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주보

루르드(Lourdes) 성모

1948년 5월 8일
서울대목구로부터 분리되어
지목구로 설정되어 시작된
대전교구는 주보성인(主保聖人)으로
루르드의 성모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성모님이 루르드에 발현하신 1858년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지 70여 년이 지난, 교회가 아주 힘든 시련을 겪고 있던 때였습니다. 교회의 중심인 로마와 교황권이 적대자들로부터 지속적인 공격을 받았고, 비오 9세 교황은 한 때 로마를 떠나 가에타로 피해야 했습니다.

마리아 베르나데트 수비루(1844-1879)는 매우 가난한 방앗간 집 맏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10대 후반이 돼서야 비로소 읽고 쓰는 것을 배운 시골 소녀였습니다.
베르나데트가 14살이던 1858년 2월 11일, 그녀는 여동생과 친구와 함께 땔감으로 쓸 나무를 모으고 있었습니다. 냇물을 건너려고 신발을 벗는 순간, 베르나데트는 거센 바람이 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시내 반대편 마사비엘 동굴에서 금빛 찬란한 구름이 나타나고, 그 구름 한가운데 흰옷을 입은 아름다운 부인이 눈부신 빛에 둘러싸여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베르나데트는 자기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는 그 부인이 성모님이시라는 것을 즉시 알아차리고 무릎을 꿇고 묵주를 꺼내 기도했습니다. 이 소문이 삽시간에 동네에 퍼지고 사람들은 성모님의 발현을 믿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갈라졌습니다.

성모님은 1858년 2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 18회에 걸쳐 발현하셨습니다. 2월 24일 8번째 발현하셨을 때, 성모님은 베르나데트에게 사람들의 죄를 보속하는 뜻으로 무릎을 꿇고 땅에 입을 맞추라 하시고 죄인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2월 25일 아홉 번째 나타나셨을 때 샘물을 알려주셨는데, 그 샘물이 수많은 기적적인 치유의 원천으로서 루르드를 더 유명해지게 했습니다.
3월 2일에는 성모님이 자신이 있는 그 자리에 성당을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인 3월 25일, 베르나데트는 동네 사람들이 요구하는 대로 성모님께 이름을 여쭤 보았습니다. 이에 성모님은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된 자이다.’(Que soy era immaculada Councepciou)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베르나데트는 자신이 알아들을 수 없는 이 말씀을 본당 신부에게 알렸습니다. 본당 신부는 베르나데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녀의 말을 믿었습니다. 이 해는 비오 9세 교황이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의를 선포한 지 4년이 되는 때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황이 선포한 교리를 하느님께서 인정하신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적대자들은 성모님을 보았다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베르나데트의 고백을 얻어내려고 갖은 수단을 동원했습니다. 정부 역시 그녀를 심문하고 조사하며 거짓말이라는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그녀에게 위협까지 가했습니다. 또한 성모님이 알려 주신 샘물이 있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그 주변이 매우 혼잡해지자, 정부는 샘물을 담장으로 막아 접근을 막았습니다. 그러나 순례자들은 담장을 뚫고 들어갔고, 반대파들의 기세가 누그러지면서 나폴레옹 3세 황제는 담장을 거두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한편, 교회당국이 베르나데트를 시험했습니다. 신학적으로 뛰어난 유명 인사들이 베르나데트를 끌어내리려고 갖은 시도를 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1862년 타르브의 교구장 로랑스 주교는 성모님이 베르나데트에게 나타나셨음을 확증한다는 조사 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드디어 1866년 루르드에서 성모님의 발현을 기념하는 첫 미사가 거행되었고, 같은 해 7월 베르나데트는 ‘느베르 애덕 수녀회’에 입회했습니다. 이 수도회는 현재 우리나라 서울에도 진출해 있지요. 그리고 1872년 성모님이 말씀하신 성당이 완공되었고 그 명칭은 성모님이 알려주신 이름인 ‘원죄 없는 잉태’로 했습니다.
1891년에는 성모님이 베르나데트에게 처음 발현하신 2월 11일이 축일로 제정되고, 1907년 성 비오 10세 교황에 의해 전 교회의 축일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한 베르나데트 수비루는, 1925년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복자로 선포되었고, 1933년 시성되었습니다.

성모님의 발현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후, 점점 더 많은 순례자들이 루르드를 찾으면서 샘물로 치유된 사람들도 늘어갔고, 기적체험도 계속 보고되었습니다. 루르드에서 일어난 기적에 대하여 독실한 신자에서부터 무신론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문가들이 조사와 연구를 했습니다. 2013년 통계에 따르면, 대략 일주일에 두 건 정도 행해졌다고 알려진 총 수천 건의 치유기적 중에서 교회가 인정한 기적은 69건 정도입니다.

성모님은 발현을 통해 프랑스와 전 세계에 회개하지 않으면 재앙이 닥쳐올 것이라고 경고하셨지만,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1870년 프랑스와 프로이센 전쟁에서 나폴레옹 3세 황제가 체포되는 등 전쟁 4개월 만에 프랑스가 참패를 당하고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성모님의 메시지를 듣지 않은 탓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이처럼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성모님 메시지와 연관해서 이해하려는 것도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은 성모님 발현 때의 일들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베르나데트는 발현하신 성모님을 곧바로 알아보고 묵주기도를 바쳤고, 이에 성모님이 ‘영광송’을 함께 바치셨습니다. 묵주기도는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의 생애 전체 곧 그리스도의 신비를 묵상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자주 바침으로써 그리스도의 삶을 우리 마음과 영에 깊이 새길 수 있습니다.

성모님은 당신의 이름을 묻는 베르나데트에게 ‘원죄 없이 잉태된 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교회 초기부터 받아들여졌고 성모님의 루르드 발현 4년 전에 공식적으로 선포된 이 교의를, 성모님이 한 어린 시골 소녀에게 직접 알려주신 것입니다. 성모님의 이 이름으로 우리는 우리를 도와주시고 함께 해주시는 성모님의 모습을 더 잘 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편, 루르드는 치유의 샘물로 더욱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많은 사람들을 치유하시어 당신을 믿고 구원에 이르게 하신 것처럼, 성모님도 많은 이들이 치유의 은혜를 입도록 도와주셨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치유하심으로써 우리의 생명을 하느님이 얼마나 귀중하게 여기시는지 알게 해 주시고, 성모님은 우리에게 치유의 샘물을 알려주심으로써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마음과 우리의 보호자이신 당신의 마음을 우리에게 전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