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16298
  • 글쓴이 : 한광석
  • 작성일 : 2008/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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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읽는 세상]‘시끄러운’ 아침의 나라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가톨릭 수도회 원장으로 화가였고, 문필가였던 독일인 노르베르트 베버(Norbert Weber·1870~1956)는 여러 차례 우리나라를 방문하였다. '일제의 조선민족 문화말살 정책'을 간파한 그는 아름답고 위대한 조선의 '민족문화'가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을 염려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를 영원히 기록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1914년에 베버는 500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여행기,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Der Morgenstille)를 출간하였고, 1925년에는 문화 기록영화를 촬영하여 오늘 우리에게 남겨 주었다. 이러한 그가 바로 25점의 겸제 그림을 오늘 우리에게 전해준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아무도 겸제의 그림을 알아보지 못하던 시절, 그는 우리 민족화가로서 겸제를 눈여겨보고, 그 많은 그림들 가운데 겸제 화첩을 구입하여 수도원 수장고 깊숙이 간직하였고, 백년이 지난 다음, 그의 정신을 이어받은 후배들은 이 그림을 얼마 전 왜관 성 베네딕도수도회에 다시 기증하였다. 벽안의 선교사 베버는 우리 민족문화를 지켜준 위대한 은인이다. 이러한 베버가 당시 조선사회를 묘사한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더없이 흥미롭고 감동적이다. "인정이 많고 순박하고 매사에 사려가 깊고, 가난하지만 천박하지 않고, 서두름이 없이 남을 배려하는 문화를 지닌 '품위 있는 문화민족'이라고" 했다. 그는 "조선이여 영원하라, 영원히 남아 그 빛을 뽐내어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장을 기술하고 있다. 그가 그토록 간절히 기도하던 민족은 국권을 회복하여 다시 자신의 민족문화를 계승하였지만 이제 더 이상 이 나라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다. 죽은 베버가 다시 살아 서울에 온다면 그는 아마 기절을 할 것이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나라'가 되었으니 말이다. 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희대적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날 뿐 아니라 안팎으로 오늘 우리는 들끓는 소음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곳을 가든지 거의 24시간 TV를 켜놓고 살고 있으며, 그 TV 속에 등장하는 프로그램도 하나같이 자극적인 괴성과 고함이 지배하고 있다. 인간의 감각기관 가운데 '보기와 듣기'가 하나로 내통되듯이 우리 사회의 소음공해는 시각공해와 그대로 연결된다. 거리의 간판은 그야말로 아우성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자극적인 원색의 간판으로 오늘 우리가 사는 도시는 거의 광적으로, 황폐하고 퇴락해 있다. 틀림없이 도시 미관을 위한 법이 있을 것이지만 무법천지가 된 지가 이미 오래이다. 베버가 감동받았던 그 고즈넉한 사찰은 물론 교회와 성당에서도 행사 때가 되면 이웃과 상관없이 마음껏 확성기를 틀어놓는다. 밖의 소음은 그대로 내면의 소음으로 발전된다. 소음문화의 특징은 '남의 얘기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는 물론 교육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듣기' 공부를 하지 않는 데 있다고 본다. '듣기'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말하기'가 제대로 될 수가 없다. '말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곳에 '소음의 악순환'은 계속된다. 소음은 인간성을 파괴 할 뿐 아니라 집단적 히스테리와 각종 정신질환을 일으키고, 창조적이고, 정신적인 문화가 축적될 기반을 상실하게 한다. 우리 민족이 지닌 위대한 창조적 에너지를 '조용한 아침나라의 친환경적 문화'와 융합하여, 인류미래의 삶을 이끌어가는 창조적 디자인을 이루어 낼 수 있는 효시를 백년 전 베버의 시각에서 다시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조광호 신부|인천가톨릭대 교수·종교미술>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