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1280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9-08-30 05:3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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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교서] 가장 위대한 임무(Maximum Illud)

베네딕토 15세 교황 성하께서
세상에서 선교사들이 수행하는 활동에 관하여
가톨릭 세계의 총대주교와 수석 주교, 대주교와 주교에게 보내는 교황 교서

가장 위대한 임무
(Maximum Illud)

존경하는 형제 주교 여러분께,

인사와 교황 강복을 드립니다.

가장 위대하고 거룩한 임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께로 되돌아가실 때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하고 말씀하시며 당신 제자들에게 맡기신 이 임무는 분명 사도들의 죽음과 더불어 끝날 수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 임무는 사도들의 후계자들을 통하여 세상 끝날까지, 다시 말해 진리의 가르침으로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계속되어야 합니다. 사실 그날 이후 “그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고”(마르 16,20), “그 소리는 온 땅으로, 그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가게”(시편 19[18],5)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교회는, 이 거룩한 명령을 기억하며, 세기의 흐름 속에서, 세상 모든 곳에, 하느님 말씀의 전파자들과 봉사자들을 파견하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았고,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에게 가져다주신 영원한 구원을 선포했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교 초기 300년 동안, 연이은 박해의 광풍이 지옥에서 풀려나와 갓 태어난 교회가 온통 그리스도인들의 피로 넘쳐흐를 때에도, 복음의 소리는 널리 전파되어 로마 제국의 극변까지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공적으로 교회에 평화와 자유가 주어졌을 때, 복음 전파는 특별히 열정과 성덕에 뛰어난 이들의 노력 속에서 사도직 활동에 힘입어 전 세계적으로 매우 큰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들 중에 조명자 그레고리오(Gregorius)는 아르메니아를, 빅토리노(Victorinus)는 스티리아(Styria)1)를, 프루멘시오(Frumentius)는 에디오피아를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이끌었습니다. 파트리치오가 아일랜드인들을 그리스도 안에 태어나게 하였을 때, 아우구스티노(Augustiuns)는 영국인들을, 골롬바노(Columbanus)와 팔라디오(Palladius)는 스코틀랜드인들을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였습니다. 또한 위트레흐트(Utrecht)의 첫 번째 주교인 클레멘스 빌리브로르도(Clemens Willibrordo)가 네덜란드를 복음화하였고, 보니파시오(Bonifatius)와 안스가리오(Ansgarius)가 독일 민족에게, 치릴로(Cyrillus)와 메토디오(Methodius)는 슬라브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다시 한번 선교 활동의 범위를 더 넓혀, 기욤 드 뤼브룩(Gulielmus de Rubruquis)은 복음의 빛으로 몽고인들 속으로 들어갔으며, 복자 그레고리오 10세 교황은 선교사들을 중국으로 파견하였고, 얼마 뒤 프란치스코회 회원들이 그곳에 성대한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설립하였으나 박해의 폭풍우가 몰아쳐 무너져 버렸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된 후, 도미니코회의 자랑이요 빛인 바르톨로메오 라스 까사스(Bartholomaeus Las Casas)라는 탁월한 인물로 대변되는 일군의 사도들은 사람들의 파렴치한 횡포에 맞서 그곳에 있는 가난한 원주민들을 보호하고 악마의 혹독한 종살이에서 그들을 해방시키고자 헌신하였습니다. 한편 마땅히 사도들에 비견될 수 있는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동인도와 일본에서 하느님의 영광과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많은 땀을 흘린 후, 중국을 향하여 나아가다가 중국을 눈앞에 두고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는 사실상 자신의 죽음으로 중국이라는 광활한 지역의 새로운 복음화에 길을 열었고, 수많은 수도회와 선교회의 열심한 회원들이, 온갖 변화 속에서, 진리의 사도직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끝으로, 마지막으로 발견된 호주 대륙은, 아프리카 내륙과 마찬가지로, 대담함과 항구함 속에서 탐험되었고 그리스도교 신앙의 전령(傳令)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광대한 태평양에는 우리 선교사들의 활발한 열정이 도달할 수 없을 만큼 먼 섬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자신의 형제들의 구원을 열망하며, 사도들의 모범에 따라, 자신을 성화하는 데 이르렀고, 적지 않은 이들이 피로써 그들의 신앙을 확인하며 자신의 사도직을 순교로 장식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전파하는 데 있어 우리가 겪은 많은 역경과 수많은 빛나는 사업들 그리고 모범이 되는 불굴의 강인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죽음의 어두움과 그늘 아래 머물고 있는 이들이 무수히 많다는 사실에 심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최근의 계산에 따르면 믿지 않는 이들의 수가 10억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인은, 이토록 현저하게 많은 수를 차지하는 영혼들의 불행을 애처로이 여기고, 거룩한 사도적 의무를 통해, 이 영혼들을 구원에 참여하도록 이끌기를 갈망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의 작용 아래, 믿지 않는 이들 사이에 거룩한 가톨릭 선교지2)들을 장려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어 날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 여러 곳에서 선한 이들의 열정이 증대되고 있음을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러한 운동에 힘이 되어 주고 또 전 세계적으로 이 운동에 박차를 가하기 위하여, 마땅히 그러해야 하듯이, 본인은 주님께서 힘을 주시고 도와주시기를 쉬지 않고 간청한 뒤에, 존경하는 형제 여러분에게 이 편지를 보냅니다. 이 편지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사제 그리고 여러분에게 맡겨진 백성들을 격려하고 또 여러분이 어떤 방식으로 이 중대한 사안에 기여할 수 있는가를 가리켜 줄 것입니다.

본인은 무엇보다 먼저 주교나 교황대리감목구장(대목구장) 또는 교황대리지목구장(지목구장)의 자격으로 거룩한 선교지를 주관하고 있는 이들을 향해 말씀드립니다. 사실 신앙의 전파가 직접적으로 그들에게 달려 있고, 또 교회가 최대한 확산되기를 바라는 교회 자신의 희망에 대한 응답을 얻는 것도 바로 그들 안에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들 안에 선교 정신이 얼마나 활발히 살아 있는지 본인은 모르지 않습니다. 특히 최근 몇 년에 걸쳐, 이미 획득한 입지를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더욱더 확장하기 위하여 그들이 극복해야 했던 무수한 난관들과 그들이 겪어야 했던 많은 시련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도좌를 향한 그들의 애착과 효심을 잘 알기에, 한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들에게 하는 것처럼, 본인은 굳게 신뢰하며 마음을 열고 말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이른바 자기 선교지의 영혼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사제들과 협조자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하고, 더 나아지도록 그들을 독려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식으로든 주님의 이 포도밭에서 일하는 모든 이가 자신들의 진정한 한 아버지로 장상을 모시고 있음을 깨닫고 경험하며 체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의 깊고 성실하며 배려하는 마음과 자애가 가득하고 커다란 열정으로 모든 일과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는 아버지, 함께 기뻐하고 함께 아파하며 시작한 좋은 사업들을 장려하고 진작시키는 아버지, 한마디로 말해 주님의 포도밭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관련되는 모든 것을 마치 자기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아버지, 장상은 바로 이런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한 선교지의 운명은, 말하자면, 그 선교지가 어떻게 이끌어지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선교지를 통치하는 이의 무능함은 그야말로 위험할 수 있습니다. 사실 선교 사도직에 자신을 봉헌하는 이는 조국과 가족 그리고 친지들을 버립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로 많은 영혼을 이끌고자 어떤 고난도 참아낼 태세로 종종 길고 위험한 여행을 무릅씁니다. 만약 그에게 어떤 상황에서든 사려 깊은 사랑으로 자신을 도와주는 장상이 있다면, 의심의 여지없이, 활동은 매우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 심히 두려운 일이지만, 그는 여러 가지 반대와 곤혹스러움으로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결국 절망과 무기력 속에 자신을 방치하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한 선교지를 주관하고 있는 이는 자신의 선교지가 최대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게 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사실 선교지의 모든 곳이 자신의 보살핌 아래 맡겨진 만큼, 그가 그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이의 영원한 구원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점은 명백합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선교지 내에 있는 그 많은 이들 중에 몇 천 명의 영혼을 신앙으로 이끌었다고 하여 만족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끈 이들 중 그 누구도 파멸의 길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그들을 기르고 유지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리고 남아 있는 수많은 비신자들을 그리스도교적 삶으로 이끌고자 먼저 온 힘을 다해 중단 없이 노력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의무를 온전히 완수하고 있다고 여겨서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설교를 더욱 더 용이하게 하려면 새로운 거점들과 새로운 신자 공동체를 설립하는 것이 상당히 유익할 것입니다. 이러한 선교 거점들과 신자 공동체들은, 선교지를 분할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될 때, 새로운 교황대리감목구나 교황대리지목구로 발전하는 모체가 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본인은, 교황대리감목구장으로서 이렇게 하여 하느님 나라를 번창하게 하는 데 이바지하고, 또 자신의 수도회 내에서 새로운 협조자들을 찾지 못할 경우 자신의 선교지에 다른 여러 수도회 가족을 기쁜 마음으로 맞아들이는 이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찬사를 보냅니다.

이와 반대로, 주님의 포도밭의 한 부분을 경작하도록 위탁을 받은 이가 자신에게 위임된 부분을 마치 자신의 소유지처럼 간주하고 질투하며 다른 이가 손도 대지 못하도록 한다면, 그의 이런 행동은 얼마나 많은 질책을 받겠습니까! 만약 자신의 작은 신자 공동체가 무수한 비신자들의 무리 가운데서 – 종종 그러하듯이 – 거의 유실된 채 있고, 무수한 비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침에 있어 자신과 자신의 동료들의 활동으로는 충분하지 않는데도 고집을 부리며 다른 협조자들의 도움을 청하지 않는 이가 있다면, 영원한 심판관 앞에서 그는 책임감으로 얼마나 무서워 떨지 않겠습니까! 반면 선교지의 장상으로서 오직 하느님의 영광과 모든 영혼의 구원을 위해 주의를 기울이는 이는, ‘온갖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되도록 하기 위하여’(필리 1,18), 필요한 경우 소속 수도회 혹은 국적을 따지지 않고 각지에서 협조자들을 불러 자신의 거룩한 직무를 돕게 합니다. 그는 학교, 고아원, 빈민 구제소, 병원 등과 같은 애덕 사업이 하느님 섭리의 손길 안에서 신앙의 전파를 위하여 매우 효과적인 방법임을 확신하고 이를 위하여 남자만이 아니라 여자 협조자들도 부릅니다.
뿐만 아니라 선교지의 훌륭한 장상은 자신의 선교지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단지 자신의 선교지에만 제한하여 자신의 활동을 전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나 하느님의 영광 - 그에게 중요한 유일한 것- 이 그를 끌어당길 때, 주변에 있는 선교지들의 동료 장상들과의 협력을 모색합니다. 사실 같은 지역과 관련된 관심사들, 즉 상호 합의 없이는 잘 관리할 수 없는 관심사들이 종종 있습니다. 따라서 선교지들의 지휘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서로 조언을 주고받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 또한 가톨릭 종교에 매우 유익합니다. 끝으로 선교지를 다스리는 장상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우선적 관심을 현지인 사제의 양성에 두어야 합니다. 이 현지인 사제의 양성에 새로운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더 나은 희망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자신의 동포들과 혈통, 기질, 정서, 열망을 공유하는 현지인 사제는 동포들의 가슴 속에 신앙이 자리 잡도록 하는 데 있어 놀라울 정도로 적합합니다. 이는 그가 설득의 방법을 다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외국인 선교사가 도달할 수 없는 지점에 현지인 사제는 아주 쉽게 도달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그러나 원하는 결과를 얻는 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현지인 사제를 당연히 해야 할 바대로 양성하고 교육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제품에 올릴 수 있도록 대충하는 초보적 양성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양성은 문명화된 나라의 사제들에게 주어지는 것과 같이 완전하고 완벽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요컨대 그저 부차적인 직무만 맡는 낮은 단계의 현지인 사제 양성이 아니라, 거룩한 직무에 합당하다고 여겨질 때 언젠가 현지인 사제가 한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맡아 다스릴 수 있도록 양성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교회는 보편적이며 따라서 어떤 민족에게도 낯설 수 없듯이, 각국에 스승이요 장상으로서 자신의 동포들을 영원한 행복의 길로 이끌 능력을 갖춘 사제들이 있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잘 교육받고 또 자신의 고귀한 성소에 합당하게 응답한 현지인 사제의 수가 충분히 많은 바로 그곳에 교회가 잘 설립되었다고 말할 수 있고, 또 선교 활동이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박해의 광풍이 일어난다 하여도, 이렇게 튼튼한 기초와 굳건한 뿌리를 지닌 그 교회가 이를 견디지 못할까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사도좌는 선교지의 장상들에게 이 중차대한 임무를 잘 이해하고 전력을 다해 이를 수행해야 한다고 항상 강조했습니다. 사실 외국인 성직자들, 특히 동방 전례에 속하는 성직자들의 양성을 위하여 이 거룩한 도시에 설립된 아주 오래된 대학들과 새로운 대학들이 그 증거입니다. 그러나 사도좌의 이런 강조에도, 가톨릭 신앙이 전파된 지 수세기가 되었지만 매우 열등한 현지인 사제만 마주치게 되는 그런 지역들이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많습니다. 동시에 산업과 과학의 각 분야에서 뛰어난 인물들을 소개할 수 있을 정도로 이미 높은 차원의 문명에 도달하였고, 또 수세기 전부터 복음과 교회의 영향 아래 있었지만 아직까지 동향인들을 이끌 만큼 영향력을 지닌 사제들도, 그들을 통치할 자신들의 주교들도 없는 여러 민족들도 있습니다. 이는 선교지에 보낼 사제를 양성함에 있어 지금까지 여기저기서 매우 결함이 많고 불충분한 방법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드러내 줍니다. 따라서 본인은 이러한 결점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포교성성은3), 적당하다고 여겨지는 바대로, 여러 지역을 위해 적합한 방책과 규정을 마련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포교성성은 지역 신학교나 교구 연합신학교의 설립과 운영에 관심을 가지고, 또 각각의 교황대리감목구 내에서와 여러 선교지들 내에서 이루어지는 사제의 양성을 특별히 감독하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 주님 포도밭의 일꾼들이며 그리스도교 진리의 전파와 무수한 영혼의 구원에 보다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여러분의 교회가 여러분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바로 여러분들이 인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맡겨진 책무는 전적으로 거룩한 것이며 따라서 소소한 인간적 이해를 넘어서 있는 것임을 생각하십시오. 사실 여러분은 죽음의 그늘 아래 있는 이들에게 빛을 가져다 주고 영원한 파멸을 향해 달리고 있는 이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젖히는 이들입니다. 따라서 "네 백성과 네 아버지 집안을 잊어버려라."(시편 45[44],11)는 성서 말씀을 주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하신 말씀으로 여기며, 다음의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곧 여러분은 인간의 나라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나라를 전파해야 하고 지상의 조국이 아니라 하늘 나라에 시민들을 늘리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자신의 고귀한 품위를 망각한 채 천상 왕국보다는 지상의 조국을 더 생각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좋아하고, 항상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이름과 자신의 영광이 칭송받기를 바라는 선교사들이 있다면, 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개탄할 일입니다. 이는 선교 활동의 가장 슬픈 상처들 중의 하나로, 선교사 안에서 영혼에 대한 열정을 마비시키고 현지인들 사이에서 그의 모든 권위를 실추시킬 것입니다. 사실 선교지의 현지인들은 아무리 거칠고 미개할지라도 선교사가 그들에게 원하고 찾는 바를 아주 잘 감지합니다. 말하자면, 만약 그가 그들의 영적 선익 이외의 다른 어떤 것을 얻고자 하면, 선교지의 현지인들은 곧 이를 눈치 채 버릴 것입니다. 인간적인 의도들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않고, 그래서 전정한 사도로서 제대로 처신하지 않기에, 그가 자신의 조국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추정할 동기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가 하는 모든 일은 사람들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현지인들은 그리스도교가 결국 외국의 종교에 불과하며, 이 종교를 받아들이면 자신의 민족성을 버리게 된다고 쉽게 믿게 될 것입니다.

최근에 나온 특정 선교 간행물들에 대해 본인은 참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안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확대하고자 하는 열정보다는 자기 나라의 영향력을 넓히고자 하는 욕망이 명백히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로써 이교도들의 영혼이 우리의 거룩한 종교로부터 멀어지도록 하는 중대한 위험이 초래될 것이라는 그 어떤 걱정도 이 간행물 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 이름에 합당한 가톨릭 선교사는 그래서는 안됩니다. 선교사는 자신이 조국으로부터 파견된 이가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파견된 이임을 결코 잊지 않고, 모두가 의심의 여지없이 그에게서 가톨릭 종교의 한 봉사자를 알아볼 수 있도록 그렇게 처신해야 합니다. 가톨릭 종교는 영과 진리 안에서 하느님을 경배하는 모든 이를 끌어안고, 그 어떤 나라에도 낯선 이방인이 아니며, "여기에는 그리스인도 유다인도, 할례 받은 이도 할례 받지 않은 이도, 야만인도, 스키티아인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콜로 3,11).

선교사가 온 힘을 다해 경계해야 할 또 다른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영혼들을 얻는 것이 아닌 다른 것들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금전욕에 불타는 이가 어떻게, 오로지 그리고 합당하게, 하느님의 영광을 찾을 수 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여기겠습니까? 그런 그가, 이웃을 구원함으로써 하느님의 영광을 드높이고자, 자신이 가진 모든 것과 자신의 생명을 바칠 준비가 어떻게 되어 있겠습니까? 결국 그는 비신자들 사이에서 그가 누리던 권위와 특권을 잃게 될 것입니다. 이는 특히 돈을 벌고자 하는 갈망이 쉽게 일어나듯이, 이미 그 안에서 인색함으로 탈바꿈되었을 때 그렇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면전에서 이 추한 악습보다 더 경멸할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하느님의 나라에서 이 추한 악습보다 더 부당한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훌륭한 복음 선포자는 주의 깊게 이방 민족들의 사도 바오로를 본받아야 합니다. 그는 티모테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합시다."(1티모 6,8) 라고 말했을 뿐만 아니라,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수많은 활동을 하는 가운데서도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손으로 노동을 했던 사심 없는 분이었습니다.

선교사가 자신의 사도직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를 위해 세심하게 준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민족들 속으로 그리스도를 선포하러 가는 이에게는 그렇게 많은 학문적 지식이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말입니다. 사실 영혼들을 회개시키고 구원하는 일에 있어 앎보다는 덕(德)이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그러나 먼저 어느 정도의 교의적 지식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이후 성공적으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그에게 크게 부족한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선교사가 책도 없고 어떤 박식한 사람에게 조언을 구할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하고, 또 그리스도교 신앙을 거슬러 그에게 쏟아지는 반론들에 대해 대답해야 하고 상당히 어려운 질문들과 문제들을 해소해야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교사가 잘 교육받았음이 드러나는 그만큼, 사람들 사이에서 그가 누리는 신뢰와 존경은 더 커질 것입니다. 이는 그가 학문과 지식을 귀하게 여기고 숭상하는 민족과 산다면, 특히 그러할 것입니다. 이런 경우, 진리의 선포자들이 오류를 섬기는 자들보다 마치 열등한 것처럼 간주되는 매우 부적당한 일도 일어날 것입니다. 따라서 선교사가 되기를 원하는 이들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해외 선교지들을 위해 준비를 갖추는 동안, 세상의 것이든 교회의 것이든 선교사에게 필요한 모든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사실 본인은 로마에 있는 포교성성의 교황청립 대학4)  과정에서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가운데 이런 교육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특히 선교지들과 관계된 모든 것에 대해 가르치는 일이 오늘 이후부터 시작되기를 명령합니다. 

선교사가 파악하고 알아야 할 첫 번째 것은 자신이 그 회개를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민족의 언어입니다. 그러나 대충 아는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확하고 유창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언어를 습득해야 합니다. 선교사는 우둔한 사람이든 똑똑한 사람이든 온갖 종류의 사람들에게 빚을 진 사람입니다. 사실 말을 잘 하는 사람에게는 만인의 호감을 사는 일이 얼마나 쉬운 일인가 하는 점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교 교의를 설명함에 있어, 부지런한 선교사는 교리교사에게 이를 떠넘기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본분,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의무로 여기며 직접 이를 행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그를 파견한 것은 복음의 선포만을 위한 것이며 그 밖에 어떤 다른 목적도 없음을 잘 압니다. 가끔씩 선교사는 가톨릭 종교의 성직자요 대표자로 그 나라의 당국자들 앞에 나서거나 혹은 식자들의 모임에 초대될 경우가 있는데, 만약 그때, 선교사가 언어를 몰라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없다면, 그가 어떻게 자신의 지위에 걸 맞는 권위를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동방에서 교회가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여기 로마에 한 특별한 기구를 설립하였을 때, 본인은 바로 이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는 동방 지역에서 선교에 헌신하고자 하는 이가 모든 사안에 있어 잘 배우고, 특히 동방의 언어와 관습을 잘 알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본인은 이 기구가 매우 유익하다고 여겨지기에, 이 기회를 빌려, 동방에서 선교지들을 맡고 있는 모든 남녀 수도회의 장상들에게 해당 선교지들에 보낼 예정인 그들의 제자들을 이 기구로 보내어, 그들이 그곳에서 보다 견고한 수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을 권고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선교를 준비하는 이에게는, 이미 말씀드렸듯이, 삶의 성화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사실 하느님을 전하는 이는 하느님의 사람이 되어야 하고, 악을 미워하도록 가르치는 이는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 특히 이성보다는 본능에 따라 더 많이 움직이는 비신자들 사이에서는 말로 하는 설교보다 모범으로 보이는 설교가 훨씬 더 유익합니다. 비록 선교사가 정신과 마음으로 칭찬받을 만하고 또 교리를 잘 알고 교육을 잘 받았다 하여도, 이런 자질들이 흠잡을 데 없고 거룩한 삶과 결합되지 않으면, 민족들의 구원에 미미한 효과를 내거나 혹은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할 것이고, 오히려 그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대단히 해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선교사는 겸손과 순명 그리고 정결에 있어 모범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특히 거룩하고 기도에 몰두하고 하느님과 지속적으로 일치하며, 열정을 가지고 그분과 함께 영혼들에 관한 일을 수행해야 합니다. 사실 하느님과 결합되는 그만큼, 주님의 은총도 더 풍부하게 그에게 주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콜로 3,12)라고 말한 사도의 권고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이러한 덕들의 도움으로 모든 장애가 제거되면, 사람들의 마음을 진리로 이끄는 길은 쉽고 평탄할 것입니다. 더욱이 쉽게 반항할 수 있는 완고한 의지라고는 전혀 없을 것입니다. 주 예수님을 본받고자 사랑으로 불타는 선교사는 잃어버린 이교도들 또한 주님의 거룩한 피로 같은 값은 치르고 속량된 하느님의 자녀들임을 알고, 그들이 우둔하다 하여 화를 내지 않고, 좋지 못한 그들의 관습을 보고 놀라 당황하지 않으며, 그들을 업신여기거나 경멸하지 않으며, 모질고 냉혹하게 그들을 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언젠가 착한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품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교적 호의의 부드러움으로 그들을 끌어당기고자 애씁니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성서의 다음 구절을 부지런히 묵상합니다. "당신 불멸의 영이 만물 안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당신께서는 탈선하는 자들을 조금씩 꾸짖으시고 그들이 무엇으로 죄를 지었는지 상기시키며 훈계하시어 그들이 악에서 벗어나 당신을 믿게 하십니다. …… 당신께서는 힘의 주인이시므로 너그럽게 심판하시고 저희를 아주 관대하게 통솔하십니다"(지혜 12,1-2.18). 따라서 그 어떤 역경이, 그 어떤 고난과 위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러한 사절을 낙담하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토록 고귀한 사명을 수행하라고 자신을 부르신 하느님을 향해 자신이 나아가고 있음을 알기에, 그는 모든 것을 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옥의 문턱에서 한 영혼이라도 끄집어내기 위해서라면, 수고로움, 모욕, 굶주림, 결핍, 그리고 가장 끔찍한 죽음마저도 너그럽게 참아낼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마음과 결심으로, 선교사는 주님이신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모범에 따라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자신 있게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모든 신뢰를 하느님께 두어야 합니다. 사실 그리스도교 지혜의 전파는, 말한 바 있듯이, 모두가 하느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느님 홀로 사람들의 마음 안에 파고들고, 진리의 광채로 그 정신을 비추시고 진리의 불꽃을 가슴속에 피우실 줄 아시고, 하느님 홀로 사람에게 필요한 힘을 주시어, 그가 참되고 좋은 것이라고 알게 된 것을 따르고 완성하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만약 주님께서 힘들어 하는 선교사를 도와주시지 않으면, 그의 모든 노력은 헛되고 말 것입니다. 겸손하게 청하는 이에게는 결코 거절되지 않고 주어지는 하느님 은총의 도우심을 굳게 신뢰하며, 선교사는 담대하게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수행해 나아가야 합니다. 이 시점에서, 그리스도교 초창기부터 온갖 열성으로 복음 전파를 도왔던 여인들이 간과되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합당하게 칭송을 받아 마땅한 이들은 하느님께 봉헌된 동정녀들로, 이들은 거룩한 선교지들 안에 많이 있으며, 아이들의 교육이나 다른 여러 가지 자선과 애덕 사업에 헌신하는 이들입니다. 본인은 그들이 본인의 칭찬으로 새로운 자극과 용기를 얻어 교회에 유익이 되는 방향으로 자신들의 공로를 더욱 성장시키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자신의 영적 완성을 위해 전력을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그들의 사업은 더욱더 유익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 본인은 하느님의 크신 자비에 힘입어 이미 참된 신앙을 소유하고 있고 또 무한한 은혜를 받아 누리고 있는 모든 신자를 향하여 기쁜 마음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신자들은 선교지의 비신자들을 돕는 것이 자신들과 직결된 의무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각자에게 제 이웃에 대한 계명을 주셨기”(집회 17,14) 때문입니다. 사실 이웃이 긴급한 상태에 있으면 있을수록, 이 의무는 그만큼 더 막중하게 됩니다.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불행 속에 머물며, 눈멀고 고삐 풀린 욕망으로 악마에 굴복하여 노예살이를 하고 있는 비신자들보다 더 우리의 형제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가 누구입니까? 자신의 능력껏 그들에게 빛을 비추는 데 기여하고자 하는 모든 이는, 특히 선교사들의 사업을 도움으로써, 막중한 자기 의무를 완수하고, 비신자들에게 신앙의 선물을 베풀어 주신 데에 대하여 하느님께 그분께서 기꺼이 받으시는 방식으로 감사를 드릴 것입니다.  

여러 선교지에 제공될 수 있는 도움이자 선교사들이 끊이지 않고 요구하는 도움은 세 가지 형태입니다. 첫째는 모든 이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주님께서 그들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시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선교사들의 사업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비옥해지지 않으면 별다른 열매를 맺지 못하고 속이 텅 빈 것이 된다는 것을 이미 여러 차례 본인은 지켜보았습니다. 사실 성 바오로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1코린 3,6). 선교 사업에 필요한 하느님의 은총을 얻으려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겸손하고 항구한 기도뿐입니다. 주님께서도 “무엇이든 청하면, ……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마태 18,19)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숭고하고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그런 일과 관련된 만큼, 이러한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언젠가 모세가, 아말렉인들과 맞서 싸우는 이스라엘인들을 위하여 언덕 위에서 하늘을 향해 손을 쳐들고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했던 것처럼, 복음의 전파자들이 주님의 포도밭에서 땀을 흘리는 동안 모든 그리스도인 또한 기도로써 그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기도의 사도직’은 바로 이러한 목적으로 설립되었기에, 본인은 모든 신자들에게 이 사도직을 적극적으로 권고합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 사도직에 함께하기를 거절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이가 물질적으로가 아니라면 적어도 마음으로나마 힘든 선교 사업에 동참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부족한 선교사의 수를 보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는 이미 알고 있었던 바이지만, 전쟁5) 이후 더욱 체감할 정도로, 주님의 포도밭 많은 곳에서 밭을 일굴 일꾼들이 부족합니다. 이런 이유로 본인은 존경하는 열심한 형제 주교 여러분에게 간청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교구 사제와 신학생 안에서 해외 선교를 자원하는 이들의 성소를 열심히 기른다면, 여러분은 가톨릭 종교에 대한 여러분의 사랑에 걸맞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좋은 이미지나 인간적 생각에 현혹되지 않도록 하고, 선교지들에 내어 주는 그만큼 여러분의 교구에서 빠져나갈 것이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한 선교사를 선교지로 보내 주면,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교구에 유능한 사제들을 더 많이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따라서 본인은 해외 선교에 헌신하는 수도회와 선교 단체의 장상들이 그들 회원들 중 최고인 이들, 즉 삶의 거룩함과 희생정신 그리고 영혼들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기에 힘든 선교 직무에 대해 정말 자질이 있음이 드러나는 이들만을 선교지에 배정하기를 거듭 간청합니다. 장상들은 그들의 선교사들이 성공적으로 어떤 주민들을 좋지 못한 미신에서 그리스도교적 지혜로 이끌어 매우 안정적인 교회를 설립하였음을 알게 되면, 악마의 손아귀에서 또 다른 민족을 빼내도록 이 노련한 그리스도의 군사들을 다른 곳으로도 가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들 선교사들은, 그리스도께로 모아들인 이들이 더욱 나은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애석해 하지 않고 이 사람들을 다른 이들에게 맡겨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장상들은 수많은 영혼들의 구원에 기여하는 한편, 그들 수도 가족들에게 하느님의 선의의 선물들이 풍성히 내리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선교지들을 유지하기 위하여 물질적인 수단들도 적지 않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특히 학교, 빈민 구제소, 병원 그리고 다른 자선 단체들을 황폐하게 하고 파괴해 버린 전쟁 때문에 그 필요성이 매우 커졌습니다. 따라서 본인은 선의를 가진 모든 이가 힘닿는 데까지 이러한 물질적 필요를 너그럽게 보살펴 주기를 간곡히 요청합니다.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 그에게 마음을 닫아버리면, 하느님 사랑이 어떻게 그 사람 안에 머물 수 있겠습니까?”(1요한 3,17) 사실 요한 사도는 물질적 궁핍에 억눌린 이들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단지 비참함과 굶주림 속에서 싸우고 있는 무수한 사람들을 돕는 것만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사탄의 노예생활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영혼들을 끌어내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자유를 누리도록 하려면 더더욱 사랑의 거룩한 계명이 지켜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편, 특별히 본인은 선교지들에 도움이 되도록 설립된 그 사업들이 관대한 가톨릭 신자들의 도움을 받기 바랍니다. 그 첫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선임 교황들이 그렇게 자주 칭송하였던 '전교회'6)입니다. 따라서 본인은, 이 전교회 사업이 날마다 최고의 성과를 내며 번창할 수 있도록, 포교성성이 특별히 보살펴 주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이 전교회는 이미 설립된 선교지들과 장차 설립되어야 할 선교지들의 유지를 위해 요구되는 광범위한 수단들을 가지고 있고 또 제공할 수 있습니다. 본인은, 다른 이들이 오류를 퍼뜨리기 위하여 강력한 수단들을 제시하는 동안 정작 우리들은 진리를 전하고자 궁핍과 싸워야 하도록, 전 세계의 가톨릭 신자들이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더불어 본인은 비신자들의 죽어가는 아기들에게 세례성사를 받도록 하는 '성영회'7)를 적극적으로 권고합니다. 사실 우리 신자들도 여기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사업은 상당히 권고할 만합니다. 이 사업에 참여함으로써, 신자들은 신앙의 선물이 얼마나 고귀한지 알게 되고, 아울러 다른 이들과 공조하며 일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선교지들에서 현지인 사제의 양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베드로 사도회'8) 또한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본인은 전임자이신 레오 13세 교황께서 규정하신 바, 곧 주님 공현 대축일에 전 세계 모든 교회에서 ‘아프리카의 노예들의 속량을 위하여’ 헌금을 거두도록 하고, 그 모금액을 포교성성으로 보내도록 한 규정이 충실히 준수되기를 또한 바랍니다.

하지만 본인의 바람이 더욱 확실하고 행복하게 이루어지려면, 존경하는 형제 주교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속한 성직자 교육을 완전히 특별한 방식으로 선교지에 맞추어 해 나가야 합니다. 신자들은 일반적으로 선교 사업을 도울 준비가 잘 되어 있고 또한 호의적이기에, 여러분은 이런 좋은 마음들을 지혜롭게 활용하여 선교지에 최대한 큰 도움이 되도록 하십시오. 이러한 전망에서 본인은 가톨릭의 전 세계 모든 교구에서 '성직자 전교연맹'9)이라 불리는 단체가 설립되기를 바라는 바임을 여러분은 아십시오. 사실 본인은 이 단체가 포교성성 관할 아래 있기를 바라며, 이를 위하여 필요한 모든 권한을 포교성성에 이미 부여하였습니다. 이 단체는 최근 이탈리아에서 설립되어 짧은 시기에 여러 지역으로 퍼졌으며, 본인은 이 단체가 번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교황으로서 많은 특전을 이 단체에 부여하였습니다. 이는 합당한 조치입니다. 이 단체를 통하여 성직자의 활동이 지혜롭게 조직될 뿐만 아니라, 신자들이 모든 이교도들의 구원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 아울러 교황청으로부터 이미 승인을 받은 모든 사업이 선교지에 유익하게 성장하고 발전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형제 주교 여러분, 본인은 전 세계에 가톨릭 신앙을 전파하는 것과 관련하여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이 서한을 썼습니다. 해외의 선교사들과 본국의 신자들이 능력껏 자신의 의무를 다한다면, 거룩한 선교지들이 전쟁으로 초래된 심각한 피해에서 복구되고 가능한 한 빨리 다시 번성하게 될 것임을 본인은 확신하고 또 그렇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일찍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깊은 데로 저어 나가라”(루카 5,4) 하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목소리가 본인을 독려하고 있으니,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주님의 품으로 이끌기 위하여 본인이 아버지로서 지닌 뜨거운 사랑은 얼마나 더 크겠습니까? 사실 교회는 항상 하느님의 성령으로 길러지고 번성하기에, 교회의 확산을 위하여 지금까지 일해 왔고 또 일하고 있는 수많은 사도들의 열정이 아무런 성과가 없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보여준 모범에 고무되어 다른 많은 사도들의 무리가 계속해서 생겨나, 신심 깊고 아낌없이 베푸는 선한 이들의 지지를 받아 수많은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 것입니다.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사도들의 모후께서 많은 이들의 간청에 호의를 베푸시고, 복음의 선포자들에게 성령이 넘쳐흐르게 하시기를 바라며, 본인은 그분의 보호를 청하고 또한 아버지다운 사랑의 표지로, 존경하는 형제 주교 여러분과 여러분의 성직자 그리고 여러분의 백성들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교황 강복을 보내 드립니다.

로마 성 베드로 좌에서
교황 재위 제6년
1919년 11월 30일

베네딕토 15세

1) 역자 주: 오늘날 오스트리아 동남부 지역에 위치한 지역으로 그랏츠(Graz)가 중심 도시이다.
2) 교황대리감목구(대목구) 혹은 교황대리지목구(지목구)를 일컫는 말이다.
3) 현 인류복음화성
4) 교황청립 우르바노 대학으로 알려져 있는 이 대학은 설립 당시인 1627년 현재의 인류복음화성 건물이 있는 로마의 스페인 광장 근처에 자리잡고 있었으나, 1926년 로마 자니꼴로 언덕으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5) 이른바 제1차 세계 대전(1914-1918)을 가리킨다.

6) 1822년 프랑스 리옹에서 선교사들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1922년 교황청 포교성성(현 인류복음화성) 산하 전교기구 중 하나인 교황청 전교회로 승격되었다.
7) 1843년 프랑스에서 설립되어 1922년 교황청 포교성성(현 인류복음화성) 산하 전교기구 중 하나로 승격된 단체로, 오늘날 교황청 어린이전교회의 근간을 이룬다.
8) 1889년 프랑스 캉(Caen)에서 선교지의 성직자와 수도자 양성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1922년 교황청 포교성성(현 인류복음화성) 산하 전교기구 중 하나인 교황청 베드로 사도회로 승격되었다.
9) 1916년 이탈리아의 바올로 만나(Paolo Manna) 신부에 의해 설립되어, 같은 해 교황 베네딕토 15세의 승인을 받은 단체로, 오늘날 인류복음화성 산하 4개 전교기구 중 하나인 교황청 전교연맹의 근간을 이룬다.

 

<원문 Lettera Apostolica Maximum illud del Sommo Pontefice Benedetto XV ai Patriarchi, Primati, Arcivescovi e Vescovi del Mondo Cattolico sull’Attività Svolta dai Missionari nel Mondo, 1919.11.30., 라틴어도 참조, 옮긴 이: 한윤식 신부>

 

교황 교서 가장 위대한 임무 번역문.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