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15170
  • 글쓴이 : 한광석
  • 작성일 : 2008/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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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강물에 눈물 보태며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흘러가 이름을 버리고 그냥 바다가 되는 강물들. 그렇게 수 천, 수만년을 흘렀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니, 우리 흘러갈 일이 있으면 자세를 낮춰야 한다. 한껏 몸 낮추고 걸었다. 기독교, 불교, 천주교, 원불교 등 성직자들을 중심으로 한 대운하 반대 순례단은 103일 동안 강물을 따라 흘렀다. 4대강 순례길에 나선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그들이 돌아왔다. 지난 24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 모인 그들, 얼굴은 검었지만 표정은 평화로웠다. 강을 따라 걸을수록 간절해졌다. 생명의 어머니이며 살아있는 것들의 젖줄을 훼손하려는 그 참담한 발상에 새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래서 강을 모시고 걷는 순례길은 강물에 눈물을 보태는 일이었다. 찬바람 부는 겨울에 떠났던 순례단은 꽃피는 봄을 지나 신록의 여름에 돌아왔다. 그렇다면 순례단의 기도와 염원으로 대운하 얘기는 도도한 강물에 쓸려 갔을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새 정부는 ‘물류 혁명’을 얘기하다 ‘관광’으로 바꾸더니 이제 와서는 다시 치수(治水)를 들고 나왔다. 운하가 아니라 물길을 복원하려는 것이란다. 그러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이태 박사의 양심선언이 있었다. 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대운하 건설계획은 변함이 없다고. 앞으로도 강에 엎드리는 사람은 숱하게 나타날 것이다. 순례를 마친 이원규 시인은 어느 신문에 이렇게 썼다. “행여 새 정부가 끝까지 ‘어머니 강의 철천지원수’를 고집한다면 우리 순례단은 이제 목숨을 바칠 일만 남았습니다. 순례자가 아니라 순교자가 될 각오가 다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후손들의 산하를 빌려 쓰고 있다. 우리가 조악한 기술과 덜 익은 생각으로 조상들이 물려준 강산을 함부로 짓이긴다면 그것은 후손들에게 무도한 짓이다. 물길을 바꾸고 억겁의 생명을 죽이는 대운하의 재앙은 즉시 나타나지 않는다. 그 역시 광우병처럼 후손들에게 어느 날 들이닥친다. 정녕 후손들이 우리보다 현명할 것을 믿는다면 여기서 멈춰야 한다. 정권은 유한하다. 그러나 우리 강은 영원히 흘러야 한다. 강물은 흐르면서 제 이름을 지우고 바다로 간다. 우리 인간의 이름도 결국 세월에 지워진다. 왜 순리를 거스르는가. 거꾸로 흘러, 역천(逆天)의 이름이라도 남기려 함인가. <김택근 논설위원,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