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12229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08/01/10
  • 조회수 : 3,079

그리스도인, 은총으로 하나 돼야

"그리스도인, 은총으로 하나 돼야"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하 안토니오 몬시뇰
사제 서품받고 한국생활 50년, 천상적인 것은 허상아닌 실재

오는 4월 28일은 하 안토니오 몬시뇰의 금경축일(서품 50주년)이다. 독일인으로 50년간 한국 부산에서 천주교 사제로 지내고 있는 그는 신의 은총 안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가 돼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천주교 부산교구 동항성당 사제관에 가면 하 안토니오 몬시뇰을 만날 수 있다. 86세의 노(老) 사제로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한국본부'를 이끌고 있는 그가 새해를 맞아 한국 '그리스도교'에 당부할 말이 있다고 했다. 올해는 그가 사제 서품을 받은 지 50년(금경축), 한국 생활을 시작한 지 또 50년이 되는 해다.

독일에서 태어나 만리타향에서 성직자로 지낸 인생을 되돌려 정리하려는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발목 골절 수술 후유증으로 다리를 저는 것, 폐기능이 약화돼 가쁜 숨을 내쉬는 것만 빼면 그는 여전히 쾌활했다. "우리가 참 많은 죄를 짓고 있다"며 기름 범벅의 철새 사진을 한 장 내놓았다.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 참 많은 죄를 짓고 있음에도 한국에는 그를 보상할 좋은 점이 많은데, 수십 만 명의 봉사가 그러하다고 했다. 문제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사랑을 중심으로 함께하고 있냐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면 결국 멀어지고 맙니다.' 에큐메니컬(교회일치운동)에 열심이던 하 몬시뇰이 1979년 직접 발간했던 '새싹'이라는 에큐메니컬 지침서에서 호소했던 말이다. 그런데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결국 멀어지고 말았다고 그는 안타까워했다.

"지금 한국에서 그리스도교는 최대 종교로 성장했지요. 그러나 진정 복음이 넘치는가라는 생각에 미치면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진정 하느님 말씀 아래에서 하나가 돼 있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역할하고 있는가 말입니다. 지난 40년간 교회일치를 위해 같이하셨던 분들이 지금은 대부분 세상을 떠나버렸고, 이후 젊은 사제나 목사들은 그런 부분에는 관심 없어 보입니다. 저로서는 이제 남아있는 시간과 기력이 없습니다. 안타까워요."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옛 소련군의 포로가 됐었다. 젊어서 신부가 되고자 했지만 전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면서 독일군에 편입됐던 것이다. 그때 히틀러와 공산주의라는 '악'을 경험했는데, 그리스도를 머리로 해서 믿음과 사랑 안에 한 몸이 되지 않으면 그런 악에 대항할 수 없고 승리할 수 없음을 깨달았으며, 그래서 사도 바울의 다짐인 '모든 사람의 모든 것으로서의 하나'라는 정신을 잊지 않게 됐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무엇으로 하나가 돼야 하나? 하 몬시뇰은 '은총'으로 하나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약성경에는 은총이란 단어가 155번이나 나오는데, 따라서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은총은 본질적인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은총은 그 가치를 상실한 사어(死語)에 가까운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교인들도 현세적인 것에 사로잡혀 있으며, 피상적이고 감각적인 것을 먼저 받아들입니다. 천상적인 것들은 허상으로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완전히 그것과 반대입니다. 천상적인 것이 실재이고, 현세적인 것은 그것의 복사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은총은 하느님의 사랑을 그대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은총으로 하나가 돼야 합니다."

갑자기 하 몬시뇰에게 전화가 왔다. 미안하다며 수화기를 드는데 그는 연방 "용기를 내세요. 기억하겠습니다. 하느님은 살려주시는 분입니다. 예, 힘내세요. 꼭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몸이 많이 아픈 분의 전화예요. 저한테 용기를 달라는군요. 보잘것없는 저도 이렇게 용기를 드리려고 하는데, 하느님은 어떠하시겠습니까. 우리 사람들을 모두 기억하시고 힘을 북돋아주시고 결국은 살려주시는 분이십니다. 어떻게 그분을 외면하고 살 수 있겠습니까."

1958년 7월 5일 밤 부산항에 도착했을 때 그는 "죽을 때까지 부산에 있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은 지켜지고 있다. 그는 그런 자신의 인생이 부산, 한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영적으로 힘이 됐기를 바라며, 아직 하느님 품 밖에 있는 사람들도 하루빨리 그 품으로 들어오기를 간구한다고 했다.

"어떤 사람이 기차 속에서 자꾸만 '아이고' 소리치는 겁니다. 목적지와 반대 방향의 기차를 탔다네요. 그러면서 차를 갈아탈 생각은 않고 '이를 어째 이를 어째'하며 탄식만 하는 겁니다. 우리 삶도 그와 같습니다. 하느님께 나아가야 하는데도 삶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회개해야 하는데 오늘 미루고 내일 또 미루고 있습니다. 소중한 삶을 그렇게 눈치만 보며 살아서야 하겠습니까. 지금이라도 하느님께로 주체적으로 나아오세요."

임광명기자 kmyim@busa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