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40719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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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45) - 신태보(베드로) : 내 영혼이 사랑하는 이여, 어디에서 양을 치고 계시는지(아가 1,7)

신태보(베드로)는 자신에게 성사를 줄 신부님을 평생 동안 찾아다녔으나 실제로는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연을 가진 분이다. 출생지가 어디인지는 모르나 경기도 이천에서 살던 그는 천주교를 알고 난 후 꼭 신부님을 만나 뵙고 싶어하였다. 중국인 주문모(야고보) 신부님이 유일하게 활동하고 있을 때였고, 신자들은 그분을 보호하기 위해 비밀을 철저하게 지켰으므로 아무나 그분을 만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신태보는 신부님이 계신 곳을 알만한 신자들을 찾아가 간절히 청했으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이런 요청들이 오히려 신부님의 거처를 알아내려는 의심스런 행동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는 신부님을 만나보기 위해 경기도 이천에서 서울까지 8번이나 왕래를 했고, 친척인 이 요한을 서울로 보내 정착시켜 살도록 하면서까지 그 방법을 간절히 찾았다.

그러나 한 번도 신부님을 뵙지 못했고,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주문모 신부님이 자수하여 순교하셨다는 소식을 듣는 큰 슬픔을 맛보았다.

그 후 신태보는 신앙생활을 위해 행상 노릇을 하며 여기저기 떠돌며 살았다. 그러면서 중국 북경의 주교님과 로마 교황청에 연락을 하여 성직자를 보내달라고 청하는 운동(교회 재건운동)을 위한 경비를 마련하는데 앞장섰다. 그러다가 전주 포졸들에게 잡혀가 여러 차례 신문을 받았는데 신앙을 버리라는 관장의 말에 올곧게 대답하였다.

“나라가 융성할 때엔 임금을 섬기다가 나라가 그 반대의 상황에 있다고 임금에게 복종하지 않는 신하는 어리석은 신하일 뿐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유순할 때만 따르고 어려운 날엔 버리는 신앙은 거짓 신앙입니다. 관장님은 국법에 따라 행하시고 저는 제 신념에 따라 행동할 것입니다.”

“저는 한 번 하겠다면 하고, 안 한다면 안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대답들 때문에 그는 더 모진 형벌을 받았다. 신태보는 그 후 12년 동안이나 더 감옥에 갇혀 있다가 70세가 되었을 무렵인 1839년 5월 29일에 전주에서 참수로 치명(致命)하였다.

그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인 1836년 말부터 세 명의 프랑스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했다. 신태보 등 많은 조선 신자들의 청원이 받아들여진 결과였다. 그러나 신태보는 정작 신부님을 이 세상에서는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지금은 원 없이 만나고 계시겠지만.

 

글 :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2012년 11월 18일자 대전주보 : 제216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