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대 교구장

황민성(베드로) 주교

취임기간 1965~1984

1923년 8월 1일 경기도 고양시 지도면 행주리에서 출생했다. 1948년 6월 성신대학( 현: 가톨릭대학교)을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같은 해 10월 생 쉴피스(St. Sulpice) 신학대학 신학과에 입학했다. 1951년 3월 24일 사제품을 받았으며, 1956년 6월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1월 귀국하였다.

황민성 신부는 1956년 12월 가톨릭대학교 부교수 임명을 시작으로 8년 동안 교수, 부학장, 학장 서리, 학장을 역임하며 사제 양성에 힘썼다. 1964년 8월부터 명동본당 주임으로 활동 하던 중 1965년 3월 22일 ‘제2대 대전교구장’으로 임명되었다. 5월 31일 대전 대흥동 성당에서 거행된 주교 서품식과 착좌식으로 교구장 주교가 되었다.

황민성 주교는 대전교구의 첫 한국인 교구장으로서 과거의 전통과 현대의 변화를 조화시켜야 할 과제를 안고 있었다. 대전교구는 독립 교구로서의 역사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1800년대 중반부터 프랑스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은 오랜 공동체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1965년에 막을 내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로 밀려오는 새로운 물결을 수용해야 했다. 황민성 주교는 현대에 맞게 본당 운영과 교구 제도를 정비하고, 새로운 기관과 시설들을 갖추는 한편 예부터 내려온 신앙의 유산들도 계승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런 일환으로 개발되지 못했던 교구 내 솔뫼, 해미, 갈매못, 다락골 등의 성지와 유적지의 성역화를 추진하여 순교자의 고장인 내포지방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노력하였다. 또한 대전성모병원 증축, 문화회관과 교육회관 건립 등의 외형적 사업과 함께, 세상의 빛으로 살아야할 평신도 위상 강화를 위해 ‘평신도 사도직협의회’를 발족하고 꾸르실료와 성령쇄신 운동 등 신심운동을 도입하였으며 ‘대전주보’를 창간하는 등 의욕적인 교세확장으로 53개 본당에 사제 102명과 신자수 9만 여명으로 대전교구를 성장시킨다.

황민성 주교는 1983년 10월 19일 교구 사제총회가 열리던 도중 고혈압으로 쓰러졌고, 입원 중에 병발한 위암으로 1984년 2월 13일 대전 성모병원에서 선종하였다.

장례 미사에서 “황 주교님은 이 대전교구와 한국 교회에 깔린 주님의 텃밭에서.... 복음 말씀대로 땅에 떨어진 밀알 하나가 되셨습니다. 당신 자신을 고통 속에 연소시켰고, 또 비우시고 비우셔야 했습니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모든 형제들과 화해하시고 가신 주교님의 정신은 참으로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그런 아름다움이셨습니다.”라고 김수환 추기경이 강론한 대로, 온유한 목자로서 일생을 마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