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55850
  • 글쓴이 : 김로사
  • 작성일 : 2019/05/21
  • 조회수 : 282

🕊'평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평화!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이 땅에 오시던 날,
복음 사가 루카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그때에 갑자기 그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2,13-14)라고... 
 
그리고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며,
'참 행복'에 관한 말씀에서,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마태 5,9)라고 하셨고,

복음 선포 지침으로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하신 말씀은,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루카10, 5-6)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처음 건네신 인사가 “평화가 너희와 함께!” 였다.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요한 20,19)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21)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요한 20,26)

서간을 통해서도 '평화'에 대한 말이 
수 차례 언급된다.

'평화' 
분명한 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평화는 
세상에서 말하는 평화와는 다르다는 말씀이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27)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16,33)

구약에서 평화를 의미하는 히브리어는 
'샬롬'이라고 한다. 샬롬은 이웃과 서로 간에 
마음이나 뜻을 모아 화목하게 어울리는 삶으로 
개개인 그리고 공동체가 건강하고
아무 탈이나 걱정이 없이 편안하며, 
물질적이고 영적인 번영과 풍요로움의 상태,
완전함을 '평화'라고 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헤어질 때
 '샬롬'이라고 인사한단다.
평화는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이 
조화로운 상태를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서 평화는 
기쁨 중에 하느님의 통치가 드러나는 구원이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는구나. 
'너의 하느님은 임금님이시다' 하고 
시온에게 말하는구나."(이사 52,7) 

평화를 이루기 위해 헌신하고 노력하는  일은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고 
자신이 몸담고 사는 곳에서 
당연히 이루어야 할 일이라신다. 

이처럼 성경에서 평화의 의미는, 
단순하게 세상이 말하는
국가, 사회, 가정 개개인의 인간관계에서 
전쟁이나 갈등이 없이
평온함을 의미하는 평화와는 본질이 다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어떻게 살라는 말씀일까?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태 10,34)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바르고 정의로운  칼로 
거짓된 평화를 잘라내야 한다. 
상대방의 잘못을 비난하는 칼도, 
마음에 상처 입히는 칼도 아니다.  
단호함을 요구하는 칼이고, 
비겁함과 이기심, 시기와 질투, 죄악의 근본과
두려움을 잘라내는 용기의 칼이다. 
자신의 안위와 탐욕과 집착을 끊어버리는 칼이다. 

사실 평화를 이루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평화롭기 위해서는 정의가 필요하다.
인내와 희생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하느님적인 '사랑'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과 따뜻한 돌봄, 
고통 중에 있는 이들과 함께 아파하는 것이고, 
영적 혹은 물적으로 내몰리고 
서럽고 외로운 이들에게 
섬세한 배려와 친절로 함께 하는 것이 
'평화'를 이루는 것이고
또 평화로운 사람이라는 말씀이지 않을까.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평화로운 사람이 된다는 건 온유한 사람, 
마음이 깨끗한(순수한) 사람,
자비로운 사람, 친절한 사람되는 것,
예수님께서 사셨던 삶을 살라는 말씀일 거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 된다는 건 
곧 그리스도인으로 살라는 말씀일 것이다.
그렇다면 '평화'를 이룬다는 건 
결국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이라는
말씀으로 알아들어야 할 듯 싶다. 
성경 말씀의 '평화'라는 말 대신 '사랑'이란 
말로 바꾸어 넣어도 어색함이 없으니...
 
그리고  진정 평회롭고자 한다면, 
그 평화는 반드시 주님 안에서 만이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16,33)

댓글/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