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03-03 00:00:00

2004년 성탄 메시지

아기 예수님의 사랑이 모든 이에게 가득히 내리시길 빕니다!

 

1.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님의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새로이 오시는 아기 예수님의 사랑이 모든 이에게 풍성하게 내리시길 기도드립니다. 우리는 대림절 기간 동안 이천여 년 전에 이 세상에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오시어 우리의 구세주가 되어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을 기억하고 감사드리며, 오늘도 우리 가운데 계시는 그분의 뜻을 알아들으려고 마음을 모아 기도드렸습니다.

 

2.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시는 강생의 신비는 무엇보다 먼저 가난의 신비입니다.

 

사도 바울로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필립 2,6-7) 그렇습니다.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자 하느님의 아들의 자리를 기꺼이 내어 놓으시고 사람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완전히 가난해지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은 이 때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난으로 구원의 은총이 내려졌다면, 우리는 그분처럼 가난하게 삶으로써 실제로 그 은총을 입게 됩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의 어렵고 각박한 현실이 몸에 와 닿습니다. IMF 사태 이후 지속되는 장기적인 경제침체로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고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국제 유가의 폭등, 자유무역의 압박 등 국제적인 여건도 이러한 우리의 어려운 상황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현실적인 여건이 어려울 때 거기에서 쉽게 벗어나려는 유혹이 따르기 마련이고 그로 인해 윤리적인 해이가 동반되기 쉽습니다. 벌써 그런 징조들이 우리 사회 안에 많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특히 우리의 미래인 젊은이들이 그런 유혹에 흔들리는 모습은 더욱 안타깝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 인내와 이웃을 위한 배려가 더 필요합니다. 비록 고통 중에 있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자신과 이웃에게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의로움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를 위해 스스로 가난해지신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며 반드시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내를 위해 기도드립니다. 한편 우리 가운데에는 성실한 노력과 여러 가지 기회를 잘 활용한 덕으로 삶의 여유를 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의 어려운 이웃에 대한 배려가 절실한 때입니다. 우리 사회가 국민소득에 비해 소비수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모두가 어려워하는 이 때에 자칫 이웃의 고통을 가중시킬 수 있는 지나친 소비를 절제하는 것은 물론,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참으로 부유한 분이셨지만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셨습니다. 우리가 이웃과 나눌 수 있다면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지금 누리는 풍요로움을 더 크게 해 주실 것입니다.

 

3.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시는 강생의 신비는 일치와 친교의 신비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뜻을 좇아 하느님과 떨어져 죄와 죽음의 길을 걷게 되었을 때, 하느님은 인간에게 가장 먼저 가까이 다가오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우리와 똑같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는 하느님과 인간이 완전한 일치를 이루는 이 강생의 신비에서 결정적으로 시작되었고 이 일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주변에서 분열을 일으키고 갈라지는 일을 너무 많이 겪고 있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테러와 보복, 관행처럼 계속되는 당리당략의 소모적인 싸움, 보다 많은 것을 누리기 위해 건전한 경쟁의 원칙이나 타협의 정신이 무시되는 일을 지속적으로 대하게 됩니다. 평생 사랑을 약속한 부부가 갈라서는 일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실망하지 않습니다. 인간과의 일치와 친교를 통해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닮게 창조된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에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일치와 친교가 각인되어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먼저 시작합시다. 자신의 이익을 쫓아 갈라서는 것보다 상대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으며 공동의 선(善)을 모색하면, 더 많은 은총을 체험하게 삶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나아가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처럼 우리도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기 위해서 그분이 우리와 똑같이 되셨음을 기억하면서, 참된 일치와 친교는 먼저 이웃의 처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있음을 우리 스스로 체험하고 세상에 증거해야 합니다.

 

4.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시는 강생의 신비는 또한 말씀의 신비입니다.

 

태초부터 계셨고 하느님과 같으신 말씀이 이 세상에 구세주로 오신 것입니다. 그 말씀은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고 마귀를 쫓으며 죄인과 병자를 용서하고 치유하셨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가시는 곳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쓰는 말은 하느님의 말씀과는 많이 다릅니다. 이웃을 쉽게 단죄하고, 친교를 이루는 데에 기여하기보다는 편을 가르는 말이 더 자주 들립니다.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분들에게서 이런 말들을 들을 때에는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더욱이 근래 인터넷을 통한 익명의 언어 가운데에는 상대를 극단적으로 몰아세우는 말들이 아무런 책임감 없이 행해지기도 합니다.


주님의 은총 안에 사는 그리스도인의 말은 하느님의 말씀을 닮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듯 우리의 말은 공동체를 건설하는 데에 쓰여야 하고, 말씀이 사람을 위로하고 치유하시듯 우리의 말 또한 이웃의 힘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웃에게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이고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5.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제 시작되는 겨울의 찬바람 속에 주님의 성탄을 맞이하는 것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뜻으로 다가옵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 8,12)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작정 남보다 앞서가려는 욕심이나 위기를 쉽게 벗어버리려는 세속적인 지혜는 결코 우리에게 좋은 미래를 주지 않습니다. 부요하시지만 가난하게 사셨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완전한 일치와 친교 안에서 뜻을 이루시고, 고통 중에 있는 이들에게 당신의 말씀으로 위로와 희망을 주신 주님께서 걸으신 길이 바로 우리의 길입니다. 우리는 이 길 위에서 진정으로 삶의 기쁨과 풍요로움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복음을 따라 살아갑시다. 그분은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우리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의 빛 안에 머무르려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님께서 친히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통해 이 세상에 오신 주 그리스도께서 오늘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삶 속에 밝은 빛으로 오시기를 기도드립니다.

 

2004년 성탄절에

천주교 대전교구 부교구장 유 흥 식 라자로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