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56152
  • 글쓴이 : 강명수
  • 작성일 : 2019/08/19
  • 조회수 : 282

설국을 찾아서

여행이 인문학을 가미한 심층 여행으로 조류가
흐르고 있다.

따라서 비엔나로의 음악,남부 프랑스로의 미술,
영국으로의 영미문학여행서가 좋은 평판을
받고있다.

그 중에서 아르테 출판사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문학기행서에 눈길이 갔다.

개인적으로 설국,이즈의 무희 배경지를
찾아가 여행을 할 만큼,오래 전부터 이 작가의 
작품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기행기 저자는 가톨릭 신부나 수사가 
꿈이었지먄 이루지 못하고 ,현재 시인이자 
매일신문기자로 조용한
필체로  좋은 글을 소개했다.

담담한 기행문식으로 짜여진
이 책에서, 노벨상을 받고
4년이 지난후 자살을 선택한
가와바타의 죽음은 말미에  실려있다.

72년 우리나라 에서도 그의 죽음은 자살과 
사고사의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이르켰다.

 2세 3세때 부모를 여의고 이어 6세때 누나,
조모에  이어 10대때 조부까지 죽음으로
헤어진 가와바타의  성장 과정과  그에 따른
기질이 보편성이 아닌 파편적이고 기이한 특수성으로 인해, 
염세적인 한 인간의 죽음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더욱 관심을  불러이르키었다.

이 책의 저자 허연은  가와바타의 출생가,
청소년시절의 학교,
그가 들렸던 서점, 
그가 마시던 카페에서 
키피를 마시고, 그가 잤던 료칸에서 잠을 잤고,
그가 가지치기를 했을 나무 앞에서 섰고, 
몇몇작품의 전 일본의 배경지,문학관, 
가마쿠라에 있는 묘소까지 찾아 갔다.

그가 연구원으로 일본에서 
생활하며 본 일본인들은 숙명론자로 비쳐졌기에 
가와바타  죽음도,
부인 에게 말 한마디,유서 한장 없었지만, 
가스관에서 나온 이산화탄소로 인한
자살로 조심스럽게 결론 지었다.
‥‥

오후 2시30분경 복잡한 유이가하마 도로에  
서 있는 노인을 발견하고 택시기사는
그를 태우고 목적지인 즈시 마리나 리조트로 갔다.

가는 도중에 기사는 이 노인이 가와바타임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했지만,
노인은 묵묵부답으로 조용히
앉아 있었다.

오후 3시쯤 노인은 택시에서 내려 리조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 내려 4개월 전 
구입한 그 방에 들어갔다.

그것이 이승에서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

저자는 본인이 일본 문학 전문가도 아니고 
이 대문호의 연구자는 더더욱 아니라고 했다.

그도 그 작품들을 보고 
가와바타와 대화하고 싶었고 
알 수없는 인연으로 설국에
이끌려 여기까지 온것이었다.

그러기에 가와바타야스나리
의 어렴풋한 안개속을 헤쳐나가는 
이 저자의 소회가 이채롭다

그는 가와바타는 하나의 공화국이라 했다.

가와바타는 어느 유파나 집단에 마음을 다해 
가담한 적이 없었고 홀로,성을 쌓아  
그 안에 일본의 모든것,모든 상처,모든 모순을
담고 살았다.

가와바타는 무림의 고수이며 
동시에 고독자이자 실패자라 했다.

그를 알면 알수록 그의 도력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을정도로 가와바타는 
견성고승처럼 가부좌를 틀고
살아 간 것이라 했다.

아우라로 치면 일본 문학에서 가와바타를 
따라갈 자가 없을 정도였고 그러기에 
그의 작품들은 영물이었다.

분석적 시각으로만 보면 밋밋 할 수도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생로병사의
슬픈 뿌리들이 드러난다.

이 내부로 들어간 고수에게는
문학은  이야기가 아닌 사색이었고 군국과 근대화속의 일본의 현실로부터 도망쳐
아름다움과 욕망과 죽음의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거세하고 긍극적으로
찾아간  귀착지는 허무였다.

저자 허연은 가와바타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동안 
한 명의 괴팍한 수행승을 만나는 듯한 느낌에
자주 빠져들었다 했다.

가와바타는 노벨상 수상이후,
노벨상은 대단히 명예스럽지만
작가에게 명예는 오히려 짐이 되고 방해가 되어
작품을 위축 시켜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한다

만년의 그는 현실적으로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이었다.
명예,존경,추앙,위대한 존재‥
그러나 그가 그 순간 죽음을
선택할때 한 장의 유서도
없는 것은 어떤 결기와 경지를
보여준 것이었다.

극적인 그의 인생은 가족들이
너무나 일찍 사라져 버린 벌판에서, 
죽은 뼛가루 단지를 들고 서있는 소년이었다.

이런 그의 인생자체가 수행이 아니고
무엇이었겠냐고 저자는 말한다.

슬픔과 이별이 지배하던 성장기를 보낸 
가와바타야스나리는 당연히
허무와 손을 잡고 예술과 손을 잡은 것이다.

가와바타의 진정한 예술이 춤인것은
춤은 끝난 순간 사라지고,
다시 추어도 사라진 춤은 
같을 수없기에 그럴 것이다.

그의 소설도 춤같이 어떤 결론이나 주제에
도달하려는 것도 없고 계몽따위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소멸을 향해 갔고 
그의 작품들은 가뭇없는 허무를 그리었다.
어린 나이에 이미 생을 간파했으므로,모든 것은 
결국 소멸된다는  대전제에 갇혀 있었으므로
그에게 현실은 이미 무이거나
거짓과 허상일 뿐이었다.

 그의 문학은 바닥이 드러나지 않는 하나의
경전 같다고 본다.
따라서 언어만으로는 이해할 수없는 것이 많기에
하물며 번역으로 전달하기가 어려울 거라 저자는 
안타까움을 표한다.

가와바타는 설명하면서 목적지에 가닿지 않고 
생략하면서 목적에 가닿은 작가로, 독자들 우리는
여전히 그를 모른다고 했다

그의 문은 끝이 없었고
이 대문호의 문을 열면 열수록
또 다른 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따라서 여전히 그 문앞에 서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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