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40971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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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49) - 김기량(펠릭스 베드로) - 우리 만남은 우연히 아니야

1801년 신유박해 때 황사영(알렉시오)의 부인 정난주(마리아)가 제주도로 유배를 간 것을 제외하면 1850년대까지 제주도에는 신자가 한명도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사건으로 신자가 생기게 되었으니 난파를 당한 제주도 사람의 배가 홍콩까지 떠내려간 것이 계기가 되었다.

1816년 제주도 함덕리에서 태어난 김기량(펠릭스 베드로)은 배를 이용하여 무역하는 사람이었다. 1857년 2월 보통 때처럼 배를 타고 장사하러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40일 동안 떠밀려 다니다가 중국 광동 해역에까지 이르렀다. 다행히 영국 배를 만났으나 파도와 바람이 너무 세어 김기량만 간신히 영국 배에 매달릴 수 있었고 다른 동료 4명은 떠내려가 버려 생사를 모르게 되었다. 영국 선원들은 김기량을 홍콩으로 데리고 갔는데 참으로 뜻밖에도 그 먼 땅에서 같은 조선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박해가 계속되고 있는 조선에서는 사제를 양성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1855년에 세 명의 신학생을 선발하여 말레이시아의 페낭으로 보내 공부를 시켰다. 그 중 이만돌(바울리노)이란 신학생이 열대기후에 적응하지 못해 병을 얻게 되자 홍콩으로 보내어 요양을 시키고 있었는데 마침 그때 김기량이 구조되어 왔던 것이다.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김기량은 80일 동안 홍콩에 머물면서 이만돌에게 교리를 배웠고 펠릭스 베드로라는 본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신자가 되어 귀국한 김기량은 고향 제주도로 돌아가 가족들과 그의 사공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제주도에 신앙공동체를 형성하였다. 그는 홍콩을 떠나올 때 당부 받은 것처럼 육지에 있는 교우들과 접촉하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나갔다. 그러던 중 또 한 번 난파를 당해 일본 나가사키까지 떠내려갔는데 거기서도 프랑스 신부님을 만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거센 풍랑 속에서 두 번이나 극적으로 목숨을 건진 김기량이었지만 박해의 풍파는 피해갈 수 없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난 직후 그는 보통 때처럼 무역을 하러 경상도 통영에 나갔다가 신자라는 것이 알려져 체포되었다. 여러 번의 형벌에도 김기량이 배교하지 않자 통영 관장은 ‘그를 때려죽이라.’고 명령하였다. 그럼에도 목숨이 붙어 있자 마침내 1867년 1월 감옥에서 교수형에 처해져 순교하였다.

“우리 만남은 우연히 아니야.”라는 노랫말이 생각난다. 신앙은 우연인 것처럼 다가오지만 그것에 맛 들이고 나서 뒤돌아보면 주님의 섭리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글 :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2012년 12월 16일자 대전주보 : 제217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