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12-31 00:00:00

2020년 주님 성탄 대축일 메시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

   사랑하는 대전교구 하느님 백성 여러분,
   주님의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초라하고 어두운 마구간 안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의 빛이 온 세상을 비추는 희망이 되었습니다. 그 희망의 빛이 여러분 모두에게 위로와 평화,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 성탄 때 울려 퍼졌던 천사들의 찬미처럼 진정한 평화는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이와 함께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어떤 성탄을 보내고 싶은가?”라는 질문보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어떤 성탄을 보내기를 원하실까?”라는 질문과 함께 성탄을 맞이합시다.

   루카 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살펴보면 주인공인 예수님은 이야기 전개의 배경에 있고 중심에는 목자들이 있습니다. 이 목자들은 들에 살며 밤에도 양 떼를 지켜야 하는 힘겹고 가난한 삶을 사는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 하느님의 천사는 이렇게 전합니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루카 2,11). 이는 성탄에 있어 그 중심의 자리에 가난한 이들이 있음을 시사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에게 해준 것이 곧 당신에게 해준 것이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셨습니다(마태 25,31-46 참조). 그뿐만 아니라 당신 자신도 가난한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니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가 우리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야말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성탄의 모습일 것입니다.

   올해 초에 시작된 코로나19로 많은 이가 고통을 겪었고, 지금도 그 고통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재난이 왔을 때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이들은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사회복지 단체를 찾는 봉사의 발걸음이 줄어들고 무료급식소의 운영이 여러 곳에서 중단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기도 합니다. 코로나19의 전염을 막는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점점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고, 거리 두기를 핑계로 서로의 대화와 협력 또한 줄어들고 있습니다. 부유한 국가들이 곧 생산할 것으로 예상되는 백신의 대부분 물량을 이미 차지해 두었고 정치지도자들은 이를 자신의 공적으로 내세우기도 합니다. 이처럼 코로나19라는 폭풍은 그동안 겉모습에만 연연하며 병든 자아는 감추는 데 급급했던 우리의 온갖 거짓된 허울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냄과 동시에 무너뜨리고 있습니다(『모든 형제들』 32항 참고).
   이제 우리는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가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반드시 변화해야 하고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 것인지 엄중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직면했던 하느님의 똑같은 말씀 앞에 서 있는 우리입니다.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내놓았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신명 30,19).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코로나19를 예방하고, 또 치료하는 백신만 개발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코로나19를 통해 드러난 우리 삶의 병폐들을 치료해 줄 새로운 차원의 치료제가 필요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사회 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을 통하여 코로나19를 이겨내고 교회가 새롭게 나아갈 모습과 인류가 더불어 사는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코로나19는 우리 모두 같은 배를 탄 공동체이므로, 혼자가 아니라 함께할 때 비로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모든 형제들』 32항 참조). 『모든 형제들』 67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오직 착한 사마리아인을 닮는 길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강도를 만나 초주검의 상태로 길에 쓰러져 있는 이가 어느 민족이고, 어떤 종교를 믿고, 어떤 신분인지를 묻지 않고 그에게 다가가 이웃이 되어주었습니다(루카 10,29-37 참고). 이처럼 “우리를 고립시키고 분열시키는 사슬들을 끊고 그곳에 다리를 건설하는 사랑”(『모든 형제들』 62항)이야말로 코로나19의 극복을 위한 진정한 치료제인 형제애입니다.
   특별히 이 형제애는 가난한 이를 우선적으로 선택하며, 되돌려 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조건 없이 내어주는 사랑입니다(『모든 형제들』 140항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말씀하시듯이 “우리 시대의 사람들, 특별히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괴로움은, 곧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의 기쁨과 희망이요 슬픔과 괴로움이기 때문입니다”(『모든 형제들』 56항).

   우리는 지난 대림 제1주일부터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을 살고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쇄국정책과 엄격한 신분질서 하에 있던 조선 시대에 보편적 인류애와 만민평등 사상 그리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애덕을 전파하신 분이십니다. 유네스코는 이런 면을 높이 평가하여 김대건 신부님을 “2021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하였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세상이 점점 단절되고 이기주의와 차별이 심해져 가는 위기의 시대에 맞은 ‘성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은 우리에게 큰 은총과 함께 중대한 사명을 전해줍니다. 오늘날의 세상이 간절히 필요로 하는 김대건 신부님의 정신을 우리의 삶으로 실천하고 전하는 것이 바로 그 사명입니다. 이 중요한 사명을 실행에 옮기기 위하여 국경을 넘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과 가난한 이들을 돕고, 북녘과 세계의 형제들에게 코로나19를 치료하는 백신을 보내는 운동”을 희년 기간 실시하고자 합니다. 이 운동에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희년의 은총을 가난한 이들에 대한 애덕의 실천으로 나누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이며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은총이요 행복입니다.

   많은 이들이 선물을 받는 성탄으로 여기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성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기 예수님처럼 세상에 우리 자신을 선물로 내어주는 일에 주저하지 맙시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사도 20,35)라는 말씀을 살면서 더 행복한 사람이 됩시다. 당신의 소중한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구원자로 기꺼이 내어놓으신 성모님께서 우리를 안내하시고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 모두에게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드리며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모습으로 평화 가득한 성탄 보내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20년 12월 25일 성탄절에
천주교대전교구장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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