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55623
  • 글쓴이 : 김로사
  • 작성일 : 2019/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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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 '마중물'같은 이들


집에 손님이 오면 주인이 나가 마중하듯, 펌프질을 할 때 적은 양의 물을 부어서 새 물을 맞이하는데 쓰이는 물을 마중물이라고 한다. 펌프가 물을 끌어 올리는 원리는 '진공 상태'를 만들어 기압에 의해 밀어 올려지는 것인데, 그러기에 위해서 펌프 윗부분에는 물이 어느 정도 채워져 있어야 한다. 
그런데 펌프를 일정 시간 작동하지 않으면 펌프에 남아 있던 있던 물이 다 빠져 나가게 되고 진공 상태를 만들 수가 없게 되는데,  그 때 한 바가지 정도 물을 부어 펌프 윗부분을 막아 줌으로써, 펌프질을 했을 때 파이프 윗부분의 공기를 빼어 내어 진공 상태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물이 바로 '마중물'이다. 

적은 양이지만 많은 물을 길어 올리기 위해서 꼭 필요한 물처럼, 함께 더불어 사는 공동체 안에서 없어서는 안 될 마중물과도 같은 역할이 있다.

일정 시간 작동하지 않으면 펌프에 남아 있던 물이 다 빠져 나가게 되고 진공 상태를 만들 수가 없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지구의 생명 공동체 안에서 원조의 불순명으로 시작하여, 카인의 질시 그리고 부질없는 우월감과 욕망, 과시, 편협한 사고, 탐욕 등으로 선이 점차 사라지고 악으로 기울어가는 상황에서 사랑이신 하느님의 '말씀'이 이 땅에 임하시고자 '한 사람'의 협조를 필요로 하셨다.

그이는 강한 힘을 가진 이가 아니었다.
세상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가진 이도 아니었다. 
또한 많은 재물을 소유한 이도 아니었다. 
다만 하느님께 대한 올곧은 신앙과 겸손을 지닌 
순수하고 여린 여인이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라는 순명의 응답으로 이 땅에 구원의 문이 열렸고 구세사가 시작되었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닌 듯,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역할...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성모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세상 곳곳에는 주어진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마중물과도 같은 이들이 있다. 

성경에 보면, 자신들의 소유를 아낌없이 내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에 헌신하였던 여인들이 있다. 성경에 언급된 몇몇 여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도와드리며 따랐다고 한다. 마리아 막달레나, 수산나, 요안나라는 여인이다. (루카 8, 1-3) 

구세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고, 사시고, 피조물인 사람에 의해 수난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못 밖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부터 지금 이 시간까지 수많은 굴곡과 빗바람 안에서 이어지는 하느님의 교회인 우리.
이 구원의 역사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순수하게 헌신적으로 주님의 일을 묵묵히 해왔을지...
인간 내면의 본성과 본능(시새움, 드러내고 싶음, 인정 받고 싶음 등)까지도 알고 계시는 예수님 앞에 그마저도 온전히 내어 놓고 순수함과 열정과 신실함 그리고 헌신으로 십자가의 길을 따랐던 이들.
사실 구원의 역사에서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드러나는 역할과 숨은 역할'이 있다. 창조주이시고 구세주이신 주님을 신앙하는 공동체 안에서 이러한 헌신과 희생의 삶은,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이들의 순수한 믿음으로 이어져 왔고 이어져 갈 것이다.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마리아,
예수님께서 겪으신 십자가 처형과 죽음의 순간을 지킨 여인들, 
그리고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에 모시는 것을 지켜본 이들...

예수님의 수난 복음은 예수님의 죽음을 예견하고 이를 준비한 한 여인의 감동적인 이야기로 시작한다.(마태 26,6~13; 마르 14,3~9; 요한12,1~8)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 여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어떤 여자가..."라는 표현을 쓰지만, 요한은 이 여인을 라자로의 누이 동생 ‘마리아’임을 밝힌다. 이 여인이 값비싼 향유 옥합을 깨뜨린 행동은, 오직 예수님만이 믿고 따라야 할 주님이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리라. 
너나할 것 없이 사람은 누구나 일생 살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여 아낌없이 내어 놓을 만큼의 사랑하는 대상이 있다. 생명의 근원이시고 존재의 이유이신 주님께 대한 신앙을 사는 이들은 그 대상이 하느님이시다.

가난한 과부가 자신이 가진 전부였던 렙톤 두 닢을 봉헌한 것처럼, 이 여인도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따뜻한 애정이 담긴 섬김의 마음으로 자신의 소유 가운데 가장 값비싼 향유를 온전히 주님을 위해 사용하였으리라.

네 복음서를 통해서 전해 주는 예수님 수난의 시작 부분과 마지막 부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 이들... 수난 복음의 절정이자 가장 힘든 순간인,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시는 모습을 지켜본 이들은 요한 사도와 몇몇 여인들이다.(마태27,55~56; 마르 15,40~41; 루카 23,49; 요한 19,25~27)

예수님의 수난 복음은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에 비해 그들의 특별히 구체적인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는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구원의 역사 안에서 주님 수난의 절정인 골고타 언덕 십자가의 형장을 끝까지 지켰다는사실이다. 
그들은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라왔고, 
열두 제자들과 달리, 예루살렘과 골고타 언덕의 십자가 처형장까지 따랐고 죽음의 순간까지 함께 했고 그리고 무덤까지 주님을 찾아나섰다. 

복음은 예수님의 수난과 예수님께서 어떻게 십자가의 죽음을 맞이하셨는지 그리고 부활하셨는지를 증거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제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주님의 수난에 참여했는지도 보여준다. 

그로부터 이 천여 년의 시간이 지나고...
해뜨는 곳에서부터 해지는 곳까지, 
세상 곳곳에서 소리 없이 드러나지 않게
반드시 있어야 할 자리에서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구세주의 잉태의 순간과 주님의 탄생, 
사시고 수난하시고 죽음을 맞이하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기까지 
언제나 함께하셨던 성모님처럼,
갈릴래아에서부터 예루살렘과 골고타의 십자가 처형장까지 한결같이 따라왔던 그들처럼, 
예수님의 가르침이며 성경의 골자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살아보려 무진 애를 쓰며 살았던 성인들...
그리고 목숨까지 바쳐 주님을 사랑하고 따랐던 수많은 순교 성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기 역할에 충실하며 드러내지 않고 일하는 이들. 교회의 맨 밑자락에서 사랑이신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살려는 '마중물'같은 이들이 있어 그래도 세상은 메마르지 않고 이 땅에 하느님의 구원 역사는 계속되어 갈 수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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