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03-03 00:00:00

2004년 부활 메시지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기쁨과 희망을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겨우내 죽은 듯이 보였던 대자연이 새로운 생명을 움틔우고 있는 새봄에 우리는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부활 대축일을 맞이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총과 사랑, 평화와 기쁨, 그리고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새로운 결심이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흘러넘치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우리 지역에 살고 있는 각계각층의 모든 사람들, 특히 가난하고 소외당하며 고통 받는 이들과 지난번 폭설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힘과 용기와 희망을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1. 부활하신 분의 얼굴


  오늘 이 영광스러운 부활이 있기까지 우리는 성 목요일에 피땀을 흘리시며 고뇌하시는 예수님을, 성금요일에는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태 27,46)라고 울부짖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바라보는 것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의 모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의 얼굴입니다. 교회는 죽음을 이기고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셔서 당신 외아들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게 하셨고,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써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에페 2,4-5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전하는 것도 헛된 것이며 우리의 믿음도 헛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I고린 15,14 참조).


예수님께서 병사들의 손에 이끌려 가시며 고통을 받으시는 동안에 스승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한 베드로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요한 21,15-17 참조)라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리스도께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며 새롭게 출발한 베드로의 발자취를 따라 교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교회는 또한,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주님을 만나 빛을 받았던 바오로와 함께,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봅니다(⌜새 천년기⌟ 28항 참조). 죄에 물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시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그분께서는 우리의 허물을 씻어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주십니다.

 

2. 혼미한 세태를 바라보며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는 물질만능과 이기주의가 크게 활개를 치면서 내 편이 아니면 적이요, 나만 잘 되면 그만 이라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4·15총선거를 앞두고 국회에서 발의한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의결되면서 빚어지는 여러 계층간의 갈등과 반목은, 어느 편에서 보든 볼썽사나운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고,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으며, 자신의 가치관이라는 잣대로 심판하고 싶은 충동을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더불어 살기 위하여 긴요하게 필요한 것은 지혜 곧, 함께 더불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지혜를 찾아야 합니다.


물론 사안이 중대한 만큼 국회는 감정에 흔들리기보다 좀더 신중히 이 문제를 다루었어야 했고, 대통령 역시 국민의 뜻을 살피면서 국민의 대의기관에 대한 겸허한 자세를 보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따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지금, ‘바로 이 순간’입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며, 현재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처신하는가에 따라서 미래가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한 집안 식구들 중에도 의견이 대립되고 편이 갈라질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가족이 아니라며 식구를 배척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내 말을 듣지 않는다고 내 아들, 내 친구가 아니라고 할 수 없듯이, 나와 뜻이 맞지 않다고 해서 내 아버지가 아니고 내 이웃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개성이나 살아온 환경이 서로 다른 사람끼리 만나고 모여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배척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인정하고, 그가 하는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진리와 오류는 분명히 가려야 하며, 우리는 마땅히 진리를 쫓아서 바른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3. 공동선과 총선거


  공동체의 삶을 위해서 교회는 ‘공동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마다 자기 의견만 고집하여 정치공동체가 붕괴되지 않으려면, 권력이 필요하다. 그 권력은 기계적으로나 독재로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유와 의무의 수용, 그리고 책임 의식이 뿌리박은 도덕적인 힘으로 온 국민의 힘을 공동선으로 이끌어가야 한다.”(⌜사목헌장⌟ 74항)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입니다.


공동선은 “개인과 가정과 단체가 더 충만하게 더욱 쉽게 자기완성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생활 조건의 총체”를 말합니다. “정치공동체는 공동선을 위하여 존재하고, 공동선 안에서 완전한 자기 정당화와 의미를 얻고, 공동선에서 본래의 고유한 권리를 이끌어냅니다.”(⌜사목헌장⌟ 74항)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의 복음화를 위하여,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국가의 정치생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이번 총선거에서는 정당과 후보자에 대한 투표를 각각 실시하게 되므로 정당과 후보자가 공동선의 실현에 얼마나 이바지해 왔는지, 특별히 그 정책이 교회의 가르침에 부합하는지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투표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사회와 정치 분야도 쇄신하기를 바라십니다.

 

4.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하고 인사하셨습니다.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은 삶의 변화를 보이면서, 미움과 불의를 조장하는 악의 세력에 무릎을 꿇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엄청난 용기를 갖게 됐습니다. 부활의 증인이 된 제자들은 믿음 안에서 나눔과 섬김의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면서 “그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사도 4,34). 제자들은 이제 주님의 일꾼인 사도가 되어 자신들의 목숨을 내어주면서까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온 세상에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파해 나갔습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도 주님의 부활을 증언하면서 각자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생명, 그리고 평화를 나누어주는 사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다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셨습니다.”(에페 2,14).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적인 폭력과 불의를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겨내는 길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물론 평화에 이르는 첫 번째 길은 “법”이며, 사람들에게 그 법을 존중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정의를 완성해주지 않으면 우리는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가 없습니다. “정의와 사랑은 때때로 반대세력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 둘은 동일한 실재의 양면일 뿐이며, 서로 통합되어야 하는 인간 삶의 두 차원입니다”(요한 바오로 2세, 2004년도 평화의 날 메시지 10항).


폭력으로 얼룩진 현실 앞에서도 우리는 사랑을 통해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를 건설하면서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실 수 있게 해드리고,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을 선택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영혼과 생각의 눈을 열어주시며, 이 세상에서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실 것입니다.

 

5. 친교의 교회를 위하여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내 계명”이고 “새 계명”이라고 하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라고 하신 이 말씀을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바로 “새 계명”을 사는 것이 교황님께서 “교회를 친교의 원천이며 친교의 학교로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새 천년기에 우리가 당면한 큰 과제”(⌜새 천년기⌟ 43항)라고 말씀하신 친교의 교회를 이룩하는 지름길입니다.


올해 우리 교구가 정한 사목 지표인 “복음적인 가정 교회의 해”도 가족 구성원 서로간의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제단의 봉사자나 봉헌생활자, 평신도 할 것 없이 모두가 이웃 형제 자매들의 얼굴에서 빛나는 삼위일체의 빛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안에 머무르시는 삼위일체의 신비에 대한 마음의 관상을 통해서 “이웃의 형제가 곧 나의 일부”(⌜새 천년기⌟ 43항)라는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는 서로 사랑하면서 친교의 교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깨어있도록 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가 즉시 예수님 얼굴을 알아보고 “우리는 주님을 뵈었다.”(요한 20,25)라고 하는 기쁜 소식을 가지고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형제 자매들에게로 달려가서 그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줄 수 있도록 부활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합시다(⌜새 천년기⌟ 59항).

 

2004년 4월 11일 예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대전교구 부교구장
주교 유 흥 식 라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