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14845
  • 글쓴이 : 손병철
  • 작성일 : 2008/05/18
  • 조회수 : 2,135

한티고개를 넘으며...

나는 오래전 성지 안내 책자에서 대전교구관내 해미성지에 한티고개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 길을 꼭 한번 순례하고 싶었다.

한티고개는 박해 당시 내포지방(아산만 일대의 아산, 당진, 면천, 덕산, 해미
등 10개 현)의 순교자들을 포승줄로 줄줄이 엮어 해미읍성의 병영으로 압송하던 한많은 눈물의 고개로 알려 진 길이었기 때문이다.

해미읍성의 병영에는 이들의 처참한 죽음이 준비되어 있었다.
교수형, 참수형, 몰매질, 석형, 백지사형, 동사형, 큰 구덩이를 파고 수십명

씩 생매장 하는 죽임, 넓적한 돌에 패댕이쳐 죽이는 자리개질, 미처 숨이 끊어
지지 않고 꿈틀거리는 시체에는 횟불로 눈을 지지기도 했다고 한다. 참으로 잔

인의 극치를 이루는 행위로 이곳 해미병영에서만 수천명의 신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한다.

나는 악명높은 이 죽음의 고개를 내 발로 걸어보고 싶었다. 순교자들이 밟았
던 흙 을 밟고 순교자들이 밟았던 돌을 밟으면서 그분들의 숨결과 고통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었다.

마침 3월 매일미사책 뒷면에 “대전교구설정 60주년 기념 도보 성지순례계획”이 발표되었는데, 그 중에 덕산→해미순교성지간 순례가 들어있지 않은가?!

정말 뜻이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더니 이건 꼭 나를 위하여 생긴 말 같았다. 즉시 참가신청을 하고 출발 날자 5월 17일만 기다렸다.

그런데 걱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 나이에 평소 운동이나 등산도 하지 않는 처지에 도보 거리 18Km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시골에서 다섯 살 여섯 살 때 어머니 따라서 30리가 넘는
읍내 장에 다니던 전력이 있지 않은가! 30리 왕복이면 60리(24Km)가 아닌가!

덕산 충의사 넓은 주차장엔 족히 7∼800명은 됨직한 많은 순례자들이 모여들었다. 2열 종대로 길가로 행진을 하는데 얼마를 갔는지 길 우편에

“한티고개입구”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오랜만에 해보는 등산이라 적이 힘은 들었지만 그래도 그 옛날 포졸들에게 이끌려 형장으로 가던 순교 선열들을 생각

하며 손에는 묵주를 돌리면서 올라가는데 자꾸만 뒤로 처지니 나이는 어쩔수 없구나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주교님은 도보순례에 매번 참가를 하시는데 이번이 6번째라고 한다. 내 앞에 가시는것 같았는데 언제 벌써 멀리 가시고 보이지가 않는다. 정상에서 잠시

쉬고 내려가는데 길을 평평하게 도자로 밀어서 닦아 놓았고 14처를 설치해
놓았다.

그런데 넓게 닦아 놓은 길을 걸으면서 내 마음은 그리 편하지는 않았다. 잡혀서 끌려가던 순교자들은 꽁꽁 묶인 몸으로 줄줄이 엮이어 그 험한 길을 돌부리

에 채이면서 내려 갔을 이 길을 내가 이렇게 편히 가도 되는 것인지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내려가서 먹는 점심밥은 꿀맛이었다. 물은 또 왜 그렇게 시원한지....

산을 완전히 내려와서 해미읍성까지는 무척 길다는 생각과 함께 다리가 본격적으로 아파 왔다.

이번 도보순례에서 느낀 점을 얘기하라면 단연코 라자로 주교님을 빼놓을 수 없다.

주교님의 인사말씀이나 미사 때 신부님 강론 중에 특별히 기억나는 말씀도 없다. 다만, 주교님의 천진난만한 해맑은 웃음과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주교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호감이 가고 가까이 하고 싶고 마음이 즐거워지고 친구가 되고 싶기도 하고 의지하고 싶기도 하고 ....아무튼 그렇다.

사람의 얼굴은 그 마음의 거울이라고 한다. 저러한 표정이 얼굴에 형성되기까
지 얼마나 많은 내적 쇄신의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을까를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주교님!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주교님은 선교를 위하여 많은 말씀을 하실 필요도 없으십니다. 그저 얼굴만
뵈어도 선교가 될 것입니다.

주교님! 언제나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도보순례를 기획.추진한 대전교구 관계하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수원교구 상현동성당 손병철 아우구스티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