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40717
  • 글쓴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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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43) - 감옥에서 정을 나눈 사람들 : 이재행, 박사의, 김사건

오늘 소개하는 세 분은 12년간의 긴 감옥생활 동안 자신들뿐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과도 정을 나누다가 거룩한 죽음을 맞이한 분들이다. 공교롭게도 세 분 모두 안드레아 본명을 가지고 있었으니 인연도 참 묘하다.

세 분 모두 충청도 출신이지만 고향은 각기 달라 알고 지내던 사이는 아니었다. 가장 연장자인 이재행(안드레아)은 홍주 출신으로 20세가 넘어 입교한 후에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여러 곳을 떠돌다 경상도 순흥의 곰직이란 곳에 정착하였다. 역시 홍주 출신의 박사의(안드레아)는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하였는데 충청도 단양에 이사하여 살다가 경상도 상주 멍에목이란 곳에 정착하였다. 서산 출신의 김사건(안드레아)은 부유한 중인 집안이었으나 신앙생활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여러 곳을 전전하다 경상도의 산골로 이주하여 살았다.

1827년 경상도에 박해가 일어나자 셋 모두 체포되어 대구 감옥에서 서로 만나게 되었다. 신앙을 버리지 않아 모두 사형 판결을 받았으나 정부로부터 집행 허가가 나지 않았기에 기나긴 옥살이를 하였다. 천주교 신자들은 순교하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정부에서는 무작정 형을 지연시켰다. 그러자 많은 신자들이 오랜 감옥생활에 지쳐 배교하여 나갔고, 몸이 약한 이들은 병들어 죽었다. 하지만 세 분은 1839년 기해박해로 사형이 집행될 때까지 12년간을 꿋꿋이 신앙을 지키며 살았다.

감옥에서 세 분의 행적은 자못 감동스럽다. 짚신을 엮어 팔아서 자기 먹을 것을 마련하는 것이 당시의 관례였는데, 세 분은 그렇게 일하여 먹을 것이 생기면 한 끼만 먹고 나머지는 감옥에서 가장 배고픈 사람에게 나눠 주었다.

이분들 중 박사의는 효성이 지극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옥에 갇혀 있었는데 자청하여 아버지와 더불어 심문을 받았다. 조선의 관례상 아버지와 아들을 함께 심문하는 경우는 없었으나 한시도 아버지와 떨어지면 안 된다고 간청하였기 때문에 관장도 이를 허락하였다. 그는 매를 맞아 만신창이 된 상황에서도 아버지가 힘이 들세라 형벌을 받는 아버지의 칼을 옆에서 받쳐드리곤 하여 형리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1839년 5월 26일 마침내 세 분은 같은 날 함께 순교하였다. 12년 만에 이 결정이 내려졌을 때 서로 기뻐하며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것을 모두 감옥의 친구들에게 나눠 주었다. 그리고는 형장으로 가 참수되었는데 대구 감옥의 아전들이 와서 직접 그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정중하게 장사를 지내주었다. 이것은 일찍이 없었던 일로 세 분이 긴 감옥생활을 하는 동안 나눈 정이 어느새 우정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글 :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장 (2012년 10월 28일자 대전주보 : 제216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