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40721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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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47) - 평범해서 정이 가는 분들 : 이태권, 정태봉

순교자들을 떠올리면 모두 강인한 분들인 것 같지만 그분들 역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매 맞으면 아파하고, 정에 이끌려 마음 괴로워하며 살아가는 인간인지라 때로는 신앙을 등지거나 버리기도 하며 나약함을 극복해 간 어찌 보면 평범한 분들인 경우가 많다.

이태권(베드로)은 이런저런 나약함을 여러 번 경험한 분이다. 아홉 살이던 1791년 신해박해가 일어나자 체포되었다가 석방되었고, 10년 후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 아버지와 함께 체포되었다가 풀려났으며, 그 다음해에는 삼촌과 함께 체포되었다가 풀려나는 등 세 차례나 배교하고 풀려났다.

그가 직접 쓴 기록을 보면 참으로 인간적이다. 두 번째 체포되었다 배교하고 풀려나는 과정을 이렇게 써 놓았다.

“한편 나는 오직 먹을 것만 생각했고, 나의 온 바람은 목숨을 보존하는 데만 쏠렸다… 영장은 나를 석방하면서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앞으로 또 그렇게 하겠느냐?’이 말을 두세 번 되풀이하여 묻는데, 고통으로 인하여 온통 정신이 없던 나는 간신히 이성을 찾고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나의 석방을 축하해 주느라 저녁에 진수성찬이 나왔는데, 예전엔 오직 먹을 것만 생각했던 내가 단 한 숟갈도 삼킬 수가 없었다.”

이태권은 매를 맞으면 고통에 못 이겨 배교한 후 풀려나고, 그러고 나서 집에 돌아오면 마음이 아파 슬퍼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이런 과정을 여러 번 거치고 나서 1827년 다시 체포되었을 때 마음을 굳게 먹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는 흔들림 없이 신앙을 고백하였고, 12년간 옥에 갇혀 있다가 1839년 5월 29일 전라도 전주에서 57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이태권과 함께 순교한 정태봉(바오로)에게도 평범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충청도 덕산에서 태어난 정태봉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5촌 당숙의 손에서 자랐다. 자립할 나이가 되어 전라도 용담고을로 이사하여 살다가 3년이 되던 1827년 박해가 일어나자 체포되었고, 신앙을 고백한 후 이태권과 함께 12년간 옥살이를 하였다.

배교 한 번 하지 않은 정태봉을 보면 강인해 보이지만 그에게도 나약한 구석이 있었다. 바로 가족들이었다. 사형 판결이 내려졌을 때 혹시 가족들로 인해 마음이 약해질세라 그는 옥졸들에게 부탁하여 아내와 아이들이 형장에 오지 말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리고는 이태권과 함께 43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이런 평범한 모습에 더 정이 가는 것은 나 자신이 그렇게 나약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리라.

글 :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2012년 12월 02일자 대전주보 : 제216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