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58077
  • 글쓴이 : 박정현
  • 작성일 : 2021/05/01
  • 조회수 : 173

해미성지 세계성지 지정을축하합니다

해미성지 세계성지 지정을 축하하며 해미성지의 기초인 해미성당 소속 대곡리 공소 복원은 반드시 필요하다

 

. 시작하며

해미성지 세계성지 지정을 축하하며, 해미성지가 탄생하기까지 초석이 된 한국천주교 대전교구 해미성당 소속 대곡리 공소 출신으로 공소복원을 하여야 한다는 일념하에 공소복원을 해야 하는 이유와 필요성을 주장하고자 한다.

. 대곡리 공소가 되기까지

 

1. 대곡리 공소의 지나온 과정

 

   대곡리 공소는 한국천주교회사에서 천주교 박해를 피해 살아오던 신앙교우촌이다. 해미성지의 원조는 대곡리 공소이며 이곳으로부터 발원되었다고 과언이 아니다. ‘해미본당 30년사대곡리 공소 연혁에서는 여러 공소(한티공소, 송뜸공소, 벌뜸공소)를 거쳐 현 대곡리 공소로 발전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해미면 조산리 공소, 해미면 읍내리 공소등으로 공소가 확산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해미지역에 수많은 신자를 늘려나가기 시작한다.

   박해를 피해온 분들 중 김씨, 박씨, 황씨등이 대곡리 신앙생활에 큰 역할을 했으며, 한국천주교대전교구 해미성당 대곡리 공소의 역사를 이룩했다. 해미인터 체인지에서 약 10분 거리에 위치하고 수많은 천주교 박해자들이 넘던 한티고개를 지나면 대곡리 공소가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해미, 덕산, 홍성을 오가는 길목에 대독리 공소는 위치하고 있다. 세계성지로 지정된 해미성지를 가기 위해서는 대곡리 공소 옆을 지나가야 한다.

   해미성당이 1985년 지어지며 사용이 적었지만 1990년대까지 간헐적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앞으로 이 순례길 길목에 위치한 대곡리 공소의 복원이 필요하며, 순례객들이 지나며 기도할 곳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해미성지는 교황님까지 다녀가시는 판에 원조격인 대곡리 공소를 뉘둔 상태로 지난다는 것은 대전교구는 물론 한국천주교회의 수치라고 생각된다. 더욱이 2020년 교황님께서 한국에서는 서울 순례길에 이어 해미성지를 세계성지로 지정하시어 국내는 물론 해외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한국천주교회 대전교구 및 해미천주교회와 해미성지성당의 원만한 해결을 기대해본다.

여러 자료를 종합하면 1890년 봄 판공을 대곡리 공소의 시작으로 봄이 적당하다. 1890년 퀴클리에 신부가 양촌(陽村)에 파견되면서 송뜸공소는 1900, 한티공소는 1901년 설립되어 관리하고 있었고, 1908년 수곡성당(홍성군 구항면 공리)이 설립되어 폴리신부가 담당하고, 1909년에는 벌뜸공소가 설립되었다. 이시기(1890년대)조선에 교구도 하나요, 주교님도 한분이요, 조선에 18,000여명의 신자밖에 없던 시기이기에 대곡리 공소가 중요하다고 본다.

   현 대곡리 공소는 1941년 동네 공회당으로 설립되어, 1943년 증축하여 공소건물로 사용하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곡리공소 소속 변천과정은 1890년부터 양촌구역 관할 1908수곡성당 관할(홍성군 구항면 공리, 19081917) 서산본당 관할(금학리, 상홍리, 19171935) 동문동성당(옛 이름서산천주교회) 관할(19371984까지) 해미성당 관할(1985년부터 ~ 현재까지)

 

2. 공소복원에 대한 바람들 : 대전교구 자유게시판에 여러 차례에 걸쳐 주장한 것은 공소출신으로 복원이 필요하다고 여겨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 대전교구 자유 게시판 201458일자

 

한국천주교회의 모태이자 천주교 역사유물인 서산시 해미면 대곡리 공소

 

3. 공소건물 건립 연대 : 소화 161941년 건립 동네 공회당으로 건립. 1943년부터 공소 건물로 증축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4. 해미성지 유해가 12일로 머물다간 곳 대곡리 공소 :

   193542 해미 생매장순교자 유해를 발굴하여 대곡리에서 1박 후 42일 서산 상홍리 가재골 백씨문중 최상단에 이장 후 나중에 해미성지로 복귀하여 마지막 현재 해미성지 성당 유해실에 안치되었다. 왜 대곡리에서 해미생매장 순교자 유해가(소수만 이름이 밝혀지고 나머지 무명 순교자) 대곡리에서 1박을 했을까? 대곡리는 당시 해미지역에서 천주교신앙의 모태임을 증거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대곡리 공소는 해미성지의 디딤돌이었던 것이다.

 

5. 대곡리 공소는 팻말 하나 없다. 대곡리 공소 출신으로 보고 있기가 민망하다. 먼 훗날 외국순례자들도 이 순례길을 오고 갈 것으로 여겨져 더욱 복원이 시급하다.

 

6. ‘2017년 대전교구 공소현황조사에서는 공소는 폐지되고....’라고 기록하였다. 아쉬움도 크고 이해할 수 없다.( 몇 가지 오류별견)

 

   현재(2021.04.28.수요일) 대전교구 주보에 공소화보가 연재되어지는 것을 보며, 대곡리 공소도 나오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되며 대전 주보에 반드시 게재하여야 합니다.

 

7. 덕산방면과 홍주 옥터에서 해미 옥터로 압송되던 순교자들은 대곡리 한티고개를 넘어야 했는데, 대곡리 공소 부근을 지나야만 했다. 한티고개정상에는 14처도 모셔져 있고, 해미성지가 세계성지로 지정되어 더욱 순례길을 잘 정리 될 것으로 본다.

 

8. 복원하여 문화제로 복원하여야 한다. 이처럼 역사 깊은 대곡리 공소를 후대에 전하기 위해 복원은 물론 문화재로 지정하여야 당연하다. 부족한 점이 없다고 본다.

. 바램 : 대곡리 공소는 폐지되어야 할 이유가 없으며 반드시 복원하여 해미성지성당의 초석이 된 뿌리를 찾아야 한다. 대곡리 공소출신으로서 신앙인으로서의 전통을 유지함은 이시대의 사명이다. 대곡리 공소 천주교 역사 및 흔적을 지워버리기보다 더욱 계승·발전시켜야겠다.

2021.05.01.홍북성당 박정현 (바르톨로메오)

참고자료

해미 본당 30년사(1984-2015)/기념집, 천주교 대전교구 해미 성당, 2017.

새로운 시작, 서산 동문동 성당 100주년 기념 화보집, 천주교 대전교구 서산동문동 성당, 2009.

조현옥, 새로 쓰는 홍주천주교회사, 홍성신문, 2019.

천주교 대전교구 공소현황조사 연구 2017, 저자 : 목원대, 펴낸이 : 내포교회사연구소, 2017.

이원순, 한국천주교회사, 탐구당, 1995.

증언자, 류인협(전 대곡리 공소 출신, 2021년 현재 해미성당 신자 및 해미면 소재지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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