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50078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6/01/20
  • 조회수 : 584

교회의 자선 활동에 종사하는 이들을 위한 영성 피정의 날 자료

자선활동종사자영성피정의날자료.hwp 2.09 MB

교황청 사회복지평의회

자비의 희년-2016년 사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Caritas Christi urget nos)

교회의 자선 활동에 종사하는 이들을 위한
교황청 사회복지평의회 주관
영성 피정의 날

희년은 하느님 아버지를 만나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더욱 잘 섬기는 기회가 됩니다. 하느님 자비를 만나는 것은 자비의 육체적 영적 활동의 정신으로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자비롭게 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우리에게 거듭 경고하신, 교회 안의 영적 세속화에 맞서 싸우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세계 차원에서 교회의 자선 활동을 이끄는 교황청 사회복지평의회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Caritas Christi urget nos)를 주제로 한 영성 피정의 날을 마련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는 교회의 다양한 자선 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이가 우리의 봉사 지역에서도 희년의 은총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피정의 날은 가능하다면 지역에서 각 단체별로 거행되어야 합니다. 교황 성하께서는 이 희년이 특히 지역에서 거행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모든 교회를 위한 특정 날짜를 지정하지 않고 각 자선 기구, 단체, 기관이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거행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 날을 준비하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아래에 기본적인 제안을 하였으니, 본질적으로 주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촉진하는 전례 거행의 형태를 지닌 이 제안을 수정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는 지역별로 지정된 희년의 성문(聖門) 통과 예식에 포함하여 거행될 수도 있습니다.

이 날은 개인적 고해성사가 있는 참회 예식, 단체 나눔의 시간, 성찬례로 이루어집니다.

참회 예식을 위한 순서는 시작, 시편 화답송이 있는 독서와 복음 봉독, 고해성사 준비를 위한 교리 교육, 고해성사로 이어집니다. 이 고해성사는 우리 신앙 여정의 공동체적 차원을 보여주는 미사 거행 안에서 더욱 잘 이루어집니다.

단체 나눔의 시간을 위해서, 개인의 활동과 타인의 경험을 통하여, 봉사 실천 방법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데에 필요한 몇 가지 질문들을 마련하였습니다.

성찬례 거행을 위해서, [『로마 미사 경본』의 ‘여러 상황이나 필요에 따라 드리는 기원 미사와 기도’ 가운데] ‘사랑의 실천’을 교구장 주교의 재량에 따라 수정하여 평일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례 규범에 따라, 주일과 축일과 성주간의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이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Institutio Generalis Missali Romani], 374항 참조). 그 대신에 전례 시기의 정신을 보존하기 위하여 사순 시기의 독서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 제안 자료에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자비의 희년에 바치는 기도, 그리고 자비의 영적 육체적 활동의 목록도 나와 있습니다. 이는 이 피정의 날에 힘을 보태어 줄 것입니다.

또한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과 자비의 활동에 관한 포스터도 제공됩니다. 이는 각 지역의 언어와 목적에 맞게 수정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정보를 얻고자 하면, 교황청 사회복지평의회로 직접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corunum@corunum.va; cath-aid@corunum.va).      

 

 

 

피정 지도 자료



                                                             ⓒ 바티칸 도서관


피정의 날 소개

교회의 자선 활동 기관들은 자비의 성년 거행과 특별한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의 자선 활동은 자비를 구체적, 육체적, 직접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자비로 인간을 구하시고 사랑하시며 섬기시고, 역사 안에서도 우리 인간과 그 활동을 통하여 현존하십니다.

우리에게 끊임없이 주어지는, 사랑받고 사랑하는 은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우리의 마음의 잣대로 재지 않도록 그 은사에 대하여 성찰할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은총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보다 크십니다”(1요한 3,20). 하느님 은총은 우리 안에서 작용하여, 마음이 더 커지고 강해지며 살에서 나온 살이 되도록 합니다. 곧 마음은 구체적 행위, 일상의 선물, 날마다 우리를 먹여주고 또한 우리가 건네주는 양식이 됩니다.

희년은 땅을 위한 안식의 해, 곧 안식년이었습니다(레위 25,4 참조).

희년의 시기에 땅이 쉬는 것은 다음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 희년은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하는 것과 삼갈 수 있는 것을 식별하는 기회입니다. 우리는 너무 흔히 모든 것을 똑같이 중요하게 여기며, 좋기는 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것을 얻으려고 애씁니다.

- 그리고 두려움이나 걱정 없이, 또는 늘 화내지 않고 시간에 쫓기지도 않으면서 성실하게 수행한 하느님 나라를 위한 우리의 노력을 기꺼이 하느님께 맡겨 드려야 합니다.

기도하며 주님을 만나는 이 시기에 우리의 마음이 조금 쉬면서 우리의 노력에 맡겨진 이 땅을 주님의 자비와 사랑과 은총에 비추어 재음미할 수 있도록 합시다.  

농부는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결국] 곡식을 자라게 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라는 것을 압니다(1코린 3,6 이하 참조). 이렇게 믿음으로 자신을 내어 맡기는 태도는, 자비의 은사가 우리의 봉사를 앞서서 이끌어 나아간다는 사실을 선포하고 증언하는 것이 됩니다.

희년은 결코 지치지 않는 자비를 기념합니다. 자비는 언제나 자신을 드러내는 새로운 길과 표징을 찾으며, 자비가 필요 없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찾아 나섭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종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존엄을 상실한 이들에게 존엄을 되찾아 주시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도와주시며, 우리가 상심하고 완고해진 마음을 사랑하고 치유할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우리가 이 기회에 새롭게 하고자 하는, 주님 자비에 대한 기억은 우리 마음에 생기를 불어 넣어 줍니다. 사실, 이는 우리를 포함한 인간들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늘 바라보시며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또한 우리의 밭이 황폐해졌어도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그 밭에서 좋은 곡식이 자라나도록 하시고, 또한 이를 간절히 바라신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도 자비로워지도록 해줍니다.

우리는 종종 인간관계에 냉혹하고, 엄격하게 판단하며 희망 없는 평가를 합니다. 때로 우리는 노골적이거나 마음에 숨겨진 분노를 지니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그토록 자주 내세우는 평화와 용서의 메시지에 어울리지 않는 모순입니다.

희년은 우리의 내면에 어느 정도 감추어진 적대감에서 벗어나 평화를 느끼기 위하여 잠잠하고 깊은 내적 일치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우리가 겪었다고 여기는 그 어떤 실망, 시기, 좌절, 불의보다도 더 크신 사랑의 깊은 사랑을 받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평안하고 넓어집니다. 사랑과 용서를 받아들이면 우리 마음이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너그러워져서 평안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활동하려는 노력을 하되 주인공을 자처하지 않을 때에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인공으로] 활동하시도록 하여, 당신께서 우리보다 먼저, 때로는 우리 없이도 이룩하시는 것을 식별, 인식, 성찰하는 일을 더 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봉사를 더욱 열심히 하는 방법을 알고자 하면서도, 우리의 활동이, 사랑과 매우 커다란 활동의 작고 보잘것없는 표징임을 좀 더 분명하게 깨닫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 커다란 활동은 매우 커다란 사랑의 현존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며 수많은 사람들과 민족들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 피정과 기도의 시간이 우리 마음과 정신에서 인색, 분노의 잔재, 복수심, 분열을 몰아내는 데에 도움이 되는 은총을 간청합니다. 또한 우리가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봉사할 때에, 성령께서 크고 작은 일들, 우리의 이웃, 특히 가장 작은 이들, 우리를 감싸는 소박하고 대중적이며 조용한 거룩함 안에서 활동하시는 것을 알아 볼 수 있는 능력이 더욱 자라나게 되기를 간청합니다.

I. 참회 예식

독서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5,14-21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한 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고 그리하여 결국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우리가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살아 있는 이들이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아무도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였을지라도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이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기신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면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빕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화답송]

시편 103(102)

◎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네.

○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

○ 네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네 모든 아픔을 없애시는 분.
    네 목숨을 구렁에서 구해 내시고
    자애와 자비의 관을 씌우시는 분.
    네 한평생 복으로 채워 주시니
    네 젊음 독수리처럼 새로워지는구나. ◎

○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며
    분노에는 더디시나 자애는 넘치시네.
    끝까지 캐묻지 않으시고
    끝끝내 화를 품지 않으시네.
    우리를 죄대로 다루지 않으시고
    우리의 잘못대로 갚지 않으시네. ◎

○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은 것처럼
    당신을 경외하는 이에게 자애가 넘치시네.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가 먼 것처럼
    우리의 허물들을 멀리 치우시네.
    아버지가 자식을 가여워하듯
    주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 가여워하시네. ◎

복음

마태오가 전하는 거룩한 복음입니다. 25,31-46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묵상 제안

바오로 성인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처럼 자선 활동뿐만 아니라 우리 삶 전체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생겨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더 이상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분을 위하여 살도록 돌아가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대로 자비는 다른 이들을 살리기 위한 선물과 자기 봉헌으로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는 바로 계속 생명을 낳는 이러한 무한한 자기 헌신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느님을 “사랑”(1요한 4,8)이라고 확언하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하느님 자비를 표현하는 데에 두 개의 히브리어 단어가 사용됩니다. 먼저 헤세드(hesed)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는 곧 신의와 결합된 온유함입니다. 이 온유함은 하느님께서 작용하시는 사건들, 좀 더 구체적으로 하느님께서 역사를 일으키시고 이끄신 일들, 창조와 해방, 그리고 섭리로 당신을 드러내신 일들 안에서 나타납니다(시편 136[135], 1.5-7.10-12.25-26 참조).

다른 단어로는 동사인 라함(raham)이 있습니다. 이는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장기, 곧 모태에 해당되는 레헴(rehem)에서 온 것입니다(탈출 34,19 참조). 이 단어는 인간의 육신과 생명이 서로 결합되는 모태와 하느님의 [창조] 활동을 연결시킵니다. 이러한 점에서 자비는 재생 활동, 곧 재창조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자비를 실천하면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다시 태어나는 은총을 얻게 됩니다. 바오로가 선포한 것처럼 옛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주어지고 받아들이는 자비는 옛것을 그대로 두지 않고 모든 것을 새롭게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것을 하느님과 우리의 새로운 관계, 곧 ‘화해’라고 말합니다. 주님과 함께 하면 우리 삶 안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성년의 은총은 하느님의 자비로운 활동으로 이루어지는 화해의 새로움이 가능한 데에 있습니다. 이러한 화해는 우리 삶의 내외적인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칩니다. 곧 우리 가족, 공동체, 육체와 정신이 가난한 이들, 불의를 당하는 (그래서 용서해야 하는) 이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그래서 용서를 청해야 하는) 이들, 일상에서 우리가 이웃이 되어주는 이들과의 구체적인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내적 생활이 자기 자신의 이해와 관심에만 갇혀 있을 때, 더 이상 다른 이들을 위한 자리가 없어 가난한 이들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고 그분 사랑의 고요한 기쁨을 느끼지 못하며 선행을 하고자 하는 열정도 식어 버립니다. 이는 신앙인들에게도 매우 현실적인 위험입니다. 많은 이가 이러한 위험에 빠져 삶을 잃어버리고 불만과 분노에 가득 찬 사람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이는 품위 있고 충만한 삶을 위한 선택이 아니고, 우리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도 아니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마음에서 솟아오르는 성령 안에서 사는 삶도 아닙니다”(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 2항). 

자비를 아름답고 숭고하지만 결국 막연하고 내적인 감정으로 축소시키는 위험에 맞서 우리는 자신을 참된 자비로 바꾸어 끊임없이 생명을 만들거나 재창조하라는 권유를 받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무에서 창조하신 행위는 예수님께서 복음에서 나열하신 자비의 활동들에 반영되고 어느 모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환대나 내적 연민 이상의 것으로, 무엇보다도 우리 마음을 양성하는 일과 관련됩니다. 이렇게 하여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가여운 마음이 드시어 하신 일을 우리가 실천하게 됩니다(마태 9,36 이하.14,14;15,32;마르 1,41;루카 7,13 이하 참조).

그래서 우리는 이 성년을 그리스도와 화해하는 기회로 삼아 다시 한 번 우리 삶에 그분께 자리를 내어 드리고, 그분 자비의 은총을 간청하며, 그 자비가 새로움의 원천으로 작용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부활로 과거에 속하신 분이 아니라 [현 시대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구체적인 인성으로 지금 여기에 현존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몸소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처럼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마태 25,40.45) 안에서 그 인성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 표현은 무엇보다도 당신의 신비스러운 몸인 교회를 가리키지만, 또한 가난한 이들, 곤궁한 이들, 좀 더 일반적으로는 우리가 이웃이 되어주는 이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누구의 이웃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습니까?

올해 사순 시기 담화에서 교황님께서는 [자비의 특별 희년 선포] 칙서 「자비의 얼굴」(Misericordiae Vultus)을 인용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자비의 활동은 “우리의 이웃을 육체적 영적으로 도와주고자 하는 일상의 구체적 활동으로 신앙이 드러나는 것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다시 말해서 이웃에게 먹을 것을 주고, 찾아가 주며, 위로해 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의 몸이 가난한 이들 안에 있기에, ‘고문당한 이들, 상처 입은 이들, 채찍질 당한 이들, 굶주리는 이들과 난민들의 몸에서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몸을 우리가 알아보고 만지며 정성껏 돌보아야 합니다’(「자비의 얼굴」, 15항)”(프란치스코, 2016년 사순 시기 교황 담화, 3항). 사랑으로 활동할 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하느님의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7-8). “선한 것을 창조하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생명,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생명에 참여하는 특권까지 주시는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자기를 내주고 싶어 하는 까닭입니다”(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자비로우신 하느님」[Dives in Misericordia], 7항). 그러므로 자비의 활동에 관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글인 마태오 복음의 구절은 우리 양심 성찰과 회개의 확실한 기준이 됩니다. [그 기준은 바로] ‘우리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 우리 형제자매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알아 뵙고서 사랑하는가?’입니다.

우리가 수행하는 자비의 영적 육체적 활동이 그 활동에 힘이 되는 희망의 차원, 그리고 그 활동을 이끌어가는 확고한 믿음을 분명히 드러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자비의 활동들의 근원적인 틀은 삼위일체의 사랑 안에 있고, 그 원천과 모범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헌신 안에 있습니다.

이러한 이해가 없다면 자비의 활동은 그저 불확실한 길만을 촉진하고, 우리 자신을 열어 새로운 피조물로 변하는 은사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며, 예언의 감각이 없는 찰나적인 위로만이 될 뿐입니다.

II. 단체 나눔의 시간 

소집단 모임을 위한 질문     

1.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물리치고 자비를 얻고 실천할 수 있게 해주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죽음의 신비에 우리가 늘 새롭게 초점을 맞추도록 어떻게 서로 도울 수 있습니까?

2.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알아보는 사랑의 기준에 맞추어 회개하는 데에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떠한 두려움들이 우리의 은사를 방해합니까?

3. 어려운 상황들을 마주하면서 전혀 하고 싶지 않거나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자비의 영적 육체적 활동은 무엇입니까?

4.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리의 삶에 필수적인 화해 가운데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거나 심지어 막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5. 어떻게 우리의 자선 활동을 진리와 사랑의 살아있는 일치이신 그리스도의 자비에 비추어 새롭게 할 수 있습니까?  

III. 성찬례

미사

(가능하고 바람직하다면, 희년의 성문이 지정된 교회에서 행렬로 성문을 지나는 예식을 시작으로 성찬례를 거행하여야 한다. 특별히 정해지지 않았다면 이 날의 독서와 미사의 다른 전례문은 [『로마 미사 경본』에 나오는 ‘여러 상황이나 필요에 따라 드리는 기원 미사와 기도’ 가운데] ‘사랑의 실천’을 사용한다.)

사랑의 실천

입당송  에제 36,26-28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리라.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리니,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되리라.

본기도

주님, 저희 마음을 주님 사랑의 성령으로 불타오르게 하시어
저희가 언제나 주님의 뜻을 따르며
형제들 안에서 주님을 찾고 사랑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예물 기도

자비로우신 주님,
저희가 드리는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고
영적인 제물로 받아들이시어
저희가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사랑을 펼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영성체송  1코린 13,13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되리니, 그 가운데 으뜸은 사랑이니라.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 모두 같은 빵을 배불리 먹고 비오니
성령의 은총을 가득히 내리시어
저희가 완전한 사랑을 새로워지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자비의 희년에 바치는 기도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님,
주님께서는 저희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같이 자비로워지라고 가르치시며
주님을 본 사람은
누구나 아버지를 뵌 것이라고 말씀하셨나이다.
저희에게 주님의 얼굴을 보여 주소서.
저희가 구원을 받으리이다.

주님께서는 사랑이 넘치는 눈길로
자캐오와 마태오를 돈의 종살이에서 풀어 주시고
피조물에서만 기쁨을 찾던
간음한 여인과 막달레나를 구원하셨으며
베드로가 배반을 한 뒤에 눈물을 흘리게 하시고
참회하는 강도에게 낙원을 약속하셨나이다.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았더라면!”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저희 한 사람 한 사람이 듣게 해 주소서.

주님께서는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보이는 얼굴이시며
용서와 자비로 모든 이를 다스리시는 하느님의 얼굴이시니
이 세상에서 교회가
부활하시고 영광을 받으신 주님의 보이는 얼굴이 되게 하소서.
 
주님께서는 주님을 섬기는 이들도 나약함으로 갈아입고
무지와 잘못에 빠진 이들과 함께 아파하기를 바라셨으니
주님을 섬기는 이들을 만나는 모든 이가
하느님의 보살핌과 사랑과 용서를 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소서.

주님의 영을 보내시고 그 기름을 부어 주시어
저희 한 사람 한 사람을 거룩하게 하시며
자비의 희년이 주님의 은혜로운 해가 되어
주님의 교회가 새로운 열정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며
억압받는 이들과 갇힌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해 주소서.

자비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통하여 비나이다.
주님께서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아멘.

자비의 활동

“자선 활동은 육체적으로나 영신적으로 궁핍한 이웃을 돕는 사랑의 행위이다. 용서해 주고 참을성 있게 견디어 내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가르치고, 충고하며,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행위는 영적인 자선 활동이다. 육체적인 자선 활동은 특히 굶주린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집을 잃은 사람을 묵게 해 주고, 헐벗은 이들에게 입을 것을 주며, 병자와 감옥에 갇힌 이들을 찾아보고, 죽은 이들을 장사 지내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2447항)


자비 육체적 활동

1. 배고픈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기
2. 목마른 이들에게 마실 것을 주기
3. 헐벗은 이에게 입을 것을 주기
4. 집을 잃은 이에게 쉴 곳을 마련해 주기
5. 아픈 이들을 찾아가 주기
6. 감옥에 갇힌 이들을 찾아가 주기
7. 죽은 이들을 묻어주기

자비의 육체적 활동

1. 의심하는 이들에게 조언하기
2. 모르는 이들에게 가르쳐 주기
3. 죄인들을 꾸짖기
4.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하기
5. 우리를 모욕한 자들을 용서하기
6. 우리를 괴롭히는 자들을 인내로 견디기
7.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하여 기도하기

<원문: Jubilee of Mercy - Lent 2016 Caritas Christi urget nos Day of Spiritual retreat for those who are involved in the charitable service of the Church Promoted by the Pontifical Council Cor Unum, 독일어와 이탈리아어 판도 참조>

영어:
http://www.corunumjubilaeum.va/content/dam/corunumexpo/pdf-giubileo/ENG%20F%20Giubileo%202016%20ritiro%20op%20servizio%20carita%CC%80.pdf

독일어:
http://www.corunumjubilaeum.va/content/dam/corunumexpo/pdf-giubileo/DE%20F%20Giubileo%202016%20ritiro%20op%20servizio%20carita%CC%80.pdf

이탈리아어:
http://www.corunumjubilaeum.va/content/dam/corunumexpo/pdf-giubileo/ITA%20F%20Giubileo%202015-16%20ritiro%20op%20servizio%20carita%CC%80.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