100여명이 모였다. 춤꿈 허경미씨의 맞이춤에 이어 지리산의 제단인 노고단에서 오체투지 순례의 뜻을 하늘에 고하는 ‘천고제’를 올렸다.

김지하 시인은 “광장의 촛불이 이제 산에 오릅니다. 한반도의 어머니 산들이여, 부디 우리의 흰 그늘을 받아주시옵소서”라고 기원했다. 이현주 목사와 김성근 원불교 교무의 연대사, 이원규 시인의 시낭송, 문규현 신부의 기도문 낭독이 이어졌다.

국내에서 오체투지 순례는 처음 있는 일이다. 오체투지는 사지와 이마를 땅바닥에 밀착시켜 절하는 것을 말한다. 상당수 티베트 불교의 신도가 그들의 성지인 라싸를 이런 방식으로 순례한다.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채 무릎을 꿇고 온몸을 던지면서 일자로 쭉 뻗어 바닥에 완전히 밀착시킨다. 몸을 일으켜 한 발짝 나아간 뒤 또다시 땅바닥에 엎드린다. 몸을 낮추고 또 낮추고, 마음을 비우고 또 비우는 고행의 길이다. 잘못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수경스님은 지난달 27일 종교편향 규탄 범불교도대회를 앞두고 오체투지 순례를 결심했다고 한다. 신앙은 다르지만 오랜 종교적 도반인 문 신부를 찾았다.

수경스님은 “이명박 대통령의 독선과 종교편향에 반대하는 것으로는 우리 시대의 아픔을 해결할 수 없다”며 “우리의 미래를 밝혔던 촛불의 마음을 더 낮은 자세로 헤아리고, 우리 시대가 가야 할 길을 사람과 자연과 평화의 길에서 찾고, 자연과 인간의 상생, 남과 북의 평화를 위해 오체투지 기도를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 신부는 “오체투지 순례를 통해 우리가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언제나 향해야 할 길이 무엇인지 다시 새겨보자”고 화답했다.

수경스님과 문 신부는 2003년 새만금 방조제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전북 부안에서 서울까지 300㎞ 넘는 구간을 65일간 삼보일배로 순례해 생명과 환경의 소중함을 사회에 각인시킨 동지다. 지난 2월부터 100일 동안 한반도대운하 건설을 반대하며 4대 강을 따라 1300㎞를 도보로 걸었던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단에도 동행했다.

수경스님과 문 신부는 서울을 떠나기 전 사회의 갈등 때문에 상처받은 이들을 찾아갔다. 지난 2일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는 ‘촛불 시위’ 수배자들을 껴안았고, 서울역에서는 농성중인 KTX 여승무원들을 격려했다. 금천구 가산동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오체투지로 큰절을 올렸다. 3일에는 새만금 갯벌을 돌아봤다.

두 사람은 출발행사에서 “대립과 갈등을 넘어 사람과 사람이, 생명과 생명이 평화를 찾는 순례를 만들겠다”며 “직업과 믿음, 신분,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평화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작은 진리들과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순례단은 지리산을 출발해 하루 약 3~4㎞씩 200여㎞를 오체투지로 순례한다. 노고단~구례~남원~임실~완주~전주 등 전북 구간을 지나 충남 논산과 공주를 거쳐 11월1일 계룡산 중악단에 도착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이어 2009년에는 겨울을 난 뒤 계룡산을 출발해 임진각에 이른 후 정부와 협의해 하반기에 묘향산으로 향할 예정이다. 지리산 노고단의 남악단, 계룡산 신원사의 중악단, 묘향산의 북악단은 옛날부터 국난이 닥쳤을 때 하늘에 제를 지내 안녕과 평화를 기원했던 제단이다.

수경스님은 “이번 오체투지 순례는 자연이 자연의 길을 가고, 사람이 사람 노릇을 하고, 생명이 살아 숨쉬며, 생명과 생명 간의 평화와 조화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김석종 선임기자,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