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56719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9/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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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 2019년 주님 성탄 대축일 담화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4)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거룩한 날이 우리에게 밝았습니다. 오늘 복음은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9)고 선포합니다.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 분, 그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말씀이신 예수님 탄생의 은총이 한분 한분에게 함께하시길 기도하고,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하며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인간을 만드셨지만, 첫 인류는 불순종과 원죄로 말미암아 타락과 절망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 후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시고 구원되기를 끊임없이 원하신다는 사실을 알려주시려고, 예언자들을 통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도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로하시고, 땅끝까지 모두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고 선언합니다.(이사 52,9-10 참조) 그러나 인간은 어리석게도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당신의 최고 사랑인 말씀이신 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히브 1,1-2 참조)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가 직접 들으면 어떻게 될지를 알려 주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시나이산에 도착하였을 때, 그들이 처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접할 기회가 오자 모세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당신이 말해 주십시오. 하느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그랬다가는 우리가 죽습니다.”(탈출 20,19)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말씀을 직접 들으면 그것을 감당할 수 없음을 이스라엘 백성은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말씀을 직접 전하고 싶어하셨습니다. 그때가 차자 우리 인간이 당신의 말씀을 듣고도 죽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말씀을 친근하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 내용을 오늘 복음은 이렇게 전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요한 1,14)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하느님께서 직접 우리와 만나 말씀을 나누고 싶으신 간절한 사랑을 보여 주는 위대한 사건입니다.

이렇게 한처음에 하느님 곁에 있으셨던 말씀 자체, 하느님이신 아드님께서 우리의 시간과 역사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갓난아기로 우리 가운데에 오신 예수님의 성탄은 구세사의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탄의 신비를 미리 내다본 이사야 예언자는 감탄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는구나.”(이사 52,7) 구세주의 탄생으로 세상 끝까지 하느님의 구원이 선포되고, 모든 민족이 하느님을 찬양하는 은총의 시대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자매형제님들,
예수님께서는 죄악의 어둠을 비추고 넘치는 생명의 은총을 주십니다. 빛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허물을 말끔히 없애 주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마음에 사랑의 불을 환하게 밝히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살아 계시고, 우리의 심장 안에서 숨쉬고 계십니다. 가령, 우리 몸이 살아 있으려면 36도의 체온을 유지해야 하며, 그 아래로 차가워지면 생명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면에서 ‘생명’은 곧 ‘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묘사하는 성령의 다양한 모습 중 하나가 불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불은 반드시 빛과 함께하기에, ‘생명’과 ‘불’과 ‘빛’은 하느님을 상징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신 완전한 빛입니다. 부분적인 빛을 가진 인간이 죄로 어둠 속에 살고 있었기에 완전한 빛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4-5)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라봅니다. 아직도 생명보다는 반(反)생명에, 빛보다는 어둠의 문화에 이끌리는 모습이 많이 있습니다. 생명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는 것은 알지만, 우리 생명이 최고의 가치로 존중받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우리 사회에 인격무시, 낙태와 자살, 안락사, 환경파괴 등 반생명적인 행태가 만연해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 원인이 다양한 만큼 예방이 쉽지 않겠지만, 어려움에 빠진 이웃이 고립과 단절에서 벗어나 공동체적 삶을 회복하도록 돕는 게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누구보다 우리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건강한 역할이 세상에서 요청되는 성탄 시기입니다.
또한, 미워하고 다투고 경쟁하며 사람을 수단으로 여기고, 이웃의 행복을 빼앗으면서까지 내가 필요한 것을 얻으려 하는 극단적 욕망과 갈등이 우리 사회에서 분출되고 있습니다. 성공과 소유를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 그것을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우리가 어둠에 사로잡혀 살아간다는 증거가 아닐까 합니다. 진보와 보수 간의 이념 갈등,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갈등, 경영자와 노동자 간의 갈등,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 간의 갈등, 주택 소유자와 비소유자 간의 갈등, 개발론자와 환경보호론자 간의 갈등, 고령자와 젊은이 간의 세대갈등, 남북과 주변국 간의 갈등 등 일상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이 우리 안에서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갈등은 어느 사회나 존재하는 것으로 건전한 발전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갈등은 구성원 모두에게 많은 상처를 주고 빛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이윤이나 이익만 좇는 세속적인 태도와 개인의 행복만 고집하는 이기주의는, 사실 교묘한 방식으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 노예로 전락시킬 뿐 아니라, 참으로 조화롭고 인간적인 사회의 발전을 저해합니다”라는 최근(도쿄돔 장엄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황님 말씀을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이러한 현실을 성찰하며 우리 교구는 지난 4년간 시노드의 여정을 함께 걸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시노드를 통해 마음속에 담긴 상처와 부끄러운 교회의 모습을 말하고 들으며 보듬는 귀한 시간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과 성령의 인도에 우리 자신을 맡기며, 서로 존중하고 경청하면서 복음 선포를 위해 나아갑시다. 하느님을 향한 신앙 여정에 ‘경청을 통한 대화’와 ‘공동 식별과 공동 합의성’이라는 시노드 정신이 구현되도록 실천해 갑시다. 반생명과 극한 갈등의 세상에서 서로 공감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자세는 ‘나와 우리’에서부터 진지하게 생활화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시노드 정신을 되새기며 성령께서 이끄시는 교회, 구성원의 조화와 협력이 이뤄지는 교회,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교회, 세상의 편견과 그릇된 가치관이 넘어오지 못할 만큼 높지만 ‘가난한 이웃이 쉽게 넘어올 수 있는 낮은 교회’, 섬김과 나눔을 증거하는 교회로 성장해 가는 성탄 시기를 보내도록 합시다. 다시 한번 우리 안에 찾아오신 아기 예수님 탄생의 기쁨이 우리 모두와 함께하길 빌며, 성탄을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19년 12월 25일 성탄절에

                                               천주교 대전교구장 주교
                                               유흥식 라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