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12700
- 글쓴이 : 한광석
- 작성일 : 2008/02/13
- 조회수 : 3,171
종교인 16명 ‘대운하 반대’ 100일 순례
“대운하가 대운구 행렬 될까 두렵다” 침묵의 발길
‘생명의 물길’ 따라 천막노숙…‘탐욕과 폭력’ 참회 (한겨레, 조연현기자)
차가운 강바람이 살 속을 파고들었다. 인간의 탐욕으로 뜨거워진 이 땅의 열기를 식히려는 듯이. 한반도 대운하가 계획된 강줄기를 따라 100일 동안 천막을 치고 자는 노숙을 하며 걷기로 한 종교인들을 비롯한 16명의 고행은 12일 오후 1시 강바람 몰아치는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애기봉에서 200여명의 환송 속에서 시작됐다.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물이 하나 되는 만남의 강이자 남과 북을 갈라놓은 이산의 강이었다.
1980년대까지 재두루미 등 겨울 철새들의 군무로 아름다웠던 정경이 사라져버린 삭막한 겨울 강에서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은 각 종교별로 나와 기도했다. 이들의 기도는 경부대운하를 추진하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도 한나라당도 겨냥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을 향한 참회록이었다.
가톨릭 김규봉 신부(창조보전 전국모임 사무처장)는 “하느님 당신의 창조물을 사랑하는 것이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며,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인데도 그보다는 경제와 돈이라는 우상을 섬겨왔다”고 고백했고, 개신교를 대표해 기도한 성공회 최상석 신부는 “하느님의 유산인 산과 강이 이토록 찢기게 한데 대해 그리스도인으로서 참회한다”고 말했다. 지관 스님(김포불교환경연대 대표)도 “새벽마다 부처님전에 차공양을 올리면서도 이 강물이야말로 감로수임을 망각했다”고 고백했다.
이들의 장도를 배웅하러 온 김지하 시인은 “며칠 전 타버린 숭례문은 ‘예’를 숭상하라는 것인데, 우리가 자연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릴 때 결국은 우리 자신도 더 이상 숨쉴 수 없게 된다”면서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개발과 소비로 인한 지구 온난화로 지구에 10년, 아니 7년 내 치명적 바이러스가 몰려와 인류가 큰 위기에 처한다는 게 미래학자들의 예언”이라고 각성을 촉구했다. 이번 순례단장인 이필완 목사가 “한반도 대운하가 한반도 대운구 행렬이 되지 않을지 두렵기만 하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출발을 선언하자 침묵의 순례가 시작됐다.
이번 순례는 지난 2003년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해 전북 부안에서 서울까지 두발 걷고 한번씩 큰절을 하고와 전세계인들을 감동시켰던 삼보일배에 비견할 만하다. 불교 스님과 개신교 목사, 가톨릭과 성공회 신부, 원불교 교무 등 다양한 종교인들이 손을 맞잡고 함께 걷는 모습은 세계에서 유일한 다종교 국가인 우리나라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감동적인 모습이다. 이들은 각 종교의 방식대로 기도하지만, 순례길에선 그리스도인이나 불자라기보다는 ‘생명’에 귀의한 하나의 종교인들이다.
이번에도 전북 부안에서 서울까지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해 삼보일배를 했던 수경 스님(불교환경연대 대표)이 다시 나섰고, 삼보일배 때 수경 스님과 형제 이상의 동지애를 나누던 문규현 신부는 모든 여정을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매주 하루씩 참여하기로 했다. 지리산 실상사에서 힘을 모아 불교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생명운동에 근본적인 변화 바람을 몰고왔다가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던 수경-도법-연관 스님 3인방도 다시 100일을 함께 하게 됐다. 5년째 전국을 걷고 있는 도법 스님(인드라망생명공동체 대표)은 생명평화탁발순례 여정을 이곳으로 돌렸다. 양재성 목사(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와 김민해 목사, 김경일 성공회 신부, 최종수 신부 등도 일찌기 지리산 일대에서 종교를 넘어서 이들 스님들과 함께 생명운동을 함께 했던 이들이다. 차흥도 목사(감리교 농촌선교훈련원 원장), 홍현두 교무(원불교 천지보은회 홍보실장) 등도 각 종교의 대표적인 생명운동가들이다. 불교계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와 지식인 사회에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온 도법, 수경 스님을 비롯한 이들의 영향력에 비춰볼 때 이번 순례가 물질주의에 패퇴한 종교인들과 지식인 사회의 심연에 지진을 불러오면서 우리 사회의 가치관 변화에 큰 파장을 가져올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들의 순례 방식도 기존의 ‘운동’들과는 사뭇 다르다. 이들은 강가에 천막을 치고 자면서 강을 따라 하루에 15㎞ 가량을 걷는다. 침묵하며 기도의 마음으로. 상대를 향한 투쟁이 아니라 자신을 성찰하고 생명들의 마음에 공명하기 위함이다.
한반도 대운하를 추진하는 이명박 당선인이나 새정권을 향한 투쟁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자연과 인간과 후손들까지 내몰라라 하는 ‘우리 안의 탐욕과 폭력’에 성찰의 여정으로 이끄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