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55927
  • 글쓴이 : 강명수
  • 작성일 : 2019/06/08
  • 조회수 : 309

배에 실린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

4년 전 표절 논란이 있었던 작가 신경숙의  소설이
이번 창비여름호에  50페이지의
짧은 신간으로  실렸다.

인도의 설치미술가 수보드 굽타의 작품
'배에 실린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 라는
동명의 제목으로 작년 세상을 떠난 
친한 친구였던 한 시인과 생전에 메일로
나눈 대화를 엮은 내용이다.

작가는 일부 변형된 내용을 소설이라는 허구로 
존재함을 공감해준 그녀의 가족에게
감사한다는 사족을 달았다.

암으로 인한 고통으로 그냥
덩어리가 된것같은, 아주 작아져서 없어진 것
같은 느낌을 가진 그녀는 친구를
만나주지 않고 수화기로만 말한다
" 사랑하고도 너를 더 알지 못해서 미안해. 
이 고통스러운 두려움과 대면할께.내일 다시
연락할께"  이것이 작가가 나눈 그녀와의 
마지막 대화다.

ㅡ퇴락한 기다란 목선 안에 빈틈없는 온갗
잡동사니,찌그러진 냄비,주전자,솥단지.
남루한 세간살이들 모든 것을
잃고 멀리 떠나는 사람들.

우리는 강위에 떠있는 수 많은
배중의 하나에 불과하며,
강만이 아니라 너도 나도 
우리의 배에 무엇이 
실려있는지 알지 못한다.ㅡ(작중에서)

배에 실린 것을 강은 알지못한다 라는 것은
우리는 우리 자신마저 모르는
남루한 우리를 이제 사랑 해보자는 작가의 
연민이 아니겠는가 싶다.
세상 사람에 대한 연민이 그럴
것이다.
 
풍금이 있던 자리라는
토속적이며 해맑은 언어로
잘 조직된 소설을 읽은 후
이 여류 작가의 글로 오랜 세월 행복했던
기억이 새롭다.

소설가 마루야마 갠지는 소설가라는 책에서
이런 쓴 소리를 했다.
"강연이나 방송출연으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소설가라는 이유로 현장에서
실력이상의 대우를 받으며 우쭐하는 
어리석은 자들도 많다.

이들은 소설가 이상의 무엇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 서재에 틀어박한 자신이
미진하다 느끼고 작가로서의 기본적인 시선을
잃어버린다.

그러나 문학은 그들에게 죽임을 당할 만큼 한심한 
예술이 아닐거다."

그는 모든 예술이 다루는 것은
영혼의 문제이고
병자나 난민,사형수,수도자등은
원하던 원치않던 영혼과
마주할 정도로 고립무원이 되버리고
소설가도 그 범주에 들어간다고 했다.

음악과 미술은 사람들과 함께
감상할수 있지만 문학은  여러사람이 둘러앉아
책 한권을 동시에 보는 일이 없기에 문학만큼
개인으로 돌아갈 수있는 ,
즉 자신의 영혼과 마주할 수 있는 예술은 없기에
독자 역시  고독하다.
따라서 그들에게 고독을 구원할수 없다면
최소한 질서 정도는 세워주어야 하는 것이 
문학의 사명이라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서 소설을 쓰는 사람은 
고독과 마주하고 치열하게 싸우고 초월해야한다

기차는 9시에 떠나네, 엄마를 부탁해등
인간의 내면을 순수하게 그린, 이 소설가의
고향 벌판이 그녀를  다시 재활 시킬것이라
생각된다.

그녀의 재활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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