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46122
- 글쓴이 : 강승현
- 작성일 : 2014/09/01
- 조회수 : 2,555
(성바오로)홀리 에로스-원초적 생명의 에너지
제임스 D.화이트헤드,에벌린 이튼 화이트헤드/성염 옮김/287면/16,000원
'거룩한 성애’ 우리말로 다시 써보면 이쯤 될까? 왠지 고개가 갸우뚱거리는 조합이다.
에로스라는 말에서 전해져 오는 느낌은 약간의 떨림, 낯붉힘,
그리고 짜릿함 좀더 한 걸음 더 나가면 ‘흥분’, ‘육체적 즐거움’... 다분히 감각적이다.
그런데 왜 이런 것이 거룩함과 어울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에로스’는 생명의 에너지가 되는 동시에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에로스 없는 삶은 공허하지만, 길들이지 않은 욕망은 사람을 미치게도 한다.
우리 몸은 아름다움에 흥분하고 기쁨에 감동한다. 그리고 접촉을 원한다.
애정으로 안기고, 연인의 애무를 받고, 격려하는 손길이 쓰다듬어 주기를 원한다.
우리의 에로스 체험은 정서적 매력, 성적 충동, 헌신적인 사랑의 심화로 확장해 나간다.
이것은 우리 자신을 인식하고 그러한 열정이 타인에게 열리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미숙함을 지닌 우리 몸이지만, 이렇게 성행위는 서로 나누어야 할 선물이며
사랑의 표지가 된다. 에로스의 다른 이름으로 ‘희망의 에로스’가 있다.
이것은 앞으로 다가올 좋은 것을 기대할 수 있기에 기다리는 힘을 주며 지금을 참아내게 한다.
또한 너무나 힘들어 외면하고 저항하지만 다시 받아들이는 ‘고통의 에로스’도 있다.
그리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분노의 에로스’, 정의를 추구하는 열정인
‘동정의 에로스’ 등 이렇듯 에로스는 나와 우리 모두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근원적인 힘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은 에로스의 고대 이미지로 돌아가서,
그 이미지가 오늘날 우리 사이에서 이루시는 신(하느님)의 활동을 드러내는
잠재력을 되찾는 것을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미지가 그리스도교 전통에 들어오면서
육체와 성애와 욕망에 대해서 편협한 성향을 보인 사실을 인정하며
창조주의 원의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에로스의 참다운 정의를 되찾아야 한다.
사회학자, 신학자, 영성작가 같은 현대 저자들과 대화하며 정열, 쾌락, 정의
그리고 변혁 사이에 발생하는 에로스의 상호연관선상에서 삶을 가꾸어야 한다.
이것이 창조주가 인간을 비롯한 생명을 탄생시킨 이유이며 그렇게 살아갈 때
‘신(하느님)의 영광은 온전히 살아 있는 인간 우리 그 자체’가 된다.
자 이제 그 신념을 지닌 채 살아가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