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대 교구장

경갑룡(요셉) 주교

취임기간 1984~2005

1930년 2월 12일(음) 서울에서 출생하였고, 1951년 9월 육군에 입대하여 1956년 5월 포병 대위로 전역하였다. 군대 말년인 1956년 3월 성신대학(현: 가톨릭대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962년 12월 21일 사제품을 받았다. 경갑룡 신부는 첫 사목지로 명동본당 보좌로 발령받았기에 1964년부터는 황민성 주임 신부와 함께 활동한 경력도 있다. 이후 경갑룡 신부는 금호동본당 주임(1967~1969)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교구청과 성모병원 등에서 재무를 담당하였다.

1971~1976년 사이에 유학길에 올라 미국, 로마, 필리핀에서 영성신학과 상담학을 수학하였다. 귀국 후, 1976년 5월부터 논현동본당 주임으로 사목하던 중 1977년 2월 3일 서울대교구 보좌 주교로 임명받았다. 그해 3월 25일 주교품을 받으면서부터 1984년 7월까지 교구 총대리 겸 명동본당 주임을 역임하였다. 이 기간 중 1981년 11월에 구성된 ‘한국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 주교 위원회에서 기념행사 위원장을 맡아 1984년 교황 방한과 103위 시성식 행사를 총괄하였다.

1984년 7월 2일 ‘제3대 대전교구장’으로 임명받고 8월 29일 대흥동 성당에서 착좌식을 가졌다. 경갑룡 주교는 교구 사제인사와 재정 구조를 개선하였다. 그 결과 교구 조직을 1처 4국(사무처, 사목국, 교육국, 관리국, 홍보국)으로 개편하고 인사원칙을 만들었다. 또한 재정자립 원칙을 세워 해외원조를 더 이상 받지 않기로 결정하고 본당 교납금 제도를 정착시켜 재정을 확보하였다.

경갑룡 주교가 역점을 둔 활동 중 하나가 성소계발과 육성이었기에 교구 신학교 건립에 매진하였다. 그 결과로 1986년 12월 대전가톨릭대학교 건립 계획을 발표한 후 6년간의 실행을 거쳐 1993년 3월 신학교를 개교하였다. 또한 사제들의 재능에 따라 봉사할 수 있도록 사제단에 각종 위원회를 두었고, 늘어나는 신자와 지역사회 복음화를 위해 많은 본당을 신설했으며, 소외된 농촌 사목을 위해 공소 지도자 학교를 개설하였다. 그의 재임 기간은 대전과 충남에 인구 유입이 늘고 한국이 경제호황을 누리던 때여서 교구 내에서 본당 신설도 크게 증가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대전교구는 2004년 말 본당 107개, 사제 236명, 신학생 161명, 신자수 21만 9천여 명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또한 몽골 등에 해외 선교사제를 파견하고, 전파를 통한 복음화를 위해 ‘대전평화방송’을 개국하였으며,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지키기 위해 ‘성가정 생명장학금’을 마련한 경갑룡 주교는 1998년부터 은퇴를 앞둔 2004년까지 교구 쇄신에 중점을 두었다. 1998년은 한국이 경제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의 자금지원을 받는 한편 2000년 대희년을 2년 앞둔 시기여서 성찰과 쇄신이 필요한 때였다. 그해 3월 교구 쇄신 지침서를 발표하고 지구장 제도 강화, 교구 조직 개편, ‘대전교구 사목지침서’ 편찬, 특수사목 분야 증설을 단행하였다. 이런 내외적으로 교구의 든든한 기틀을 마련한 경갑룡 주교는 2005년 4월 6일 교구장직에서 은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