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14518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08/05/07
  • 조회수 : 3,343

내일 60주년 맞는 천주교 대전교구

내일 60주년 맞는 천주교 대전교구
영광과 고난속 자선으로 복음전파
▲2005년 4월 6일 대전 충무체육관서 제4대 교구장 유흥식 라자로 주교 착좌.

“교회법적으로 새로운 독립 교구를 창설할 모든 조건을 갖추어졌으므로 포교성성은, 서울교구장의 동의 아래 충청남도의 지목구장 서리로 라리보(원형근·아드리아노) 주교를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주교님(교황대사)에게 줍니다. 이렇게 되면 충청남도는 자동적으로 서울교구에서 분리됩니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48년 5월 8일, 로마교황청 포교성성 장관 추기경이 한국의 교황대사에게 보낸 이 같은 내용의 서신 한 장을 통해 천주교 대전교구는 독립된 교구로서의 첫걸음을 걷게 된다. 신자 1만8000여 명, 14개의 본당으로 시작한 대전교구는 현재 23만6365명의 신자와 114개의 본당(2007년 현재)을 가진 명실상부한 교구로 우뚝 서게 됐다.

대전 교구 초기에는 유독 프랑스인 신부가 많았다. 프랑스의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의 선교사들이 주축이 돼 대전교구가 설정됐기 때문. 1948년 출범 시 총 19명의 성직자 중 프랑스인 신부는 16명(주교 1명, 신부 15명)이었다.

대전교구가 설정되고 2년이 채 안 돼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대전교구 성직자들은 피난 권고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본당에 머물면서 사목을 계속했다. 그러면서 전쟁 중 대전교구 성직자 10명이 피살되는 아픔을 겪었다. 대전교구는 전쟁 후 해외에서 들어오는 구호물자로 사회복지사업을 적극적으로 펴기도 했다.

대전교구는 1960년대 들어 본격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초대 교구장인 라리보 원(아드리아노)주교가 1964년 은퇴하고, 다음해 황민성(베드로)주교가 제2대 대전교구장으로 착좌했다.

그 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끝나면서 라틴어로만 진행됐던 미사가 각 나라의 고유 언어로 미사를 드릴 수 있게 돼 대전교구의 미사도 한국어로 진행됐다. 대전교구는 1962년 비영리기관 성모병원을 개설하고 2년 뒤 학교법인 대지학원을 설립하는 등 지역 사회를 위한 의료와 교육활동을 펴기 시작했다.

1970년대부터 대전교구민의 모금을 십시일반으로 신설된 첫 본당인 괴정동 본당이 1977년 탄생하는 등 대전 지역 곳곳에 본당이 본격적으로 설립되기 시작했다. 대전 가톨릭대학이 1993년 개교했고, 이준화 신부가 1997년 몽골로 파견을 떠나면서 해외파견 첫 선교사로 기록되기도 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 대전 평화방송이 개국했고, 2005년 유흥식(라자로)주교가 제4대 대전교구장으로 착좌했다.

대전교구는 설립 60주년을 맞아 기념미사는 물론 성지 도보순례, 한끼에 100원 나눔 운동 등 풍성한 행사를 개최한다. 교구설정 60주년 기념미사는 오는 10월 12일 오전 10시 30분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성대하게 열릴 예정이다. <김효숙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1958년 6월 23일 대전대목구설정 교황청 문서(앞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