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16872
- 글쓴이 : 한광석
- 작성일 : 2008/07/24
- 조회수 : 3,426
"한국에서 순교한 조상님 만나러 왔어요"
프랑스 젊은이 260여명 천주교 성지순례
신자가정에서 홈스테이 하며 절두산 등 방문
"한국 천주교회 젊고 역동적이어서 인상적"
조선일보, 김한수기자
"이 그림 속 두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인데요, 입에다 불붙은 숯을 집어넣으며 고문을 해도 신앙을 버리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아들은 가장 어린 열 세 살 나이로 순교했지요."
지난 22일 오전 서울 절두산 성지 내 박물관. 벽안(碧眼)의 젊은이들은 안내자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다 마치 자신의 입에 숯을 문 듯 인상을 찡그렸다. 전시된 그림은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성(聖) 유진길(1795~1839)·유대철(1826~ 1839) 부자의 모습을 함께 담은 것이었다. 이날 절두산 성지를 찾은 이들은 한국으로 성지순례를 온 프랑스 젊은이 40명이었다. 이들은 기해박해 때 순교한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피에르 모방(Maubant· 1803~1839) 신부의 고향인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 바이유-리지유(Bayeux-Lisieux) 교구(敎區) 출신 신자들이다. 이들 외에도 이번 주에만 서울 독산1동성당(주임 주수욱 신부)에는 파리 북부 생 드니 지역의 청년 120명, 서울 문정동성당(주임 김홍진 신부)에도 노르망디 지방 청년과 사제단 등 106명의 프랑스 천주교 '손님'들이 찾아왔다. 한꺼번에 세 팀의 프랑스 젊은이들이 한국을 찾게 된 것은 지난 15~20일 호주에서 열렸던 세계청년대회에 참석한 후 귀국길에 한국의 천주교 성지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천주교 전래 초기 한국과 프랑스는 밀접한 인연을 맺었다. 한국에서 순교해 시성(諡聖)된 103위(位)의 성인 중 외국인 순교자 10명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주교 3명, 신부 7명 등 모두 프랑스인이었던 것. 복음을 전하기 위해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선조들의 발자취를 더듬고 한국의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프랑스 젊은이들이 한국을 찾게 된 것이다. 특히 이번에 방한한 3팀의 젊은이들은 모두 한국의 신자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한다는 점에서 양국 신자들의 사이를 더욱 가깝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날 한국에 도착해 22일 첫 순례지로 절두산 성지를 찾은 이들은 180여 년 전 천주교 신자들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진지한 표정이었다. 절두산 성지의 이모저모를 수첩에 스케치하던 아가트 르갈(Legall· 18) 양은 "한국에서 순교한 모방 신부님이 우리 지방 출신"이라며 "한국의 천주교는 어떤 모습인지 눈으로 보고 싶다"고 했다. 앙리 프리거(Pflieger·19) 군은 "지금 서울의 모습을 보면, 그 옛날 이곳에서 그렇게 많은 신자들이 순교했다는 것이 실감나지는 않는다"면서도 "당시로서는 세상의 끝이었을 극동지역까지 와서 천주교의 가르침을 전했고 한국과 프랑스 신자들이 같은 신앙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젊은이들과 함께 방한한 프티(Petit·72) 신부는 "모방 신부가 있었던 곳에서 불과 3Km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한국에 꼭 와보고 싶었다"며 "한국 천주교회가 매우 역동적이고 영적(靈的)이며 젊다는 점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방한한 260여명의 프랑스 젊은이들은 각 그룹별로 서울 절두산 삼성산 새남터, 충남 보령 갈매못, 충북 배론 등 성지를 순례하고 민속촌, 인사동 등을 방문하면서 한국문화를 체험하고 출국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