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12-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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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 순종하고 말씀과 함께 사신 성모님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과 함께 사신 성모님

 

창세기 2-3장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아담과 하와가 생명나무가 있는 그 동산에서 쫓겨나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본래 하느님의 모습을 닮게 그리고 하느님의 숨을 받아 창조되어 하느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려야 할 인간이었지만, 선조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거슬러 이렇게 이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습니다. 이 죽음의 운명을 부활의 새 생명으로 재창조해 주신 분이 또한 말씀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죽음과 생명의 이 역사를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하여 왔으므로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하여 온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1코린 15,21-22)

교회의 교부들은 이 선언을 하와와 성모님에게도 적용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아닌 뱀의 유혹을 따랐던 하와의 불순종으로 시작된 죽음의 역사가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응답한 마리아의 순명으로 새 생명의 역사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부들은 창세기와 관련하여 그리스도를 새 아담’, 마리아를 새 하와라고도 부릅니다.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리라는 천사의 말에 마리아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순종의 응답을 합니다.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한다는 것은 사람의 지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합리적인 정신에 뿌리를 두면 둘수록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교회의 역사에서 많은 이들이 또한 현대의 여러 신학자들도 처녀 마리아의 잉태를 부정하고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설명해 보려고 했습니다. 처녀 마리아의 잉태는 오직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믿음, 곧 성령의 인도를 통해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본래 우리의 믿음이 그러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시어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이라는 것 역시 성령께서 이끌어주시는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1코린 12,3)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준비도, 말씀을 받아들여 잉태할 준비도 잘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에서도 성모님의 이러한 모습을 잘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목자들이 찾아와 전해주는 말에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2,19), 그리고 잠시 잃었던 어린 예수를 예루살렘에서 찾았을 때 아들이 하는 뜻밖의 말에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 2,51)고 합니다. 하느님 안에서 일어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거부하거나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그대로 마음 안에 받아들여 간직할 줄 아는 마리아였습니다. 처녀의 몸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한다는 말씀도 그렇게 받아들였습니다.

하느님의 계획은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잘 알고 살아갈 줄 알았던 성모님은 자신의 인식과 기대와는 다른 일을 그대로 마음에 담아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계시가 완성될 때, 성모님 안에 담아놓으신 모든 말씀이 아무런 손상 없이 꽃을 피울 수 있었습니다.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낳아주신 것처럼,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주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생명으로 잉태하여 세상에 내어 놓으신 성모님은 곧 교회가 살아가야 할 길을 먼저 걸으신 모범이십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은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하신 말씀으로 성모님을 우리 모두 그리고 교회의 어머니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여러 여자와 예수님의 어머니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다.(사도 1,14)는 데에서 보는 것처럼, 성모님은 사도들과 함께 예수님의 지시대로 예루살렘에서 기도에 전념하며 기다리셨고, 결국 성령강림과 교회 창립의 현장에 함께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말씀을 주어진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르신 그분께 일어난 일입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일을 그대로 바라볼 줄 아는 관상의 여인이며, 자신의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아는 지혜의 여인이고, 그것을 받아들일 줄 아는 순명의 여인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이러한 성모님의 모습을 교황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다음과 같이 바라보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나자렛에서 기도하시고 일하시는 여인이시며, 또한 다른 이들을 도우시고자 서둘러(루카 1,39) 당신 마을을 떠나시는 도움의 성모님이십니다. 정의와 온유의 힘, 관상과 다른 이들에 대한 관심의 힘이, 교회 공동체가 마리아를 복음화의 모범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

 

경청과 관상의 동정녀, 사랑의 어머니,

영원한 혼인 잔치의 신부, 교회의 지순한 모상이시여,

교회를 위하여 전구하시어

교회가 스스로 자기 안에 갇히지 않고

하느님 나라를 세우려는 열정에 불타오르게 하소서. (<복음의 기쁨> 288)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말씀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실 때 성모님은 순명의 도구가 되셨습니다.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 곧 창조이며 구원입니다. 교회의 성사도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사건입니다. 성모님처럼 말씀을 깊이 받아들이도록 말씀과 늘 친교를 이루며 살아갑시다.