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12778
  • 글쓴이 : 한광석
  • 작성일 : 2008/02/21
  • 조회수 : 3,168

[정동 길목에서]원로 부재와 ‘사제단 2세대’

(경향신문)

두루 존경받는 원로를 찾기 힘든 세상이라고들 합니다. 신문사 입장에서도 창간기념일이나 신년 때 그런 분들을 모시고 도움말을 들으려면 적잖이 고민됩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워낙 험한 시절을 거치면서 원로가 되었을 분들이 이런저런 일에 휘말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인물 키우는 데는 관심 없고 깎아내리기만 좋아하는 세태를 탓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원로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은 원로들 사이에도 있는 모양입니다. 일전에 우리 사회의 어른 중 한 분으로 평가받는 김성수 성공회대 총장은 “당대에 이쪽저쪽 가리지 않고 존경받을 수 있는 분이 누구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아도 가끔 늙은 사람들이 모이면 그런 걱정을 한다”고 전하더군요. 그러면서 김수환 추기경 이후를 염려했습니다. “인물이 하루 아침에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닐진대…”라는 말씀을 곁들이면서.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원로 대망론’이 반드시 옳은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모든 세대는 시대적 역할을 다해온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 이후의 일까지 하라고 짐을 얹을 게 무엇이냐는 것이지요. 어떤 이들은 후생가외·청출어람을 믿으면서 더더욱 걱정할 일이 못된다고 합니다.


이런 점에서 최근 다시 주목받는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좋은 본보기가 될 것 같습니다. 올해로 창립 34주년을 맞은 사제단은 엄혹했던 1970~80년대 우리 사회 양심의 지킴이였습니다. 87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폭로해 민주화운동의 불을 댕기는 등 사회의 빛이자 소금 역할을 했습니다.

민주파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동안 잊혀졌던 그 사제단이 지난해 불현듯 우리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누구도 제대로 지적하지 못한 삼성의 잘못을 세상에 낱낱이 알리는 일을 하면서입니다.

한데 그 사제단의 얼굴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30~40대의 이른바 ‘사제단 2세대’ 집행부입니다. 새 집행부는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에 천착했던 앞선 세대와 다르다고 합니다.

‘선배인 함세웅이나 송기인 신부들에게 반기를 들 만큼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생각’이 이들의 특징입니다. 이들은 현재의 시민단체들도 정치화되었다고 비판합니다. 사제단은 회칙도, 가입 탈퇴 개념조차 없는 자유로운 조직입니다.


원로의 힘은 누구도 항변하기 힘든 권위입니다. 그런 권위는 누가 부여하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얻는 것입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지금 그런 권위를 쌓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것도 자유로운 발상을 가진 2세대들의 손에 의해 또다른 도약을 이루면서 말입니다. 이런 신세대라면 원로 자리를 대신하는 게 난망이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입니다. 지나친 평가일까요?

〈 이중근 특집기획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