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40972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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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50) - 꿀 장사, 나무그릇 장사, 남는 장사 : 이양등, 김종륜, 허인백

조선시대 박해를 받으며 사는 신자들은 대부분 산골짜기나 물가의 오지에서 생계를 꾸려나갔다. 일반 사람들처럼 버젓한 농토에서 농사를 짓는 신자는 극히 드물었다. 그래서 주로 남들이 천하게 여기는 옹기 굽는 일을 하거나 척박한 땅에서 담배농사를 지어 연명하였다. 이마저도 안되는 신자들은 다른 적당한 일거리를 찾아야 했다. 울산 죽령의 회장이었던 이양등(베드로)은 꿀 장사로, 함께 순교한 허인백(야고보)은 나무그릇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유지하였다. 허인백은 신자가 되기 전에는 김해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였으나 신앙생활을 위해 산속으로 피해 살다보니 당시로써는 천하게 여기던 장사를 하게 되었다.

김종륜(루카)이 생계를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는 모르나 삶의 흔적만 봐도 녹녹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충청도 공주에서 출생하여 신자가 된 후 박해를 피해 경상도 상주 멍에목으로, 언양 간월을 거쳐 울산 죽령 등 산골짜기로만 이사를 다녔으니 그 생활이 오죽했으랴. 이런 떠돌이 생활 중에 죽령에서 이양등과 허인백을 만나 서로 권면하며 신앙생활을 하다가 체포되어 순교의 길을 갔다.

허인백이 1868년 무진박해 때 경주 포졸에게 체포되는 장면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그는 잡히면서 집안사람들에게, “나는 오늘 가면 영원히 못 돌아온다. 나를 위하여 기도해라. 치명하신 바르바라 성녀를 본받아라.”고 당부하며 떠났다. 이때 그의 딸이 잡혀가는 아버지에게 버선 한 벌을 주니까 허인백이 말하기를“내가 본디 세상에 날 때 알몸으로 났으니 알몸으로 돌아가야 마땅하다.”하며 받지 않았다. 이후 그는 두 동료와 함께 신앙을 고백하고 울산 장대에 있는 형장에 서게 되었다.

형이 집행되기 전에 관례대로 사형수에게 주는 술을 권하자 세 분 모두 잘 받아 마신 후 이양등과 김종륜이 먼저 칼을 받았다. 세 번째로 허인백의 차례가 되자 그가 군사에게 말하기를,“내 머리를 빨리 베고, 우리 머리는 각각 분별하여 주시오. 이후에 부활할 육신들이오.”라고 하며 자기와 동료들이 영광스럽게 부활할 몸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그리고는 성호를 그으며 예수 마리아 이름을 부르고는 칼을 받았다.

이분들은 평생 남는 장사를 하다가 생을 마치셨다. 알몸으로 태어나서 꿀도 팔고, 나무그릇도 만들어 팔다가 생을 마치셨으니 그것도 남았거니와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도 거저 받을 것이니 말이다. 주님의 기도에“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는 말이 저절로 생각난다. 하루하루 주어지는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는 사람은 평생 남는 장사를 하는 셈이다.

글 :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2012년 12월 23일자 대전주보 : 제217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