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03-28 02:4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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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 2005년 제22회 자선 주일 담화문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1. 여기저기서 살기 어렵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조금만 주위를 돌아보면 삶의 고단함에 지쳐 보살핌이 필요한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계층간의 경제적, 정서적인 격차를 점점 악화시키는 자본주의의 냉엄한 현실은 여전히 우리를 무한경쟁의 구조 안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거대한 흐름에서 각자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극단적으로 반응하는 모습도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선사받은 선한 모습을 가리는 개인적이고 구조적인 악 앞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랑과 빛으로 오실 구세주 예수님을 애타게 기다립니다.

 

2. 우리 시대의 특징을 표현하는 하나의 말이 호모 콘수무스’(Homo Consumus), 소비하는 인간입니다. 일상화된 소비의 삶은 개인과 가정의 사회성을 형성하며 유지하고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게 하는 긍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반면, 소비주의, 쾌락주의와 물질주의로 물든 소비문화는 우리를 병들게도 합니다. 거리의 진열대마다 가득 쌓인 물건들,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광고나 홈쇼핑 채널은 더 편리하고 새로운 제품을, 더 많이 가지라고 유혹합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팽배해 있는 소비주의의 희생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과도한 소비를 통하여 자신의 존재의미를 확인하는 병적인 현상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 공동체는 소비문화를 복음화 하는 일에 깨어있는 의식으로 적극 대처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필요한 부분에서 필요한 만큼의 소비는 하되, 창조세계와 이웃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과소비를 삼가는 청지기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느님만이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워주시고, 참 행복과 기쁨, 자유를 주심을 알기에 물질에 너무 얽매이는 부자유한 상태에서 벗어나야만 합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3.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 18,10). 우리 공동체와 신앙의 근본 가치들을 무력화시키는 경제제일주의에서 파생된 소비주의에 물든 우리에게 던지는 예수님의 실천적 메시지입니다. 좋으신 하느님께서는 모든 창조물이 조화롭고 행복하게 공존하길 바라십니다.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길 바라십니다. 아시다시피, 그것은 서로 나눌 때만 가능합니다. 얼마나 소유했느냐가 나눌 수 있는 척도가 아니라, 나눔은 모두가 할 수 있고 모두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배려를 받고 계신 당신은 이웃을 위해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 작은 이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하고 계신 것이 있습니까? 작은 이들은 주위에 언제나,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고통 중에 있는 사람, 아픈 사람, 감옥에 갇힌 사람, 무시당하는 사람, 사고를 당한 사람, 실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 외국에서 돈 벌러 와서 차별받는 사람, 삶의 희망과 의욕을 잃은 사람, 부모에게 버림받은 어린이, 노약자 등등 다양한 모습의 작은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조그만 사랑과 관심만 있다면 어려움에 처한 이들도 세상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특히, 오늘 자선주일에 우리들의 사랑과 정성이 모아지면 교회 공동체가 좀 더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어렵고 소외된 이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대림시기가 가난하고 힘없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시기임을 상기하면서, “음식, 의복, 주택, 의료, 직업, 교육 등 참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 없고, 재난이나 질병으로 고통을 받으며, 추방을 당하고 옥고를 겪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그들을 찾아내어 열성적으로 보살피고 위로하며 도와 고통을 덜어 주어야 한다.”(평신도 교령 8) 라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선언도 나눔의 정신을 살도록 그리스도인들에게 전인적인 투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교회 공동체가 공동선 증진과 이웃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정성어린 나눔을 부탁드립니다.

이웃의 아픔을 함께하는 일은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될 때 하느님께서 훨씬 더 기뻐하실 것입니다. 가까운 곳에 있을 사회복지 기관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시길 당부합니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는 말씀대로 가톨릭교회가 나눔의 선행을 통해 세상과 만나고 세상에 희망의 씨앗을 심는 주님의 도구가 됩시다. 사랑과 빛으로 오실 구세주를 기다리며 말입니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 5,7).

 

 

 

 

 

20051211

 

한국 카리타스(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유 흥 식 라자로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